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태어나 살기도 고통스러운 세상, 일본의 여배우 하라 세스코는 세 번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녀를 이른 은퇴로 내몬 것은 탄생과 부활에 따른 고통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하라는 일본과 독일 파시스트들의 친선 대사로 처음 태어납니다. 독일의 영화 감독 아놀드 팽크는 당시 신인급이던 하라 세스코를 주연으로 발탁해 일본·독일 합작 영화 <사무라이의 딸>(1937)에 출연시킵니다.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격찬한 이 영화를 통해 하라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전쟁 시기의 그녀는 주로 군인, 경관의 딸을 연기했습니다.


패기만만했던 젊은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1945년 봄 하라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말괄량이 공주님>의 연출을 계획했습니다. 잔다르크 이야기의 일본판인 이 영화가 전쟁 막바지 일본 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는 명백했습니다. 그러나 필름 공급이 어려워져 영화 제작은 이뤄지지 않았고, 그 사이 일본은 패전했습니다.


종전 직후 구로사와는 새 시대에 걸맞은 영화를 기획하고, 이제 하라의 두번째 삶이 시작됩니다.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고 있는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에서는 <우리 청춘 후회 없다>(1946)가 국내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이 영화에서 하라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여신’으로 부활했음을 선언합니다.
극중 하라는 반전 좌익 운동을 하다 체포돼 옥사한 남편의 뜻을 이어 농촌 운동에 헌신하는 유키에 역을 연기했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도시 여성 유키에는 ‘비국민’(非國民)이라는 시골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견디며 고된 농사일을 합니다. 시대가 바뀌고 남편의 뜻이 알려지면서 유키에는 농촌 운동의 기수가 됩니다.
일본의 영화학자 요모타 이누히코는 <일본영화의 이해>에서 “누구도 그녀의 전향을 공공연히 비난할 수는 없”었다“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녀와 같은 전향자였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라의 세번째 삶은 거장 오즈 야스지로와 함께 시작하고 끝났습니다. 당시의 일본여성답지 않게 큰 체구로 전후 민주주의 계몽선각자 역을 하던 그녀가 전통적인 미덕을 간직한 일본 여성으로 되돌아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라는 오즈와 6편의 영화를 함께 했는데, 그 중에는 현대영화사의 걸작으로 꼽히는 <도쿄 이야기>(1957)도 포함돼 있습니다. 하라는 이 영화에서 시골에서 올라온 시부모를 정성껏 모시는 착한 며느리 역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하라의 배우 경력은 이로써 마지막이었습니다. 오즈가 60세의 나이로 사망한 1963년, 하라는 오즈의 장례식 참석을 마지막으로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로부터 47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녀는 한 번도 대중,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하라의 은퇴는 배우란 직업 자체의 속성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배우란 원래 다른 이의 삶을 짧은 시간에 대신 사는 사람들이긴 합니다만, 격동의 일본 현대사를 반영하는 영화 속 하라의 삶은 한 명의 여배우가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파란만장했습니다. 그녀는 이 거친 삶 속에 정신적으로 조로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전쟁 전후 일본인들의 삶과 마음을 한 몸으로 겪어낸 하라는 이제 90세의 할머니가 됐습니다. 일본 지방의 한 절에 은둔해있다는 그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전 진심으로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