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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뇌구조, <똑똑한 바보들>

 



똑똑한 바보들

크리스 무니 지음·이지연 옮김/동녘사이언스/394쪽/1만6500원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다”지만,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씨는 있다”고 미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 무니는 말한다. 물론 오해의 여지가 많은 주장이다. 크리스 무니 스스로 버락 오바마를 지지하는 진보주의자임을 자처하고 <똑똑한 바보들> 역시 보수주의자의 고지식함을 비판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이 특히 심했다. 정식 출간 전인 지난해 11월 <똑똑한 바보들>의 주제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온라인으로 공개되자 보수주의자들은 즉각 무니를 공격했다. 보수적 논객인 조너 골드버그는 이 책이 ‘보수주의자에 대한 골상학’을 전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책의 원제는 <The Republican Brain>, 즉 ‘공화당지지자의 뇌’다. 한국적 맥락으로 번역하면 ‘새누리당지지자의 뇌’가 되겠으니, 일단 발끈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당연해 보인다. 


물론 막무가내로 보수주의자를 비판하는 건 아니다. 무니는 뇌과학, 심리학의 실험과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결론을 앞서 말하자면, 보수주의자에게도 미덕이 있으니 진보주의자는 더욱 강해지기 위해서 그 미덕을 흡수하라고 제안한다.


일단 티파티와 기독교 우파로 대표되는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황당한 생각들을 살펴보자. 그들은 오바마가 이슬람교도이며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심지어 오바마가 국제 좌파 운동의 세뇌를 받은 꼭두각시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낙태는 여성에게 유방암 또는 정신 장애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한다. 조지 W 부시가 이라크 침략의 명분으로 삼았으나 실제로 발견되지 않은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여전히 믿는다. 진화론을 거부하고 지구온난화를 부정한다. ‘상식’으로 여겨지는 상대성이론에 대해서도 요한복음이나 마태복음의 구절들을 원용해 반박한다. 이들은 ‘사실’보다는 ‘신념’에 관심이 많다. 위키피디아에 대항해 만들어진 컨서버피디아의 설립자 앤드루 슐래플리는 “나는 신문에 인쇄된 내용들을 믿어야 할 필요가 없다.…우리는 지식을 표현할 우리만의 방법을 갖게 되었으며, 우리의 신념을 훼손하는 진보적 편견들은 많이 제거될수록 좋다”고 말한다. 


이 사람들 왜 이러는 걸까. 분명히 잘못된 생각인데도 왜 철회하지 않는걸까. 보수주의를 변화에 저항하고 불평등을 수용하는 이데올로기라고 정의한다면, 이 뒤에는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해결하고 싶은 인간의 깊은 욕구”가 있다. 보수주의자는 개방적이진 않지만 성실하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생활 방식에까지 영향을 준다. 뉴욕대의 존 조스트와 컬럼비아대의 데이나 카니의 연구 결과, 보수주의자의 침실에는 달력, 스탬프, 청소도구 등이 많았다. 모두 생활을 더 계획적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성실성은 떨어지지만 개방적이다. 자기 자신의 관점 뿐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을 고려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너무나 뻔한 결론조차 쉽게 내리지 못한 채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일 때마저 있다. 그래서 “진보주의자는 논쟁에서 자기 편도 못 들 사람”이라는 농담이 나온다. 진보주의자의 침실에는 책, 음악 CD, 문구, 여행 책자 등이 많았다. 예일대학교 연구팀은 정치적 지향은 소득수준, 교육수준보다 성격과 더 많은 관계가 있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자신의 계급과 어긋나는 정치 성향을 보이는 ‘강남좌파’의 모순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만일 어떤 이가 개방적인 성격이라면 소득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진보주의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합리적인 수준이라면 보수주의, 진보주의 모두 사회에 필요하다. 그러나 보수주의자의 울타리 안에서도 지나친 집단이 있다. 바로 권위주의자 집단이다. 저자는 미국 보수주의 세력 중에서도 권위주의자들이 점점 강력해지는 현상에 우려를 표한다. 군인 출신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공화당 소속이었지만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민주당에 가까운 진보적인 정책들을 많이 펼쳤다. 1980년대 미국 보수주의의 귀환을 알린 레이건조차 꽤 실용적이고 타협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를 필두로 한 오늘날의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권위주의자에 가깝다. 이들은 애매모호함을 못 참고 집단사고를 선호하고 외부인을 불신한다. 폐쇄적인 마음을 가진 이들은 세상을 선악, 시비, 구원과 저주, 흑백의 이원론으로 구분해 어느 한쪽에 자신들을 위치시킨다. 공화당이 더욱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소외된 중도파들은 무당파 혹은 민주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평생 공화당에 투표했던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의 기상학자 케리 이매뉴얼은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공화당원들에게 질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를 찍었다. 조지 W 부시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데이비드 프럼은 오바마에 대한 턱없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공화당 동료들이 “미쳤다”고 한다. 



이제는 정겹기까지 한 조지 W 부시


보수주의, 진보주의의 성향은 일정 수준 뇌에서부터 결정된다. 진화적으로 더 오래된 부분인 편도체는 공포를 일으키는 위협, 자극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할 때 핵심 역할을 한다. 편도체보다 나중에 발달한 전대상피질(ACC)은 교정 반응이 요구되는 실수나 오류를 감지한다. 런던대학교 대학생 90명을 대상으로 MRI(자기공명영상장치)를 찍은 결과, 정치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한 학생은 편도체가 크고, 진보주의자 학생은 ACC의 회백질이 많았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갑자기 큰 소리를 들려준 후 눈 깜박임의 강도를 측정하거나, 벌어진 상처에 구더기가 들끓는 모습, 사람 얼굴에 거미가 앉은 이미지를 보여줬을때 보수주의자들은 더 강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외부 공격으로부터 생명과 신체를 반응하는 일에 더 빨랐다. 반면 스크린에 M자가 보이면 재빨리 키보드를 누르도록 시킨 뒤, 다섯 번에 한 번은 스크린에 M대신 W자를 보여주는 실험이 있었다. 진보주의자들은 이 과제를 더 잘 수행했고, ACC 활동성도 더 컸다. 즉 바뀌는 단서나 상황에 기초해 자신의 신념, 반응을 맞춰나갈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이다. 심지어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의 성향은 어린 시절부터 엿보인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연구팀은 3~4세 아동의 성격을 측정한 다음 20년 뒤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알아봤다. 그 결과 불확실한 것을 불편해하고 죄책감에 민감한 아이들은 보수주의자, 자주적이고 표현이 풍부한 아이들은 진보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재료(성향)라도 어떤 조리기구로 어떻게 만드느냐(환경)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문제는 두 가지 성향의 사람이 모두 존재하므로, 음양의 조화처럼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아는 것이다.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에서 올바른 길을 찾는데는 진보주의자가, 결단력 있고 성실하게 일을 추진하는데는 보수주의자가 능하다.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내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특히 보수주의 진영에 ‘똑똑한 바보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걱정한다. 아예 정보를 갖고 있지 않으면 모르겠으나, 지금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잘못된 정보를 가진 채 그것을 확증하는 통로만을 반복해서 강화하고 있다. 언론이라기보다는 보수주의의 이데올로그라 할 수 있는 폭스뉴스가 대표적인 채널이다. 몇 가지 연구조사 결과, 폭스뉴스 시청자들은 이라크 전쟁, 지구온난화, 건강보험 등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을 확률이 다른 뉴스 채널 시청자들보다 높았다. 


책에는 진보주의 진영의 ‘승리’를 위한 충고가 가득하다. 물론 저자가 지지하는 진보진영이란 버락 오바마가 이끄는 민주당 정도의 노선이다. 일단 진보주의자들은 인간이 충분한 정보만 있으면 올바른 방향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적 동물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프랑스 혁명기의 콩도르세 후작은 진보주의의 과학적 비전을 믿은 계몽주의자였다. 그는 탁월한 수학자였고 당시로선 보기 힘든 수준의 강경한 무신론자였으며 볼테르,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의 친구였다. 인간의 이성을 ‘자연 법칙’이라고 믿은 그는 용기있고 일관된 행동을 보여줬으나, 사실에 기반한 그의 논증은 누구도 설득시키지 못했다. 결국 콩도르세 후작은 당국에 체포된 뒤 감옥에서 죽었다. 


확신을 가진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그 확신이 틀렸다는 증거를 대면 그 증거의 출처를 의심한다. 그리고 기존의 믿음을 더욱 강화한다. 종말론의 신도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정된 종말일에도 세계가 멸망하지 않으면, 신도들의 기도에 힘입어 종말이 연기됐다는 식의 변명으로 믿음을 더욱 강화한다. “논리적·이성적 논거를 가지고 그 신념을 공격하여 뇌에서 그 신념이 사라지거나 멈추기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신념이란 물리적인 것이다. 신념을 공격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신체 일부를 공격하는 것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가 이슈에 관해 정확한 정보를 받으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가정하는 제퍼슨식 민주주의는 기반이 약하다. 인간은 여러 가지 사실들로 객관적으로 추론하는 과학자라기보다는, 자신의 논변에 맞는 증거들을 취합하는 변호사라고 저자는 말한다. 


결론에 이르러 크리스 무니는 이른바 ‘진영논리’를 주장한다. 진보적 성향의 유럽 지도자들은 경제 위기에 빠졌으면서도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끝도 없이 미적거리는 정상 회담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분명한 아젠다도, 지도부의 리더십도 없었기에 결국 소멸하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요구는 이렇다. 진보주의자들은 정책적 의미가 아니라 심리적 의미에서 보수주의자가 돼야 한다는 것. 생각의 본질이 아니라 그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투쟁할 때 특히 그래야 한다는 것. 오바마는 진보진영의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희망’이지만, 끝없이 회의하는 진보주의자들은 어떻게든 오바마의 흠집을 잡으려 한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과는 더 이상의 대화가 불가능한 마당이니, 진보주의자들끼리 티격태격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무니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바마에게는) 당신의 신뢰와 헌신이 절실하다. 당신은 보수주의자들이 조지 W 부시에게 보이는 똑같은 충성심을 오바마에게 보여주어야 한다.…우웩 하고 싶은 소리라는 것은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게 요점이다. 당신의 본능을 거슬러야 한다.”


과학적 연구와 정치적 조언과 개인적 신념이 섞여 있는 저작이다. 타인의 입장과 의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보주의자의 강점이라고 소개하면서도, 막판에는 ‘두말 할 것 없이 오바마에게 한 표를!’이라고 외친다. 흥미로우면서도 모순적이다.  



"He wants you!" 그래서 닥치고 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