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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가 두렵지 않은 '판도라' 인터뷰를 보니, 감독은 이 영화의 전형성에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아무튼 그 목적은 일정 부분 달성됐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무서웠으니까. 재난영화인 줄 알았는데 공포영화다. 어쩌면 ‘한국의 원자력발전 정책 비판’이라는 뚜렷한 목적의 프로파간다 영화다. 총제작비 150억원대가 투입된 한국 영화 가 29일 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경남 어느 지역을 연상시키는 40년 된 원전 소재지가 배경이다. 마을 사람들은 원전이 가져다 준 얼마간의 일거리에 반색하면서도, 노후한 원전의 안전성이 늘 불안하다. 원전 노동자들은 출근할 때마다 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힘겹게 뚫어야 하는 상황이다. 어느 날 이 지역에 예기치 못한 지진이 발생한다. 지진으로 인한 직접 피해는 크지 않았으나, 원전이 극도로 불안해진다... 더보기
공식 포스터가 티저 포스터보다 촌스러운 이유, 이관용 인터뷰 배우, 감독, 가끔 제작자 인터뷰를 하지만 그외 영화인 인터뷰를 할 일은 많지 않다. 포스터 디자이너를 만나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책도 그렇고 인터뷰도 흥미로웠다. 한 편의 영화를 가장 먼저 세상에 소개하는 이미지는 뭘까. 영화 속 영상의 일부도, 배우의 스틸 사진도 아닌 영화 포스터다. 많은 경우 포스터 디자이너는 영화가 전혀 촬영되지 않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포스터 디자인을 구상한다. 포스터는 영화와 대중을 최전선에서 연결하는 이미지다.미지 원본보기 이관용 스푸트닉 대표(44)는 (1999)에서 시작해 등 300여편의 포스터를 만든 한국의 대표적인 포스터 아트디렉터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포스터 51컷과 그 뒷얘기를 소개한 (리더스북)를 최근 펴냈다. 책과 인터뷰를 통해 영화 포스터에 대해.. 더보기
전인권과 지미 헨드릭스 국가 연주도 감동적일 수 있을까. 어떤 음악인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인권의 공연은 11·19 촛불집회의 하이라이트였다. 그가 부른 노래의 가사들을 살펴보면 이날의 선곡이 매우 정교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첫 곡 ‘상록수’는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는 가사로 끝난다. 이어서 부른 ‘걱정말아요 그대’에는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라는 가사가 있다. 이날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전국에 모인 100만 시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가사였다. 세번째 곡이 ‘애국가’였다. 그간 애국가는 보수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부정하려 해도 애국가에는 보수가 강조하는 국가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전인권은 이날 대담하게 애국가.. 더보기
마법과 현실의 크로스오버, '신비한 동물사전' 워너가 향후 먹거리를 장만한듯. 에디 레드메인의 오타쿠스러운 해석이 흥미로웠다. 외로운 고아 소년이 선량하고 강인한 마법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해리 포터’ 시리즈는 소설, 영화로 나오며 지난 20년간 가장 사랑받은 대중문화 콘텐츠였다. 소년·소녀들은 해리 포터의 성장담에서 어떻게 좋은 친구를 사귀는지, 두려움과 악을 이기는 용기는 어떻게 얻는지, 꿈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은 성인들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것이기에, 많은 성인 독자와 관객도 당당하게 해리 포터의 팬을 자처했다. 해리 포터가 강력한 악당 볼드모트를 무찌르면서 장대한 소설과 영화는 모두 끝났다. 그러나 해리 포터 세계관의 매력은 빛바래지 않았다. 눈치 빠른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이를 놓칠 리 없다. 영화판 ‘해리 포터’.. 더보기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슈퍼소닉' 오아시스 2집 같은 음반을 내기 위해선 그저 무언가 타고나야 한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1996년 8월 10, 11일 영국 넵워스에서는 25만명의 관객이 운집한 공연이 열렸다. 이 공연 예매를 시도한 사람만 260만명이었다. 공연의 주인공은 1990년대 영국 최고의 밴드 오아시스였다. 오아시스가 정식 데뷔 싱글 ‘슈퍼소닉’을 발매한 건 1994년 4월이었다. 오아시스가 영국을 넘어 90년대를 대표하는 세계적 밴드로 자리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년여에 불과했던 셈이다. 24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맷 화이트크로스)은 오아시스가 전설적인 넵워스 공연을 치르기까지 겪었던 짧지만 격렬했던 사건들을 그렸다. 영화 시작부터 ‘f’로 시작되는 욕설이 섞인 대화들이 들려온다. 오아시스의 핵심인 기타리스.. 더보기
외로운 소년, 소녀의 진실과 거짓말, '가려진 시간' 이 영화의 흥행 실패와 함께 '강동원'이 장르가 됐다는 주장은 사라지게 됐다. 난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지만, 관객이 강동원의 존재에도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지점이 조금은 짐작된다. 그거 나중에. 엄마를 사고로 잃은 수린(신은수)은 새아빠(김희원)를 따라 화노도로 이사온다. 외로운 수린은 유체이탈, 귀신소환 같은 자신만의 놀이에 빠져 있다. 고아 소년 성민(이효제)은 수린에게 조금씩 다가서고, 외로웠던 소녀와 소년은 곧 친구가 된다. 어느 날 성민과 또래 친구들은 공사장 발파 현장을 구경하겠다고 나서고, 이를 발견한 수린도 소년들을 따라간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발견한 의문의 동굴 속에서 신비하게 빛나는 돌을 줍는다. 수린이 동굴에 떨어뜨린 머리핀을 주우러 갔다 돌아온 사이, 소년들은 모두 사라진다. .. 더보기
영감의 원천으로서의 웨스턴, '로스트 인 더스트' 미국의 창작자들에게 웨스턴은 영원한 영감의 원천인 것 같다. 한국 창작자들에게 조선 후기나 구한말이 그런 것처럼. 가본 적도 없는 낯선 곳에 순식간에 다녀온 듯한 경험은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다. 11월 3일 개봉하는 영화 를 보는 관객은 103분 동안 황량하고 건조한 미국 텍사스를 헤매고 온 듯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입 안에서 버석버석한 흙먼지가 씹히는 느낌이다. 빚더미에 앉은 동생 토비(크리스 파인)는 범죄 이력이 많은 형 태너(벤 포스터)와 함께 텍사스의 작은 은행들을 돌며 강도 행각을 벌인다. 어머니의 유산인 농장이 은행에 차압당할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형사 해밀턴(제프 브리지스)과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의 파트너 질베르토(길 버밍햄)는 형.. 더보기
슈퍼히어로물의 생명연장, '닥터 스트레인지' 마블 슈퍼히어로에 조금 싫증이 나는 느낌이었는데, '닥터 스트레인지'로 약간 생명 연장한 것 같다. 슈퍼히어로물은 어디까지 진화할까. 유전적 돌연변이(엑스맨),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갑부(아이언맨, 배트맨), 외계인(슈퍼맨), 신(토르)에 좀도둑(앤트맨)까지 나왔으니, 더 나올 것이 있나 싶다. 그렇게 수많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나오는 사이, 관객들이 조금씩 피로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24일 시사회를 통해 국내에 처음 공개된 는 시리즈로 유명한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이다. 결과적으로 는 조금씩 시드는 조짐이 있던 슈퍼히어로 장르의 활력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고, 향후 나올 또 다른 시리즈와의 연결고리도 확보했다. 신경외과 의사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탁월한 실력을 가졌지만 다소 오만한 .. 더보기
매혹적이면서 구역질나는, '네온 데몬'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는 '식인'을 소재로 한 영화가 꽤 있었다. '네온 데몬'도 그 중 하나다. 난 이 영화가 다소 공허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의견도 많은 모양이다. 은 혀로 핥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동시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운 영화다. 여기서 ‘구역질’이란 은유가 아니다. 영화 종반부엔 정말 일부 관객의 구토를 유발할 만한 장면이 나온다. 소도시 출신의 순진한 16세 소녀 제시(엘르 패닝)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혼자 살며 톱모델의 꿈을 꾼다. 갈고 닦아 아름다워진 미녀들 사이에서 타고난 미의 기운을 발산하는 제시는 ‘유리 속의 빛나는 다이아몬드’처럼 눈에 띈다. 톱모델들은 제시의 아름다움을 질투하기 시작한다. 영화 줄거리를 더 길게 쓰지 않는 이유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세한.. 더보기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해결해주는 천사, '죽여주는 여자'와 이재용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이재용 감독 인터뷰. 윤여정의 캐릭터를 영화 캐릭터에 잘 녹여냈다. 윤계상이 이런 영화에 꾸준히 나오는 것 같아 좋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랑과 죽음.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고 운명이다. 두 가지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사이거나 성인이다. 영화 (6일 개봉)엔 그런 사람이 나온다. 주로 탑골공원을 무대로 일하는 소영(윤여정)은 65세의 ‘박카스 아줌마’다. 노인들 사이엔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로 인기가 많다. 어느날 소영은 우연히 재회한 옛 ‘고객’ 재우(전무송)로부터 또 다른 고객들의 근황을 전해듣는다. 맞춤양복 아니면 입지 않는 깔끔한 신사였으나 이제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스스로 용변조차 볼 수 없는 노인, 쪽방촌에 살며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 노인.. 더보기
'해리 포터'와 다른 점,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민음사)를 읽다. 1970~80년대 영국의 기숙학교 헤일셤을 배경으로,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캐시와 그의 친구 토미, 루스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다. 영국의 기숙학교, '3인조'라는 점에서는 '해리 포터'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폐쇄적인 공간, 엄격한 학교 규율 아래서 그들만의 스릴과 자유를 추구하는 청소년들이 나온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모두 다르다. '해리 포터'가 비록 서양 전래의 괴담이나 전설에서 많은 소재를 따왔고, 영국 기숙학교라는 공간 역시 청소년 소설의 전형적 배경이라 할 수 있지만, '해리 포터'는 회고에 빠진 적이 없다. 오히려 미래에 펼쳐질 볼드모트와의 결전을 예비하는 것이 시리즈의 주된 동력이라 할 수 있다. .. 더보기
스타로서의 히치콕 '히치콕' 1228쪽에 달하는 앨프리드 히치콕의 평전 '히치콕'(패트릭 맥길리건/그책)을 읽다. 책의 두께에서 알 수 있듯 "타인의 사생활을 너무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꺼림칙한 기분"(박찬욱 감독의 추천사)까지 들게 하는 상세한 책이다. 데이비드 오 셀즈닉, 살바도르 달리, 잉그리드 버그만, 그레이스 켈리, 캐리 그랜트, 제임스 스튜어트, 버나드 허만 같이 잘 알려진 영화인들과의 인연, 뒷이야기도 나오지만, 잘 모르는 영화인들의 이야기가 더 많다. 그래서 영국 시절이나 할리우드 초반부까지 읽다 읽다 지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오기가 생겨 나 이나 나 까진 읽어야지 않겠냐는 생각에 꾸역꾸역 읽다가 결국 히치콕 말년의 실패작에 이르기까지 완독했다. 히치콕은 자기보다 하루 늦게 태어난 알마 레빌과 결혼해 평생 해로했다.. 더보기
애국의 품격,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미국식 애국영화의 품격. “애국은 불한당들의 마지막 도피처”(새뮤얼 존슨)라 했다. 애국을 위해 자유, 평등과 같은 그 모든 여느 소중한 가치를 깔아뭉개는 사람을 경고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애국이 우리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터전을 아끼고 사랑해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열망이라면 누가 시비할 것인가. 할리우드에서 드문 보수주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86)의 신작 (이하 설리·28일 개봉)은 애국의 한 방향을 보여주는 영화다. 는 2009년 1월15일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실화에 기반을 둔다. 이날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US항공 소속 1549편 여객기는 이륙 직후 새떼와 충돌해 양쪽 엔진을 잃었다. 회항이 어렵다고 판단한 기장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는 허드슨강에 비행기를 비상착수시켰다. .. 더보기
무엇에 쓰는 지옥인가,'아수라' 개봉 첫 주 200만에 못미칠 듯. 손익분기점은 350만 가량. 조각 같은 외모의 정우성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극장문을 나설 수도 있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연출 김성수) 상영시간 내내 정우성의 얼굴은 갖가지 방식으로 상해 있다. 눈빛은 때로 미친 것처럼 희번덕거린다. 그가 내뱉은 대사의 절반엔 욕설이 섞여 있다. 정우성뿐 아니다.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등 주요 배역은 물론, 김원해, 김종수, 김해곤, 윤제문 등 조연까지도, 이 영화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없다. 법도 없고 의리도 없고 윤리도 없다. 선한 사람은 없다. 악당과 더 나쁜 악당이 있을 뿐이다. 아니, 애초에 이 영화 속 사람들에게 선악 개념을 적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의 등장인물들은 문화와 양식을 가진 .. 더보기
브리짓 존스의 이상한 직업관 40대 초반이면 필드에선 커리어의 절정 아닌가. 게다가 '최고의 PD'라면서. 그런데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연발해도 되는 걸까. 낙천적이고 사랑스러운 브리짓 존스가 12년만에 돌아왔다. (2001)와 (2004)으로 많은 여성관객을 사로잡은 캐릭터다. 여성 원작자(헬렌 필딩), 여성 감독(샤론 맥과이어), 여성 주연(르제 젤위거)이 뭉쳤다. 하지만 28일 개봉하는 를 ‘여성영화’라고 부르기엔 주저된다. 극중 브리짓 존스의 이상한 직업관 때문이다. 줄거리는 전편에서 느슨하게 이어진다. 43세의 브리짓 존스는 시청률 1위 뉴스쇼의 프로듀서로 성공한 직업인이다. 하지만 여전히 싱글인데다, 이젠 ‘여성으로서의 유통기한’도 걱정하고 있다. 록페스티벌에 간 존스는 우연히 연애정보회사 CEO인 잭 퀀트(패트릭.. 더보기
세월의 노예, 감정의 노예, '카페 소사이어티' 우디 앨런의 수작. 새로 내놓은 티비 시리즈는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언젠가부터 우디 앨런(81)은 일부러 그러기라도 하는 듯, 수작과 범작을 번갈아가며 매년 1편씩의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7월 개봉한 이 범작이라면, 올해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인 (14일 개봉)는 수작이다. 인생의 아이러니, 사랑의 씁쓸한 뒷맛, 호사스런 삶에 대한 동경과 경멸 등 앨런의 영화에 반복적으로 드러난 주제들이 능란하게 제시돼있다. 1930년대 미국. 뉴욕 출신 바비(제시 아이젠버그)는 성공을 꿈꾸며 할리우드로 건너가 유능한 에이전시 대표인 삼촌 필(스티브 카렐)을 찾아간다. 필은 비서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바비의 길 안내를 부탁한다. 바비는 첫눈에 보니에게 빠지지만, 보니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한다. 보니의 숨은 남자친.. 더보기
영화에 미친 남자들, '연인과 독재자' 영화에 미친 남자들이 있었다. 한 명은 영화감독이었고, 한 명은 정치인이었다. 둘의 만남은 악연에 가까웠지만, 영화라는 공통분모로 통하는 점도 없지 않았다. 22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연출 로버트 캐넌·로스 아담)는 영화감독 신상옥(1926~2006)과 배우 최은희(90) 부부의 납북과 탈출 과정을 그린 영화다. 1978년 1월 홍콩으로 투자자를 만나러 갔던 최은희는 정체 모를 사람들에게 납치됐다. 8일간의 선박 여행 끝에 도착한 북한 남포항에는 김정일이 마중나와 있었다. 6개월 뒤 최은희를 찾으러 홍콩으로 갔던 신상옥 역시 납치돼 북한으로 향했다. 제공된 주택에 머물며 김정일과 함께 공연을 볼 정도로 비교적 편한 생활을 했던 최은희와 달리, 신상옥은 수용소에 감금돼 사상교육을 받아야 했다. 서로의 생.. 더보기
디펙티브 디텍이브의 활약, '범죄의 여왕' 꽤 재미있게 봤지만 흥행은 잘 되지 않은 . 역시 상업영화에는 '스타발'이 중요하다. 추리소설 팬들이라면 ‘defective detective’란 말뜻을 쉽게 짐작할 것이다. 이는 ‘결함 있는 탐정’이란 의미인데, 범죄의 추리에는 능숙하지만 다른 면모는 어딘가 부족한 탐정을 말한다. 이런 탐정은 마약이나 알코올에 중독돼 있거나, 몸이나 마음에 장애가 있을 때도 있다. 인기 TV 시리즈 의 주인공인 전직 경찰 몽크는 심각한 결벽증이 있어 타인과의 악수조차 꺼린다. 이렇게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탐정들이 극악한 범죄자들의 교묘한 범행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고 독자들은 재미와 흥분을 느낀다. 25일 개봉하는 (감독 이요섭) 속 탐정 역시 전형적인 수사관은 아니다. 이 영화 속 탐정은 ‘오지랖 넓은 아줌마’ 양미경.. 더보기
시시한 악당, 시시한 영화, 최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해 지난 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시시하다고 느끼던 차에 가디언 기사를 읽고 엮어본 기획. 할리우드도 슬슬 대비책을 내놓아야 할 듯. 때로 할리우드 영화 속 악당들은 주인공보다 더 매력있는 존재였다. 이들 악당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을 넘어, 우리 사회와 삶에 도사린 악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했다. 의 다스 베이더, 의 한니발 렉터, 의 조커는 영화가 낳은 불세출의 인기 캐릭터로 남아 있다(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요즘 악당은 어떤가. 3일 개봉한 는 아예 슈퍼히어로 영화 속 악당들을 모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다. 할리퀸, 데드샷, 조커 등 배트맨의 숙적들이 한꺼번에 나온다. 배트맨은 카메오처럼 잠시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팬들의 기대와 달리 에 대한 반응은 좋지 않다. 한국에서 200만 가까.. 더보기
한국형 재난영화의 사회적 함의, '터널' 한참 늦게 올리는 리뷰. 지난 여름 한국영화 중 막바지로 개봉해 좋은 흥행 성적을 냈다. '한국형 재난영화'의 사회적 함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를 남겼다. 할리우드의 재난영화 주인공들은 재난 그 자체와 싸운다. 한국의 재난영화 주인공들은 재난뿐 아니라 재난을 둘러싼 사회와도 싸운다. 10일 개봉하는 영화 은 , , 로 이어지는 2016년 여름 성수기 한국영화 신작 릴레이의 마지막 주자다. (2013)로 ‘장르 비틀기’에 일가견을 보인 김성훈 감독의 작품으로, 쇼박스가 투자·배급했다. 자동차 딜러 정수(하정우)는 딸의 생일 케이크를 사들고 차로 귀가하던 중이다. 기름을 3만원어치만 넣으려다가 가는귀먹은 노인 주유원의 실수로 가득 채운 걸 제외하고는 별다른 일이 없어 보인다. 마침 뜸을 들이던 판매 계약.. 더보기
살아남기 위해선 거만하고 못된 년이 되어야 해, '돌로레스 클레이븐' 아직 읽지 않은 스티븐 킹의 소설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얼마나 많이 썼는지, 꽤 읽었는데도 아직 남아있다. 언젠가 영화로도 제작된 을 추석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역시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가정폭력 문제를 이보다 더 잘 쓰기가 쉬울까. 이른바 '순수문학'에선 가정폭력에 고통받는 여성이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겠지만, 스티븐 킹의 소설에선 복수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현실에선 전자의 경우가 많겠지만, 우린 장르소설 속에서라도 복수를 꿈꾼다. 영화화된 . 캐시 베이츠가 에 이어 다시 한번 스티븐 킹의 소설 원작 영화에 출연했다. 소설은 오랫동안 가정부로 일하던 집의 안주인 베라를 죽인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온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1인칭 진술 형식이다. 돌로레스는 자신은 베라를 죽이지 않았지만, 사.. 더보기
공적 업적을 위한 사적 삶의 희생, '아우구스투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로마와 그에 이어지는 중세 시대에 관심이 많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 먹은 건 아니지만, 괜찮은 대중서가 있으면 손길이 뻗는다. 존 윌리엄스의 (구픽)란 장편 소설이 출간됐다는 소식에 마음이 동한 것도 그 때문이다. 로마의 첫번째 황제(본인은 '제일 시민'이라고 칭했지만)인 아우구스투스의 삶을 편지, 일기, 보고서 등의 형식으로 엮어낸 소설이다. 아우구스투스, 키케로, 아그리파, 클레오파트라,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등 실존 인물들의 이름을 건 문서들이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창작이다. 정작 아우구스투스의 목소리는 소설 마지막의 서한문을 통해서야 나온다. 이전까지 아우구스투스의 면모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 조금씩 드러난다. 아우구스투스, 즉 옥타비우스가 애송이였던 시절.. 더보기
어느 삶의 압축, '가만한 당신' 최윤필의 을 읽다. 저자는 한국일보 기자고, 덜 알려진, 그러나 중요한 인물들의 부고로 이루어진 이 책은 한국일보에 연재됐다. 연재 당시에는 챙겨보지 못하다가, 책으로 묶인 뒤 접했다. 소수자의 가치를 옹호한 사람들, 좌충우돌하는 모험의 일생을 보낸 사람들, 주류가 강제한 폭력적 제도에 저항한 사람들이 주로 나온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2012년 4월 대통령자유메달 수상자인 인권법률가 존 마이클 도어였다. 그는 같은 해 수상한 매들린 울브라이트, 밥 딜런, 토니 모리슨, 존 글렌에 비해 '무명'에 가까운 법률가였지만, 앞선 누구보다 용기있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도어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 평등, 정의 같은 가치를 지켜낸 공무원이었다. 이를 위해 때론 목숨을 걸었다. 전통적인 남부 공화당 출신인 그는.. 더보기
친일파에 대한 생각, 뒤늦게 '암살'을 보고 몇 년간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영화 담당을 하니 놓친 영화를 찾아봐야할 일이 생긴다. 이번주 시사를 앞두고 어제 본 도 그런 경우였다. 일단 안옥윤/미츠코 쌍둥이 설정과 그에 따라 안옥윤이 미츠코의 집에 자연스럽게 잠입한다는 내용, 하와이 피스톨이 가와구치 대위와 우연히 엮여 그의 결혼식장에 경호원으로 들어간다는 설정 등은 지나치게 극적이고 작위적으로 보였다. 그런 장치 없이 스트레이트하게 달려도 충분히 재미있을 영화였다. 흥미로운 건 일본 밀정 염석진 캐릭터다. 제작진이 이 캐릭터에 입체성을 주기 위해 당대 친일파의 논리를 세심히 살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의 밑도 끝도 없는 악당 친일파 한택수(윤제문)와도 대비되는 부분이다. 젊은 시절의 염석진은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기도하다가 붙잡히는데, .. 더보기
죽어가는 뮤즈에게 보내는 레오나드 코헨의 마지막 편지 레오나드 코헨의 노래 중 'So Long, Marianne'이란 곡이 있다. 그 마리앤은 실존 인물이었으며 7월 29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고 한다. 코헨은 1960년대 그리스의 한 섬에서 마리앤 이랜을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그녀를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 마리앤의 오랜 친구이자 코헨과의 사연을 알고 있는 친구가 코헨에게 연락해 마리앤이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코헨은 두 시간만에 아래와 같은 편지를 써서 친구에게 전했다. 친구는 다음날 그 편지를 병상의 마리앤에게 읽어주었다. 마리앤은 편지를 듣고 기뻐했으며, 이틀후 의식을 잃었다. 편지 내용은 아래와 같다. "마리앤. 우리가 정말 늙고 우리의 몸이 허물어져내리는 시간이 왔네요. 나도 곧 당신을 따라갈 것 같아요. 내가.. 더보기
고결한 남자의 죽음, '왕좌의 게임' HBO 드라마 은 누구나 주인공으로 생각했던, 그래서 많은 시청자들이 정을 주었던 인물을 사정 없이 죽여버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 시초는 시즌 1 종반부 에다드 스타크의 참수 장면이다. 사전에 정치적으로 정지된 바에 따르면, 스타크가 죄를 고백하면 조프리 왕은 자비를 베풀어 스타크를 풀어준 뒤 스타크가 영주로 있는 윈터펠로 쫓아내기로 돼있었다. 그러나 어리석고 제멋대로인데다가 갓 물려받은 권력의 크기에 도취된 소년왕 제프리는 이후의 정치적 후폭풍 따위엔 아랑곳 없이 스타크의 목을 베도록 명한다. 실질적으로 수렴청정을 하는 어머니가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시즌 6의 종영에 즈음해 조지 R R 마틴의 원작 소설 1부가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이전엔 번역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던 모양.. 더보기
미진한 컴백, '제이슨 본' 어딘지 미진한 컴백처럼 느껴지는 '제이슨 본'. '킹스맨'에서도 그렇고 요즘 할리우드 영화에서 IT 거물은 공공의 적. 3부작으로 구성된 ‘제이슨 본’ 시리즈(2002~2007)는 21세기 첩보액션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기억을 잃은 첩보원 제이슨 본은 국가 안보를 명목으로 한 감시체계를 회의했고, 살인에 죄의식을 느꼈으며, 제3세계 여성의 침대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는 비현실적인 특수무기보다는 맨주먹과 고전적인 총기를 사용했으며, 턱시도 대신 허름한 옷으로 정체를 위장했다. 뼈가 부러지고 숨이 끊기는 순간의 처절함을 보여주는 사실적인 액션 장면은 이후 많은 영화들의 전범이 됐다. 맷 데이먼(46)이 9년 만에 제이슨 본으로 돌아왔다. (2004)와 (2007)을 찍은 폴 그린그래스 감독도 함께다... 더보기
좀비는 평범한 괴물,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 인터뷰 잘 나가고 있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 인터뷰. 개봉 7일만에 660만 관객 동원. 부산행 KTX 속 좀비를 보기 위해 개봉 첫 주에만 530만 관객이 몰려들었다. 이번주 예매율도 1위를 달리고 있다. 또 하나의 ‘천만 영화’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동하던 연상호(38·사진)의 첫 실사 연출작이다. 그는 음울하고 기괴한 애니메이션 (2011)과 (2013)에서 한여름 쾌속 질주하는 흥행대작 으로 옮겨타는 극적인 변신을 했다. 연상호 감독을 최근 만났다. 의 연상호 감독 /이준헌 기자 - 왜 좀비영화인가. “좀비영화가 아니라 좀비가 좋았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은 초인이다. 능력치가 높다. 좀비는 별다른 능력은 없지만 대단히 공포스럽다. 난 어렸을 때부터 평범하고 특별한 재능이 .. 더보기
170억짜리 반공영화, '인천상륙작전' 어제 개봉한 '인천상륙작전' 리뷰.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2000년대의 한국영화들은 변화한 시대의 감수성에 맞추기 위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곤 했다. (2004)는 장동건·원빈 형제가 겪는 비극으로 분단의 아픔을 형상화했다. (2005)은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국군, 인민군, 유엔군이 팝콘을 튀겨 먹는 모습을 그렸다. (2011)은 거대한 흙덩이에 불과한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생명을 소진하는 참담함을 그렸다. 20일 언론시사를 통해 공개된 (CJ엔터테인먼트 투자·배급)은 방향을 달리한다. 총제작비 170억원가량이 투입된 이 대작은 선명한 ‘반공영화’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념을 위해 인륜을 저버린 패륜아들로, 국군은 가족애와 동료애가 넘치는 용사들로 그려진다. 6·25 개전 직후가 .. 더보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과거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7월 말에 내한한다고.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54)는 국내 다양성 영화 시장에서 가장 힘센 이름이다. (2011·4만명)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고레에다의 팬층은 (2013·12만명), (2015·10만명)를 통해 확고해졌다. 이는 가와세 나오미, 구로사와 기요시 등 동시대의 유명 일본 감독들이 가지지 못한 팬덤이다.21년 세월을 사이에 두고 제작된 고레에다의 데뷔작과 최신작이 나란히 선보인다. 지난 7일 개봉한 (1995)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던 고레에다가 처음으로 연출한 장편 극영화다. 그동안 영화제에서만 몇 차례 상영됐던 은 이번에 처음으로 정식 개봉됐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11번째 장편 는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