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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자유의지는 지니어스 서비스에 있다, <컬처 쇼크>

이번주엔 프런트가 아니라 다른 면 톱기사. 덕분에 분량이 평소의 절반. 컴퓨터 과학자들이 인터넷의 영향력에 대해 부정적인 멘트를 많이 해서 좀 의외였는데, 나도 대체로 그런 시각에 동의 


컬처 쇼크

재레드 다이아몬드 외 지음·강주헌 옮김/와이즈베리/392쪽/2만원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출판사 대표인 미국인 존 브록만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주소록”을 갖고 있다. 그는 1996년 엣지 재단을 설립해 인문학, 과학, 예술, 사업을 막론하고 두루 뻗은 인맥을 포섭했다. 엣지 재단은 특별 강연회와 연례 만찬회를 열어 이들의 교류를 주선하고, 그곳에서 생산된 지식을 세상에 전한다.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재레드 다이아몬드, 대니얼 카너먼 등이 엣지 재단의 회원이다. 


<컬처 쇼크>는 엣지 재단이 펴내는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의 두번째 권이다. 여러 명의 지식인들이 해당 분야의 핵심 쟁점과 트렌드를 소개한다. ‘마음’에 관한 질문들은 <마음의 과학>으로 이미 묶여 나왔다. 앞으로 생각, 생명, 우주에 대한 책이 나올 예정이다. 


<컬처 쇼크>는 사회, 예술, 테크놀로지 등에 대한 질문들을 다룬다. 과학과 인문의 통섭을 추구하는 재단답게, 문예비평가들의 현란한 수사나 추상적 사유를 피하고 현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전하는데 집중한다. 


세부 주제별로 보면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에 대한 전망이 요즘 지식인들의 화두인 듯 보인다. 17개의 장 중 절반 이상이 직·간접적으로 이에 대해 논했다. 작가 에브게니 모로조프는 인터넷의 영향력이 과대평가됐다고 생각한다. 그는 미국 국무부가 구글, 트위터 등 정보통신 기업과 밀접하게 연대하는 현상을 비판하면서 “이들(정보통신 기업)의 관심사는 돈을 버는 것이지 미국의 이상을 세상에 알리는 게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인터넷이 형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공론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지나치게 많은 의견들이 돌아다니고, 무수하게 많은 천박한 이유로 사람들을 조롱하기가 너무 쉬우며, 아무도 뭔가를 강력하게 믿지 않는 현상을 우려했습니다.…얄궃게도 이런 현상은 내가 온라인 행동주의의 무분별한 특성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점 중 하나입니다.”


의외로 이 책에 등장하는 컴퓨터 과학자들은 인터넷의 영향력에 대해 부정적이다. 데이비드 겔런터는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이긴 하지만, 그 정보의 질은 높지 않음을 지적한다. 이는 워드프로세서 덕분에 글을 쓰기가 편해졌지만, 글의 품격이 높아지지는 않은 현상과 흡사하다. 재런 래니어는 집단이 참여해 함께 정보를 만드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약점을 말한다. 위키피디아의 옹호자들은 대중의 참여도가 높아지면 여러가지 오류나 문제가 수정될 가능성도 높다고 보지만, 이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이 가진 자유시장에 대한 믿음과 흡사하다. 검색엔진은 어떤 질문이든 위키피디아를 가장 먼저 안내하기에, 위키피디아 바깥의 지식 생태계는 고사하는 단계를 밝고 있다. 텍스트가 반드시 갖춰야하지만 위키피디아에 없는 것은 바로 ‘개성’이다. 래니어는 “바람직한 텍스트는 정확한 정보의 모음을 넘어서야 한다. 바람직한 텍스트는 개성의 표현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컨텐츠는 비할데 없는 개성의 표현이어야지, 초자연적인 예언자가 돼서는 곤란하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프랑크 쉬르마허는 1980~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미국 과학소설이 드러내곤 했던 사이버펑크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에게는 두뇌가 필요하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컴퓨터가 두뇌의 역할을 이어받았고, 사고(思考)는 인체 바깥의 플랫폼, 즉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진행된다. 이쯤되면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가 인간을 사용한다고 말해도 좋겠다. 애플사의 아이튠즈가 제공하는 지니어스 서비스를 생각하면 쉽다. 사용자가 어떤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했는지, 어떤 노래를 즐겨 들었는지를 기억했다가 그에 맞는 어플리케이션과 노래의 추천 목록을 제공한다. 근대 이후 철학자들은 잊을만하면 “자유의지는 있는가”라는 주제에 대해 설전을 벌이곤 했는데, 아이폰 시대의 자유의지는 지니어스 서비스에 있다고 말하는 이가 나타난 셈이다. 다만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에 맞추었던 19세기의 테일러주의가 비판을 받았던 반면, 인간의 사고를 인공지능에 맡기는 21세기의 테일러주의는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은 기억해두어야겠다. 


이밖에도 <총, 균, 쇠>의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한 사회가 닥쳐온 재난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하는 이유를 역사 속 명멸해간 여러 문명권에서 찾아본다. 미디어활동가 데니스 더턴은 예술이 문화적 산물일 뿐 아니라 진화론적 적응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즐기는 어떤 예술에는 문명, 시대를 넘어 이해될만한 보편성이 있다는 것이다.  U2, 콜드플레이, 폴 사이먼, 데이비드 보위 등 쟁쟁한 대중음악가들의 음반을 제작한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는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명확한 이론을 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극단적인 직관을 칭찬하는 예술가들, 오직 합리성을 신봉하는 과학자들의 중간에 서 있다. 변기에 ‘샘’이란 제목을 붙여 출품한 마르셀 뒤샹은 관객에게 “와서 보고 가치를 창조해내라”고 말한다. 가치는 예술품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이 만들어낸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