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에겐 얼마나 많은 팬이 필요할까요.
참 이상합니다. 2년 전 아껴 입던 그 옷을 올해 꺼내 입으려니 참 민망합니다. 지난해 여름 질리도록 들었던 그 노래는 참 촌스럽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피곤합니다. 여름철의 생선회보다 변하기 쉬운 대중의 취향 때문입니다. 어제의 흥행 감독이 오늘은 흥행에 참패합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다음 작품이 또 잘 팔릴 것이란 보장은 없습니다. 제비 새끼가 먹이 달라며 입 벌릴 때보다 더 열렬히 새것을 구하는 이들이 바로 대중입니다.
애니메이션 <일루셔니스트>는 ‘시대착오적 예술가’를 다룹니다.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이라 불렸던 영화감독 자크 타티가 딸에게 쓴 편지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입니다.
1950년대쯤으로 추정되는 시대, 일루셔니스트는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거나 빈 와인잔을 채우는 등의 마술을 선보이는 방랑 마술사입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이 등장하고, 록밴드가 나왔습니다. 관객은 늙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철 지난 마술을 하는 일루셔니스트를 외면합니다.
마술사는 시대를 따라잡을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입니다. 영화 내내 거의 대사가 없는 마술사는 관객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공연을 합니다. 그도 어느 순간 공연계에서 영원히 도태되고 말겠지요.
단조롭던 마술사의 삶에 하나의 활력소가 생깁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선술집 공연에서 만난 소녀 앨리스. 순진한 그녀는 귀 뒤에서 동전을 만들어내고 모자에서 꽃을 꺼내는 마술이 진짜인 줄 알고 그를 따라나섭니다. 한물 간 예술가에게 진정한 팬이 생긴 겁니다.
물론 모든 예술가가 팬의 존재를 의식하진 않을 겁니다.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안다고 그 마음에 맞는 작품을 만들겠습니까. 어느 소설가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독자를 생각하며 쓰느냐고. 그는 말했습니다. 첫번째 독자, 즉 나 자신만 생각한다고. 자기 자신조차 만족시키지 못하는 글은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면 외로울 겁니다. 아무리 고고한 은둔 예술가라 할지라도 자기 외에 한 사람은 더 필요합니다. 동생 테오가 없었다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수는 지금의 절반도 되지 않을지 모릅니다. 막스 브로트가 없었다면 프란츠 카프카란 이름은 노동자재해보험국의 공무원으로만 기록됐을지 모릅니다.
예술가의 첫번째 팬은 그 자신입니다. 세상은 스스로를 응원하지 못하는 예술가를 받아줄 만큼 품이 넓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팬의 존재만으로 예술가는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갈 큰 힘을 얻습니다. 철 지난 마술이든, 시든, 노래든, 세월에 어긋난 그 무엇을 하든 말입니다. 어디 예술가만 그렇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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