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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번영의 제국, <제국: 평천하의 논리>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 저자의 지난번 저서인 <새로운 전쟁>을 2012년 읽고 기사로 쓴 적이 있다. 나도 지금 검색하다가 알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사를 읽으니 책 내용이 대략 생각 난다는 점. (기사 잘 썼네!).


<새로운 전쟁>이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인 반면, <제국: 평천하의 논리>는 많은 독자들이 읽기 불편할성 싶다. 옳든 그르든, 동의하든 안하든 요즘은 이런 책이 더 흥미롭다. '신자유주의는 나쁘다' '느리게 사는 삶이 좋다'는 이야기가 담긴 책에는 거의 아무런 자극을 느낄 수 없다. 




 제국: 평천하의 논리

 헤어프리트 뮌클러 지음·공진성 옮김/책세상/448쪽/2만원



5000여년의 역사 동안 ‘제국’인 적이 없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제국의 역할을 긍정적인 뉘앙스로 조명하는 책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가 오랜 기간 아시아의 제국인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지난 세기 일본의 침략에 의한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영향력있는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의 <제국: 평천하의 논리>는 그래서 문제적이다. “제국 건설은 결코 억압이나 착취와 동일하지 않다” “본질적으로 안정된 평화 질서의 건설을 추구하고, 교역로, 통화, 통신의 안전과 같은 집합적 재화의 확보를 통해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부흥의 시대를 여는 대제국 건설도 있다”는 문장을 읽으면 피가 거꾸로 솟는 독자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자의 말마따나, <제국: 평천하의 논리>는 ‘제국’을 넘어 ‘지배’ 일반에 관한 이론이기도 하다. 뮌클러는 “제국이 역사적으로 존재해온, 정치적인 것을 조직하는 여러 형식들 가운데 하나이며, 오늘날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제국적 해결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국은 국가와 확연히 비교된다. 국경과 달리, 제국의 경계는 반투과적이다. “국가가 다른 국가의 경계 앞에서 멈추고 국가 내부의 일을 각국이 스스로 처리하도록 한다면, 제국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의 일에 개입한다.” 현대의 제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미국인은 전 세계에서 여행하고 일하지만, 미국시민권이 없는 사람은 미국에 들어가는데조차 애로를 겪는다. 정치적인 영향력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19세기 말부터 중미, 카리브 연안 국가의 정치에 개입해왔다. 반면 파나마, 아이티가 미국의 정치에 개입한다는 이야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울러 제국은 융성과 쇠락의 한 주기를 거치고 새로운 주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므로 고대의 로마, 16세기의 스페인, 근대의 영국, 현대의 소련·미국은 제국이지만, 나폴레옹의 프랑스, 2차대전기의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저자의 분석 대상이 아니다. 



헤어프리트 뮌클러(1951~). 역자의 지도교수였다고 합니다. 


제국이 제국이 되기 위해선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로마 제국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정복 사업을 마친 로마에 지속적인 번영을 가져오기 위한 몇 가지 개혁 조치들을 취했는데, 그 핵심은 부패에 맞서는 행정 엘리트의 창출이었다. 중국은 만리장성을 쌓아 이민족의 침입과 제국의 지나친 확장을 막았고, 아울러 과거제를 통한 관료 선발, 유목민 자제에 대한 중국식 교육으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을 넘으면 제국은 질서있는 지속의 시기, 주변부에 대한 문명화의 시기를 맞이한다. 


제국은 몇 가지 이유로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우선 평화다. 단테는 “인류 전체가 (…) 단일한 주공에게 전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평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칸트와 그의 후계자들은 동등한 다원주의 국가가 민주적 평화를 창출한다는 이론을 전개하지만, 제국은 소규모 정치 질서에는 평화가 없다고 단언한다. 제국은 이를 위해 자신의 사명에 신성함을 부여한다. 제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선교, 문명화, 시장경제, 민주주의, 인권 등의 사명감으로 제국의 사명을 수행한다. 또 제국은 번영을 약속한다. 로마, 영국, 중국은 강성한 제국의 시기에 가장 번영했다. 


많은 이들은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제국적 질서는 붕괴하고 수많은 국민국가가 탄생했다고 여긴다. 하지만 에릭 홉스봄은 민족자결권이 “20세기 유럽 정치의 불행”이라고 지적했다. 제국의 지배가 사라진 공간에는 수많은 전쟁, 내전, 불의, 억압이 발생했다. 미국은 제국적 지배가 사라진 서유럽, 남유럽의 질서 유지 기능을 맡았는데, 이를 니얼 퍼거슨은 “반제국주의라는 제국주의”라고 불렀다. 


물론 국제연맹, 국제연합이 제국을 대체하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연맹은 일찌감치 실패했고, 뒤를 이은 국제연합 역시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국제연합은 각 국가들이 ‘안정된 국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작동한다. 하지만 안정된 국가성은 서유럽, 중유럽, 북미, 동아시아 정도에서만 찾을 수 있을 뿐, 중미, 남미,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는 국가 질서의 재건설이 완료되지 않았다. 물론 질서가 세워지더라도 언제 다시 무너질지 모른다. 


뮌클러는 국제정치의 질서에서 이상을 추구하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한다. 이 과정에서 힘의 논리를 승인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서양의 정치사상사에서 이같은 논리는 마키아벨리, 홉스로 이어지는 강력한 전통을 가진다. <제국: 평천하의 논리>는 불편함과 지적 자극을 함께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