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도루마 슌의 <물방울>을 읽다. 표제작 <물방울>을 비롯해 <바람 소리>, <오키나와 북 리뷰> 등 3편의 중단편이 들어있는 작품집이다. 표제작은 1997년 발표돼 그해 117회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받았다.
1960년 오키나와에서 태어난 저자의 작품을 '오키나와 문학'으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세 편의 작품 모두 오키나와의 역사, 문화에 깊게 뿌리박혀 있다. 그러나 이 토착적인 작품들이 바다 건너 독자에게도 호소력을 지니는 까닭은, 작가가 작품의 특수성에 인류 감성의 보편성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마련해둔 까닭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메도루마 슌. 미안하지만 우리가 이런 얼굴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일본영화 속 야쿠자 중간 보스.
우리가 오키나와 하면 떠올리는 것들은 일본으로부터 독립성을 가졌던 류큐 왕국의 역사, 일본 영토 중 유일하게 연합군과의 전투가 벌어진 상처, 전쟁 이후의 미군 기지 반대 투쟁 등일 것이다. <물방울>에 실린 작품들은 이러한 역사 상식을 흥미롭게 형상화한다. <물방울>은 어느날 일어나니 갑자기 다리가 부어오른 남자가 작은 상처 사이로 물을 뚝뚝 흘리는데, 밤마다 남자의 죽은 전우들의 혼령이 나타나 이 물방울을 받아먹는다는 이야기다. 이렇게만 요약하니 좀 으스스하게 느껴지겠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처럼 유머러스하다. 시골 무지랭이들의 황당하지만 생명력 넘치는 행동들이 웃음을 안겨준다. <바람소리>는 그에 비하면 정색한 작품이다. 전쟁 당시 죽었고 마을 주민들에 의해 풍장된 특공대원의 유골이 바람소리를 내고, 이를 취재하러 온 방송사 PD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엮인다. 전쟁이라는 배경을 깔고 개인의 생명 의지, 사소한 욕심에 따른 오랜 죄의식, 인간적인 비겁, 소년들의 무모한 공명심 등이 적절 비율로 그려졌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모범적'인 작법의 소설인데, 그래서 <물방울>이 더 재미있다.
<오키나와 북 리뷰>는 수십 권 책의 서평 형식으로 쓰여진 단편 소설이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은데 뒤로 갈수록 서평들이 오키나와 고유의 샤먼 유타 운동, '황태자를 오키나와 사위로!'라는 운동을 벌이는 사회운동가의 이야기로 모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샤면 유타와 그의 추종자들은 미군 기지에 자신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러 지구를 방문한 천왕성인의 사체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미군 부대로 돌입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진압당한다. 오키나와에 대한 차별 철폐 운동을 벌이던 사회운동가는 극우 민족주의자로 변신해 본토에 대한 완전한 복속 운동을 벌인다. 한국으로 치면 80년대의 민주화운동가가 2000년대의 국가주의자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린다고 할까.
나같은 소설 독자는 다른 나라의 역사,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지는 않는다. 그저 문학적으로 훌륭할 때 그 책을 선택한다. 그러나 문학적으로 훌륭한 책은 거의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의 역사, 문화,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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