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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배우를 말한다

영화 ‘그랑프리’ 김태희 

김태희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본인과 소속사, 심지어 대중들도 그가 얼마나 평범한 사람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네. 말도 안된다는 원성이 여기까지 들립니다. 김태희는 성형외과 의사들의 밥줄을 끊을 외모를 지녔습니다. 함부로 그 얼굴에 손을 댔다가는 조물주와 인간 모두에게 비난을 받을 겁니다. 게다가 그는 한국 최고 대학의 졸업장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역시 평범합니다. 전 김태희의 외모나 학벌, 이미지가 아닌 그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김태희에게는 통상 배우가 가져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여러 가지 품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열정, 야심, 질투, 이기심 등입니다.
배우란 어느 모임에서라도 시선을 독차지하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 족속이지만, 김태희는 구석에 조용히 있다가 자리를 떠도 아무 불만이 없는 사람인 듯합니다.



2007년 말, 출연작 <싸움> 개봉에 즈음해 김태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위에 적은 김태희에 대한 느낌은 그때 확실하게 굳어졌습니다.
타고난 외모 덕에 어쩌다가 배우의 길을 걷고 있지만, 김태희의 말투와 태도는 매우 평범했습니다. 그에게서는 특별한 ‘배우’의 아우라 대신, 여느 20대 여성의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때로 ‘이렇게까지 말해도 되나’ 할 정도로 격의 없는 솔직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김태희는 세 번째 영화 주연작에서 또다시 실패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개봉한 <그랑프리>의 흥행 수치는 밝히기 민망할 정도입니다. 추석 기간만 놓고 봤을 때, 하늘을 나는 개와 고양이가 등장하는 <캣츠 앤 독스 2>보다 적은 관객이 들었다고만 해두죠.



김태희가 평범하다고 해서 그에게 배우 자격이 없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김태희에게는 ‘연기력 논란’이 꼬리표와 같이 따라붙습니다. 하지만 그는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졌고, 발성이 비교적 정확합니다. 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대사를 하는 배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김태희는 표정이 단조롭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는데, 이는 연기 지도를 제대로 못한 감독도 함께 나눠야 할 책임입니다.
어느 영화에서 꼭두각시 같던 배우가 다른 영화에서 대단한 연기력을 보이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격합니다. 김태희보다 훨씬 연기를 못하는 여배우도 많습니다. 다만 그들은 김태희 정도의 스타가 아닐 뿐이죠.



우리는 김태희와 비슷한 인상이면서 조금 높은 연배의 배우를 한 명 떠올릴 수 있습니다. 바로 김희선입니다. 김희선의 외모는 한때 미녀의 ‘표준’이었지만, 그 역시 언제나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곤 했습니다.
전 김희선이 안약이 아닌 눈물을 흘린 것 같다는 인상을 단 한번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김희선이 연기한 배역 중 가장 평범한 <와니와 준하>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김희선은 공주도, 귀신도 아닌 우리 주변의 20대 중반 여성이었습니다.



김태희는 <와니와 준하>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특별한 외모와 화려한 ‘스펙’을 이용해 천인, 비밀요원, 하버드 대학생을 연기할 게 아니라 ‘옆집 여자’가 돼 평범한 삶을 살고 사랑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이라도 불치병에 걸리거나 교통사고가 나거나 출생의 비밀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우연히 만났다가 작은 오해로 이별하고 먼 훗날 한번쯤 생각나는 인연의 사랑을 연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태희가 어떻게 ‘옆집 여자’냐고요. 그런 말씀 마세요. 원빈을 ‘옆집 아저씨’라고 우기는 것이 한국의 영화인들 아닙니까. 스크린 속 ‘보통 사람’의 기준은 현실보다 2.5배쯤 높습니다. 정말 평범하게 생긴 저와 당신이 진짜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건 설마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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