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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있는 교양서, '앞으로의 교양'



스카쓰케 마사노부의 '앞으로의 교양'(항해)을 읽다. 일본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의 의뢰로, 편집자인 스가쓰케가 미디어, 디자인, 건축, 경제, 문학, 생명 등 12개 분야의 명사와 월 1회 대담을 했고, 그 중 11개를 묶어서 책을 냈다. 11명 중 내가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고는 건축가 이토 도요,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 정도였다. 각 대담의 분량이 길지 않고, '일본책은 정리를 잘한다'는 인상이 있어, 우연히 입수하고 얼마 뒤 읽기 시작했다. 대담이 2016년 9월~2017년 9월 진행됐으니, 비교적 최근의 양상과 흐름에 대한 정보를 기대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의외로 인사이트가 있었다. 각 대담자 당 길지 않은 분량이다보니 간략하고 단정적이라는 인상도 없지 않았지만, 이와 같은 책에 기대하는 바가 바로 그러한 간결함이다. 사전 조사를 많이 했으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쉬운 질문부터 던져나가는 인터뷰어의 태도가 좋았다(인터뷰어로서 이상적인 자세다). 구루인 양 허세 부리거나, 20~30년전 공부에 기대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변화를 읽어내려 고민하는 인터뷰이들의 태도도 좋았다. 나도 모르게 몇 군데 줄을 쳤다. 몇 문장 인용한다. 


개인의 개성이 사물을 말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주관을 억제하고 사실을 담담하게 쓴 기사보다 글쓴이의 색깔이 드러나는 기사가 더 잘 읽히거든요. 

앞으로의 시대에는 기자보다 편집자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고, 더 덧붙이자면 편집자보다 편집자 겸 경영자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 오늘날에는 동영상, 음성, 사진, 문자, 이벤트 등 무수한 편집 대상이 있습니다. 게다가 각 분야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져서 다양한 분야를 연결해 의미를 창출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편집자는 이 좋은 재료를 활용할 줄 아는 요리사가 되어야 하죠. (미디어, 사사키 노리히코)



그 시대에 적합한 건물을 만들지 않으면 건축은 힘을 잃습니다. 즉 동시대성을 획득하지 않으면 살아 있는 건축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클라이언트가 명확하지 않은 건축은 예외 없이 잘되지 않습니다. (건축, 이토 도요)



제 생각에 아사다 아키라나 가라타니 고진은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아니거든요. 그분들은 모더니스트입니다. 가라타니는 이제 전형적인 이와나미-아사히 지식인이 되었습니다. (...)이분들은 시대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의 대표로 일컬어져 왔지만, 사실은 1970년대 후반에 일본이 고도 소비 사회가 되면서 무척 복잡한 사회가 된 것, 즉 정보의 유통 경로가 너무 많아지고, 대중이 와해되어서 소위 '분중(分衆)'이 되어가는 현상에 대응하지 않은 분들인 거죠. 

결국 "대중이 지금 원하는 것은 이겁니다" 하고 눈에 보이게 드러내면, 우리 사회는 그것을 정의처럼 취급해버리죠. 그런 식의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아요. 대중의 생각은 정의도 정답도 아니거든요. 그들의 생각을 가시화한 다음에 그것과 어떻게 거리를 둘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인간은 대체로 변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통치 기구를 운영해 나가야 하는 겁니다. (사상, 아즈마 히로키)


세계 상위 8명과 하위 50퍼센트의 재산 규모가 같아요. (...) 요점은 경제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양극화 상황이라는 겁니다. 

일본은 은둔형 외톨이 증후군에 걸려서 자본주의라는 학교에서 졸업하고 싶지 않다고 뗴를 쓰고 있어요. 

결국 '더 빨리, 더 멀리, 더 합리적으로'라는 근대 사회의 원리에서 벗어나 '더 느리게, 더 가까이'를 실현해야 화석 연료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겠죠. (경제, 미즈노 가즈오)


인간의 의지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은 나약하다는 전제하에 제도 및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는 게 예방 의학의 기본 생각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에 대해 체념하고 있다고 할까요. (건강, 이시카와 요시키)


우리 뇌는 60만 년 전부터 더 이상 커지는 걸 그만뒀습니다. 대신 인간은 1500cc정도 되는 작은 뇌로도 살아갈 수 있도록 언어를 만들어냈죠. 주변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기억을 외부에 맡기는 행위입니다. 책에 정보를 전부 넣어두면, 사람은 기억할 필요가 없죠. 

인간에게 남아 있는 것은 생각하는 힘, 혹은 응용하는 힘입니다. (...) 하지만 인공 지능이 나오면 생각과 응용까지 외부에 위탁하게 될지도 모르죠. 우리가 뭔가를 원할 때, '당신이 원하는 게 이거죠?' 하고 외부에서 알려주면, 사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게 되니 그저 버튼 클릭으로 물건을 사버리는 겁니다. (인류, 야마기와 주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