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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증의 공포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우디 앨런 영화 보면 코미디인데, 실제로는 공포다. 한국판 표지 역시 귀업게 표현하려 했다. 저자는 최대한 담담하게 쓰려 하고, 또 가끔 유머를 발휘하려고도 하지만, 웃기기보다는 끔찍하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스콧 스토셀 지음·홍한별 옮김/반비/496쪽/2만2000원 우디 앨런은 자신의 컴플렉스를 기막힌 작품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점만으로도 대단한 예술가다. 앨런이 연출하고 주연까지 맡은 영화 (1977)의 주인공 앨비 싱어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어린 시절의 싱어는 “우주가 계속 팽창하다가 결국 터져버리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하며 나날을 지냈다. 성인이 된 뒤에도 불안증을 극복하지 못한 싱어는 15년째 정신과에 출입하고 있는데, 별로 나아질 기미는 없다. 싱어의 불안은 그의 직업,.. 더보기
꺠달음에 이르는 길고도 짧은 길 <당나라 승려> 읽어보니, 매체의 반응은 '혹평'이 많은 것 같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 많은 사람을 만족시킬 작품은 아니니. 그래도 난 이 작품을 보고 깊은 감흥을 받았으며, 심지어 삶에 대한 깨달음도 얻었다고 여긴다. 가 공연된 2시간 남짓, 지겨워 몸을 뒤틀 수도 있고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무대 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천지가 흔들리는 풍경을 봤을 수도 있다. 는 지난 4일 개관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개막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이날 첫선을 보였다.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대만 예술가 차이밍량(蔡明亮·58)이 연출했다. 아시아예술극장이 벨기에 쿤스텐 페스티벌, 오스트리아 빈 페스티벌, 대만 타이베이 아트 페스티벌과 공동제작한 작품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더보기
불안과 호기심 '빨래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다가 이번에 썼다. '불안과 호기심'이라고 붙여준 제목이 마음에 든다. 어느 꿉꿉했던 날의 일이다. 한밤에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 돌리는데 아파트 아랫집 주민이 문을 두드렸다. 그는 아랫집 다용도실 쪽에서 물이 새고 있다고 했다. 당장 원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세탁기의 전원을 꺼야했다. 한창 하던 빨래가 문제였다. 세탁기가 ‘헹굼’ 상태였기에 빨래는 물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빨래를 꺼내 욕실로 옮긴 뒤 일일이 헹궜다. 다 헹군 다음엔 있는 힘을 다해 빨래를 짜 건조대에 널었다. 다 짜고 보니 손바닥이 까져 있었다. 탈수기를 썼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물기를 짜냈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퇴근 후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 더보기
김현희 눈물의 효과, <슬픈 쌍둥이의 눈물> 슬픈 쌍둥이의 눈물박강성주 지음/한울아카데미/320쪽/3만4000원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를 출발해 방콕을 거쳐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던 대한항공 858기가 안다만해에서 사라졌다. 비행기에는 승무원과 탑승객 등 115명이 타고 있었다. 당국은 비행기가 공중폭파됐을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12월 1일 테러 용의자 2명을 바레인에서 체포했다. 둘은 곧바로 자살을 기도했는데, 중년 남성은 사망했으나 젊은 여성은 목숨을 건졌다. 이 여성 용의자는 12월 15일 서울로 압송됐다.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당선된 제13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지기 하루 전이었다. 12월 23일, 이 여성은 자신이 북한 공작원 김현희라고 자백했다. 김현희는 이듬해 1월 15일 기자회견에도 등장했다. 김현희는 북한 지도부가 서울올.. 더보기
누가 더 과학적인가 <언던 사이언스> 오랜만에 과학책을 프런트로. 언던 사이언스현재환 지음/뜨인돌/248쪽/1만4000원 미국에선 일찌감치 유방암 연구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특히 페미니즘 활동가들은 “중년 남성을 ‘보편적 인간’으로 상정한 현대의학 및 과학 연구에서 여성 질환인 유방암이 경시되어 왔다”고 비판해왔다. 반면 의학계 내부에서는 유방암 연구가 제대로 이뤄져 왔음에도 일부 여성 활동가들이 과학에 대해 알지도 못한 채 성차별주의 관념을 내세운다고 반박했다. 결국 ‘나쁜 과학자 집단 대 정의로운 여성운동가들’, 혹은 ‘진실한 과학자 집단 대 히스테릭한 여성들’이라는 이분법적 선악 구도가 유방암 관련 논쟁을 지배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대결 구도는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광우.. 더보기
시스템이 만든 탐정소설, <미스터 메르세데스> ***스포일러 미량 는 스티븐 킹의 '첫 탐정 추리소설'을 표방한다. 오랫동안 보스턴에 살아온 작가는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사건을 소재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에서는 새벽부터 취업박람회에 줄을 서있던 가난한 서민들을, 훔친 메르세데스로 마구 치어 죽인 살인마가 등장한다. 살인마의 정체는 극 초반부터 밝혀진다. 어머니와 단둘이, 다소 이상한 관계를 맺고 살고 있는 이 청년은 얼핏 성실하고 모난데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에 대한 끔찍한 적의를 품고 있다. 킹은 청년이 연쇄살인마가 된 가족사를 소개하기는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누구나 괴물이 되는건 아니다.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타고난 사이코패스에 가깝다. 재판을 받았다면 정신이상을 호소했을 가능성이 크다. 은퇴한 뒤 허무의 늪에 .. 더보기
한국 수입사의 '개입'에 대해. <아마조니아>와 <숀더쉽>의 경우 휴가 기간중 아이와 온전히 며칠을 보낼 일이 생겨 두 차례 극장 나들이를 했다. 방학임에도 어린이 영화의 회차가 매우 적어 한정된 시간을 노려야 했다. 처음 본 영화는 다큐멘터리 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마존의 생태계를 다룬 영화다. 프랑스, 브라질 합작의 이 영화는 도시에서 자란 샤이라는 새끼 원숭이가 비행기 사고로 아마존 한복판에 추락한 뒤 그곳에서 삶을 개척해나가는 이야기다. 샤이는 당연히 아마존의 생태에 대해 무지하고 생존 능력도 떨어지지만, 이런저런 조력자의 도움과 유전자에 내재한 능력으로 어떻게든 생존해 나간다. 제작진은 야생동물 보호소에 있던 꼬리감는원숭이를 아마존에 적응시킨 뒤 영화에 '출연'시켰다고 한다. 한국의 수입사는 상영본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아마도 어린이 관객의 이해를.. 더보기
서울 사람들이 모르는 서울 <플레이스/서울> 프로파간다는 재미있는 책을 많이 낸다. 플레이스/서울피터 W. 페레토 지음, 신병곤 사진, 정은주·조순익 옮김/프로파간다/340쪽/1만5000원 “서울의 건물은 얼굴이 없다. 그 대신 가림막이, 즉 간판이 군림하는 표면이 있다. 상업용, 기관용, 개인용, 혹은 다른 어떤 형태이든 간에 간판은 잡초처럼 퍼져 공격적으로 그 숙주를 식민화하고 결국 본래의 종을 변이시킨다. 사람의 문신처럼 도시의 문신은 건물의 피부를 관통하지만, 그 메시지가 미적이거나 상징적이거나 묘사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다르다. 도시의 문신은 건물의 내부 프로그램을 찍어 보여주는 엑스레이와 같이 기능한다. 바꾸어 말해 소비자를 위한 이 합법적 낙서는 고객들이 맘 속에서 건물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한다.” 토착민의 눈에 자연스러운 것이 이.. 더보기
'우국'과 '인사이드 아웃' 이렇게 최근 접한 소설, 영화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한 차례 지나감. 싫지만 재밌는 작품이 있다. 신경숙 작가가 표절한 것으로 추정된 작품 ‘우국’이 그렇다. ‘우국’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가 1961년 발표한 단편이다. 이 작품의 절반은 섹스 묘사고 나머지 절반은 죽음 묘사인데, 이렇게 자극적이면서 심오한 소재를 솜씨 있게 다룬다면 작품에 대한 호오와 상관 없이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은 섹스의 결과로 태어나고 또 언젠가 죽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마치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듯 혹은 영원히 죽지 않을 듯한 표정으로 살아간다. 소설가는 그런 사람들의 뒤통수를 때린다. 1936년 2월26일 천황 중심의 강력한 국가 개조를 주장하는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가 ‘우국’의 배경.. 더보기
이남희, 마이클 최 UCLA 교수 부부 이남희 교수는 청소년기에 미국에 건너갔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한국어를 잘했다. 그는 언어에 민감해, "커피 한 잔 나오셨습니다" 같은 말이 견디기 힘들다고 햇다. 마이클 최 교수는 한국어를 하지 못했다. 둘은 사이 좋은 중년 부부로 보였다. 1988년 3월 노엄 촘스키의 미국 노스웨스턴대 강연이었다. 시카고 지역사회에서 풀뿌리 운동을 하던 이남희씨(55)는 질문 기회를 얻으려 손을 내지르는 한 아시아계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수적인 미주 한인 사회에서 촘스키의 강연에 올 사람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청년은 재미교포 2세로 이름은 마이클 최(50)였다. 둘은 얼마 뒤 연애를 시작했고, 92년 결혼했다. 캘리포니아대 로스 엔젤레스 캠퍼스(UCLA)의 아시아학 부교수, 정치학과 교수로 각각 재직중인 이남.. 더보기
하늘에서 본 세상, <드론> 이런 사진을 보면 찍고 싶잖아... 드론조성준 지음/눈빛/128쪽/1만2000원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눈높이를 넘어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카메라를 든 인간도 같습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초상사진가 펠릭스 나다르는 다게레오타입 카메라를 들고 ‘열기구’에 올라 인류 최초로 공중촬영을 시도했습니다. 20세기, 삶과 예술의 유기적 결합을 꿈꾸었던 시각예술가 라슬로 모흘리-나기는 베를린 ‘라디오 타워’ 위에서, 21세기 인류와 환경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이끌어 낸 항공사진가 얀 베르트랑은 ‘헬기’ 위에서 각각 세상을 담아냈습니다. 오늘날 드론의 등장은 공중촬영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위로부터 잠실(2014.09), 목포신항 수출부두(2014.11), 해운대(2014.07) 눈빛 제공. 만화 .. 더보기
나도 저자가 됐다, 엑스플렉스의 텐북스 왜 냈나 싶은 책도 참 많고, 좋다 싶은 책도 읽는 이가 드물어진데다가, 인터넷 어디서라도 글 쓸 공간은 무한한 세상에, 여전히 책을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출판의 문턱은 낮아졌으니, '저자가 되고 싶다'는 로망은 예전보다 훨씬 충족하기 쉬워졌다. "책은 하나의 세계"라는 담임 교사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에 있는 출판문화공간 엑스플렉스에서는 조촐하지만 뜻깊은 한 출간기념회가 열렸다. “인생에 한번, 나도 저자!”라는 모토를 내걸고 지난 6주 동안 열렸던 강좌 ‘텐북스’ 제1기 수료식을 겸한 자리였다. 저자 지망생 4명은 지난달 13일 처음 엑스플렉스에 모였다. 이후 매주 토요일 오후 4시간씩 혹독한 책만들기 수련을 거쳤다. 그날 강의가 끝나면 내주.. 더보기
행복에 대한 두 가지 시선 신간이 출판면에 실리기 위해선 때로 우연이 필요하다. 이번 주에는 우연히도 행복에 대해 전혀 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두 책이 나란히 배포됐다. 굳이 따지자면 후자의 책이 전자의 책을 '저격'하고 있다. 그만큼 행복의 개념은 중요한 이슈라고 볼 수 있다. 이 책들은 각자 다른 주에 나왔다면 따로 다룰만했겠지만, 이번주에는 하나로 묶어 '책과 삶' 프론트 페이지에 실었다. 행복을 추구하는 온갖 학문과 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더 좋은 물건을 갖기 위해 살던 사람들은 삶의 목표를 ‘행복’으로 바꾼 듯 보인다. 서점에 가면 행복을 다룬 심리학 책들이 잔뜩 쌓여있고, 행복을 주제로 한 강의들도 곳곳에서 펼쳐진다. 심지어 이윤 추구가 존재 이유와 같던 기업들도 .. 더보기
일본의 바니타스화? 구소시에마키 일단 그림부터. (마쓰다 유키마사/바다출판사)에서 본 그림이다. 가마쿠라 시대 말기의 오노노 고마치란 사람이 그렸다고 하니, 14세기쯤이다. 제목은 ‘구소시에마키(九相詩繪卷)’. 책의 저자는 "사람이 죽은 직후의 아직 생생한 장면에서부터 점점 썩어가고 결국 뼈만 남아 소멸에 이르는 아홉 번의 변화 과정이 한 장 한 장에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 변화하는 모습이 굉장히 현실감 있게 그려진 것을 보면 상상이 아니라 직접 관찰해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고 해설했다. 이어서 유명한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연속 사진을 해설하면서, 이 그림이 머이브리지보다 600년이나 빠른 운동 표현이라고 자랑한다. 그럴싸하다. 저자의 추측대로 진짜 시신이 썩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린 것이라면, 에 나온 '시체농장'이란 곳을 연상하면 .. 더보기
나를 사랑하는 방법, <자존감의 여섯 기둥> 이런 종류의 책을 잘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서인지 어쩌다 읽으면 신선한 느낌을 받곤 한다. '사회'에 대해 단 한 마디의 말도 안하는 저자의 태도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미국의 심리학자에게 그런 걸 바란다는 자체가 연목구어 같기도 하고. 자존감의 여섯 기둥너새니얼 브랜든 지음·김세진 옮김/교양인/512쪽/1만8000원 한 여자가 있다. 여자는 애타게 사랑을 갈망하지만, 그가 사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문난 바람둥이 혹은 유부남이었다. 여자는 어쩌다보니 결혼에 성공하지만, 역시 행복을 누리진 못한다.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에게 “나보다 다른 여자가 낫지 않느냐”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지쳐버린 남편은 이혼 서류를 내민다. 여자는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생각한다. “난 원래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더보기
어느 지식인의 회상, <20세기를 생각한다> 는 쉽지 않은 책이었다. 20세기의 혁명, 반혁명, 전쟁, 정치인, 지식인에 대한 매우 세밀한 논평이 담겨 있기 떄문이다. 독서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래도 이런 책은 척 보면 '좋은 책'이라는 확신이 든다. 20세기를 생각한다토니 주트·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조행복 옮김/열린책들/520쪽/2만5000원 영국 출신의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60세였던 2008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뉴욕대 레마르크연구소의 소장이자 ‘전후 유럽에 관한 최고의 역사서’란 평가를 받은 의 저자로 명망을 누리던 시기였다. 21살 연하의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주트가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날, 그에게 공저를 제안했다. 2009년 1월 책을 위한 첫 대화를 시작했을 때만.. 더보기
왕좌의 게임과 메르스, 새로운 중세의 시작 정기적으로 쓸 차례가 다가오는 칼럼의 문제점은 쓰고 싶을 때 쓸 수 없다는데 있다. 시의성을 중시하는 언론 속성 상, 쓰고 싶은 이슈가 있으면 내 차례가 아니고 내 차례가 오면 쓸만한 이슈가 지나간 상태일 때가 많다. 그래서 칼럼을 쓸 시기에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느냐, 그리고 그 사건을 어떻게 소화해내느냐는 일정 수준 운에 달려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다섯 번째 시즌이 종영한 과 메르스를 엮어보려고 며칠 전부터 준비중이었는데, 마감 직전 신경숙 표절건이 터져서 조금 고민했다. 이슈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글이 더 많은 주목을 받겠지만, 차분하게 세계관을 드러내는 글을 쓰는데 좀 더 끌리는 편이라 원안을 고수했다. 덧) 그리고 지면에서의 제목은 '중세로 돌아간 한국'으로 돼 있는데, 내 생각은 '세계는.. 더보기
창비와 박근혜, 훈계와 사과 박근혜 대통령과 출판사 창비는 한국 사회에서 정반대의 방향으로 걸어왔다. 그래서 둘의 행동양식이 비슷하다고 말하는 건 서로에게 모욕일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둘은 비슷하니까. 둘은 모두 사과해야 할 때 훈계한다. 사과의 정도에 따라 죄를 더 캐물을지 말지 고민하던 사람들은 되려 들려오는 훈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에 대해 한 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메르스가 한참 퍼져 통제가 어려워진 뒤에야 뒤늦게 수습에 나선다고 부산했다. 동대문 시장 상인, 초등학생, 의사를 만나 연출된 것이 티나는 사진을 찍었다. '메르스 어떻게 하냐'는 질문엔 "손 깨끗이 씻으라"고 답했다. 삼성서울병원장을 불러 사과를 받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이 잘한 것은 없지만, 민간 병원장이 대통령.. 더보기
인간은 공룡에게 먹히기 위해 나타난다, <쥬라기 월드> ***스포일러 있음. 다시 한번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의 가장 큰 스크린에 들렀다. 개봉 첫 주 를 보기 위해서다. 스크린 크기나 사운드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여기는 편이었지만, 이왕이면 블록버스터는 이런 대형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만족스러웠다. 여름을 시작하는 블록버스터로서는 충분히 제값을 했다. 적어도 보다는 훨씬 잘 만든 블록버스터였다. (는 왜 그렇게 재미없었을까. 지금도 영웅들이 뭘 했는지 하나도 생각 안나고, 뜬금없이 등장한 호크아이의 시골집과 가족들만 생각난다.) 국내 언론에선 찬반이 갈리는 모양이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멍청함'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그런 지적이 나올 법하다. 실제로 의 등장인물들은 멍청하니까. 하지만 난 이 인물들의 한심함을 좀 더.. 더보기
서구중심주의 대논쟁! 김경만 vs 강정인 처음엔 김경만 교수 인터뷰만 예정했으나, 뒤늦게 강정인 교수가 주관하는 학술회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강 교수도 인터뷰했다. 내 입장에서야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네"라고 말할 수밖에. 최근 일주일 간격으로 서강대 다산관을 잇달아 찾았다. 4층 연구실의 사회학과 김경만 교수(57)와 6층의 정치외교학과 강정인 교수(61)을 만나기 위해서다. 두 학자는 2007년 이 건물에서 ‘한국 사회과학의 서구의존성 누구 책임인가’라는 주제로 4시간 동안 지적 대결을 펼친 적이 있다. 이후 ‘학문적 긴장’을 유지하며 지내온 이들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다시 한번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김 교수는 신간 (문학동네)에서 강정인, 한완상, 조한혜정 등 동료 학자들을 실명비판했다. 세계 학계의 보편적 흐름과 분리된 .. 더보기
군대가 직접 매춘부를 고용한다면?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실제 집필 기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송병선 역/문학동네)는 태초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이후에는 술술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상황 설정이 기발하고, 인물들의 대립 구조가 명확하고, 주인공의 운명이 비교적 예측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무튼 독자는 이렇게 쓰여진 소설을 재빠르게 읽어내려갈 수 있다. 페루 육군의 행정장교인 팔탈레온 판토하 대위는 아마존 밀림에서 근무하는 군인을 위한 '특별봉사대'를 조직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는다. 오지에 근무하느라 욕구불만에 시달린 병사들이 인근의 부녀자들을 성폭행하는 사태가 잦아지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군에서 은밀하게 순회 집창촌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쉽게 말해 '위안부'다. 근면성실하고,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높은 판토하는 이.. 더보기
군인의 삶을 통해 본 세계사, <군인> 이번 주 책은 재미있었다. 리뷰 말미에도 썼지만, 특정 입장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독자가 자연스럽게 어떤 느낌을 갖도록 한다. 동서고금의 방대한 군인, 전쟁의 사례를 읽는 재미도 있었다. 특히 6장 '어떤 꼴로 죽었을까'는 판소리 '적벽가'의 죽음 대목처럼 해학적이면서도 처절하다. 그러고보니 전사를 '꼴'로 표현한 것 자체가 해학적이군. 저자 역시 참전 경험이 있다고 한다. 군인볼프 슈나이더 지음·박종대 옮김/열린책들/584쪽/2만5000원 로버트 하인라인의 SF 속 세상 사람들은 시민과 민간인으로 나뉜다. 시민은 참정권을 갖고, 민간인은 갖지 못한다.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군대에 다녀와야 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마찬가지다. 이곳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든 적이 있는 사람, 즉 군인만이 나라를 움.. 더보기
정동삼락 지난주 정동야행이라는 축제가 있었다. 흥미가 있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상 가보지 못했다. 뒤늦게 들으니 꽤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미 대사관저 개방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정동에 있는 회사를 다닌 지도 10년을 훌쩍 넘겼다. 이 정도면 주변의 환경을 거저 주어진 것, 혹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길 만한 시간이지만, 난 여전히 이 지역에서 일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상황을 감사히 여긴다. 특히 요즘 같이 좋은 날이 이어지는 계절이면 기쁨이 더욱 크다. 정동은 많지 않은 급여에 덧붙여진 보너스라고 정신승리를 하기도 한다. 갑자기 생각난 김에 정동삼락을 꼽아보노라니, 우선은 모두에게 익숙한 덕수궁 돌담길. 언젠가 야근 후 돌아가는 길에 찍은 듯. 이화여고 내의 공연장으로 가는 문의 가을 풍경. .. 더보기
안녕, 폴 워커,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의 사실적인 장면을 찾아보자. 1. 군용 수송기에 실려있던 묵직한 차들이 슬금슬금 후진을 하더니 공중으로 떨어진다. 공수부대가 몸을 가누듯 차도 차체를 움직인다. 그리고 정말 공수부대처럼 지상에 가까이오자 낙하산이 펴진다. 차들은 놀라울 정도의 정확성으로 도로 위에 착륙하자마자 질주를 시작한다. 잘못해서 나무 위나 강 같은 곳에 떨어지는 차는 없다. 2. 아부다비의 나란히 있는 세 개의 초고층 빌딩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한 자동차가 냅다 유리창을 뚫고 공중으로 날아간다. 그대로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옆 건물의 창을 깨고 그리로 착륙한다. 기둥 같은 곳에 부딪혔으면 추락했겠지만, 그런 일은 없다. 차는 다시 한번 창문을 깨고 옆 건물로 날아간다. 이쯤되면 이 영화는 픽사의 애니메이션 처럼, 자동차를 의인화.. 더보기
소아응급센터에서의 하룻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한밤중에 응급실에 갈 일이 몇 번은 생긴다는데, 우리는 다행히도 그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젯밤이 그날이었다. 아이가 샤워를 하던 도중 갑자기 답답하다면서 코를 감싸쥐더라는 아내의 전화가 왔다. 나는 마침 야근을 하고 있었다. 당장 크게 아픈 것은 아닌 듯해 다음날 아침 병원에 가보자는 의견과 당장 가보자는 의견이 우리 부부와 처가 사이에 갈렸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니 아내와 아이는 병원으로 향했다. 나 역시 야근을 끝낸 뒤 택시를 타고 아산병원 소아응급센터로 갔다. 그 시간에도 1호터널은 꽤 막혔다. 싱숭생숭했다. 먼저 도착한 아내와 아이는 진료와 대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응급실과 이비인후과 진료병동을 오갔다. 평소 잠드는 시간을 한참 넘긴 아이는 피로와 진료에.. 더보기
독창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베낀다, <작가란 무엇인가2>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에 이어 도 출간됐다. 정확한 판매량은 알 수 없지만, 왠지 이 시리즈가 책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선 꽤 인기를 끈 것 같다. 이 책의 포맷을 거의 그대로 따서 한국 작가들을 다룬 책을 보았기 때문이다. 1편에서 그랬던 것처럼 2편에서도 인상적인 몇 구절을 옮겨 적어본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독창적이지 않은 작가들은 과거나 현재의 다른 많은 이들을 모방하기 때문에 다재다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술적으로 독창적이려면, 자기 자신을 베끼는 것 말고는 다른 게 없지요. 나보코프(1899~1977) 조이스 캐럴 오츠각각의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고, 독립적인 것입니다. 어떤 책이 그 작가의 첫 번째든, 열 번째든, 오십 번째든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비평에 대해) 저처럼 많은 책.. 더보기
미국인의 초상, <아메리칸 스나이퍼> 크리스 카일(1974~2013)은 네번의 참전에서 160명의 적을 사살한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소속의 저격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는 그의 삶을 다룬다. 그러나 난 이 영화의 제목을 그냥 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영화가 그리는 크리스 카일이야말로 '진짜 미국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은 넓은 나라다. '합중국'(united states)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각 주마다 문화가 다르다. 영화에는 거대한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텍사스 사람인 크리스 카일이야말로 '미국인'의 진짜 모습이다. 카일은 텍사스 그리고 미국에 대한 애정에 넘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애정은 텍사스 혹은 미국 바깥의 사람에게는 절대 가닿지 않는다. 카일은 지역의 로데오 경기에 참여한 뒤 그 증거로 .. 더보기
학술서적 북디자이너는 수도사와 같다. 콜롬비아대학출판사 북디자이너 이창재씨 이창재씨는 미국에서 e메일을 보내 자신의 전시회 소식을 미리 알려왔다. 아마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보도자료는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이뤄져 있었다. 사실 재미교포에 대한 선입견이 없지 않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이창재씨는 재미교포 하면 떠오르곤 하는 과장된 쿨함, 느끼함이 없었다. 중학교 때 이민 갔다고 하는데 한국어 어휘, 발음이 모두 정확했다. 물론 북디자인도 한국의 많은 학술서들과는 달리 아름다웠다. 1996년 미국 뉴욕의 예술대학인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한 이창재씨(49)는 두 군데 직장에서 면접을 봤다. 모두가 웹 디자인에 눈을 돌리고 있어 프린트 디자인을 지향하는 이는 많지 않은 시절이었다. 콩데나스트는 한때 100종 이상의 잡지를 발행한 거대 출판 기업이었다. 으리으리한 건물에 들어가니.. 더보기
이름에 대하여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을 사용해야 하지만,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이름이다. 성별, 국적, 가족 등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요소야 생득적이라고 하지만, 이름은 그렇지도 않은데 스스로 고르지는 못한다. 물론 필명, 예명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아예 개명을 하는 이도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주어진 이름을 평생 갖고 살아간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 이름은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고 하는데, 가운데 글자는 돌림자다. 그래서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 중 내 이름과 한 글자만 다른 사람들이 꽤 있다. (내 성씨의 본관은 하나 뿐이다) 근래 내 이름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SNS나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한 마디씩 하며 안부를 전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KBS에서 .. 더보기
518의 철학적 의미 <철학의 헌정> 친절하신 김상봉 교수는 책의 어느 부분에 어떤 내용이 기술돼 있는지, 어떤 참고 자료를 활용해 기사를 작성하면 좋은지까지 알려주셨다! 헤겔은 프랑스 혁명의 철학적 의미를 규명하는데 학문 여정의 한 자락을 할애했다. 가 그 결과물이다. 주나라를 이상국가로 여긴 공자는 이를 위한 삶과 사회의 원리를 제시하기 위해 평생 노력했다. 그러나 한국의 철학자들이 동학농민운동, 3·1 운동, 4·19 혁명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에 철학적으로 대응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55)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말했다. “대체 철학이 뭡니까. 플라톤, 칸트, 맑스 이야기하면 철학입니까. 자기 사회에 대한 주체적인 성찰과 비판은 왜 철학이 아닙니까?” 5·18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 변곡점이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