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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고인의 유고들을 재빨리 손대지 않고 출판한다고 해서 고인의 업적을 기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타계한 소설가 겸 번역가 이윤기의 컴퓨터 하드 디스크에 남아있던 원고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은 그중 하나다. 딸이자 번역가인 이다희가 유고를 정리했다.

<풀루타르코스 영웅열전>을 저본으로 삼아 그리스 신화, 로마 역사 속 영웅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여기에 한국 독자가 익히 알고 있는 동양 설화를 비교했다. 이윤기의 여느 인문 교양서가 그러하듯, 초등학교 고학년생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쓰여졌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서양문화의 큰 뿌리인 헬레니즘의 초석이기에, 여기 인용된 상징적 표현, 촌철살인 경구를 익히면 현대 언어에 대한 지식도 풍부해진다. 그리스 영웅 중에서도 헤라클레스와 쌍벽으로 꼽히는 테세우스 이야기를 보자. 테세우스의 탄생은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들 유리왕 신화와 비슷하다. 주몽이 임신한 아내를 황급히 떠나며 아들을 위한 증표를 남긴 것처럼, 아테나이의 왕 아이게우스도 태어날 아이를 위해 가죽신과 칼 한 자루를 남겼다. 훗날 태어난 이 아이의 이름은 테세우스였는데, 이는 ‘감춰둔 보물’을 뜻한다. 또 이 이름은 사전을 뜻하는 영어의 ‘시서러스’(thesaurus)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윤기는 사전이란 “역사가 감추어둔 언어의 보물 창고 아닌가?”라며 이야기를 푼다.

마케도니아 출신 정복자 알렉산드로스는 신화와 역사 사이에 걸친 영웅이다. 그는 엄연한 역사의 인물이지만, 훗날 스스로 신격화를 시도했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이 영웅은 역시 대단한 정복자이자 야심가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마저 무시했다. 독이 들어 있을지 모르는 탕약을 시의 앞에서 보란 듯이 마신 남자였지만, “개같은 인생”이란 화두의 철학자 디오게네스 앞에선 “햇빛을 가리지 말라”는 부탁을 받았다.

1990년대 말 신문 연재분을 다듬어 그림, 이야기를 덧붙였다. 다듬다 말았는지, 아니면 애초 인물 비중이 다르기 때문인지 영웅 19명에 대한 서술 분량이 천차만별이다. 신문 한 면이면 소화할 듯한 장이 있는가 하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뻗쳐나간 장도 있다.

여러 장에 걸쳐 겹치는 에피소드도 있다. 알렉산드로스와 디오게네스 이야기는 각 장에서 나온다. 각권이 212쪽, 204쪽인데, 한 권으로 만들 수 없었는지 궁금하다. 각권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