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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경제적, 비인간적인 월스트리트, <호모 인베스투스>

학술적인 책이다. 인류학의 방법론을 설명하는 대목은 읽기가 좀 어렵지만, 현장의 상황이 잘 반영돼 있어 전체적으로 흥미롭다. 다만 오탈자가 너무 많다. 


호모 인베스투스

캐런 호 지음·유강은 옮김/이매진/520쪽/2만3000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브라질 내륙 소수 원주민의 삶을 관찰한 뒤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에 의문을 제기했다. 브로니스라프 말리노프스키는 파푸아 뉴기니의 트리브리안드 군도 원주민들의 농경과 주술을 연구한 뒤 인간의 경제적 본성에 대한 통찰을 전했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 말리노프스키같은 유명 인류학자들이 ‘원시 부족’을 연구한 것은 80~100년 전 일이다. 우리 시대의 인류학자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연구하는가. 젊은 인류학자 캐런 호는 세계 금융의 중심을 자처하는 월스트리트로 향했다. “‘주식회사 미국’을 개조하는 일에서 월스트리트가 어떤 구실을 하고 그 결과 시장 구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월스트리트 주변을 서성대며 애널리스트들을 인터뷰한 수준이 아니다. 프린스턴대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던 호는 투자 은행과 상업 은행의 성격을 모두 가진 뱅커스 트러스트 뉴욕 법인에 1996년 6월 취업했다. 그의 직책은 ‘내부 관리 컨설턴트’ 애널리스트였다. 이는 “은행 내부의 각기 다른 사업을 위해 ‘대리인이자 변화 조언자’로 활동하는 그룹의 일원”이었다. 


호가 취직하는 과정에서부터 월스트리트의 독특한 문화가 나타난다. 우선 월스트리트로 향하는 인재는 최고의 금융 지식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 최고의 학벌을 가진 이들이다. 월스트리트의 금융사들은 아이비리그 대학 중에서도 하버드와 프린스턴을 특히 선호한다. 금융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던 호가 뱅커스 트러스트에 취직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그의 프린스턴 간판이 있었다. 전문적인 기술, 비즈니스 상식은 ‘현장’에서 배울 수 있지만, 하버드나 프린스턴 학생이 가진 ‘똑똑함’은 그의 대학 간판으로밖에는 증명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예일대도 인기 있기는 하지만, 그곳은 좀 더 ‘리버럴’하며 ‘예술가 행세’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월스트리트 사람들은 판단한다. MIT는 괴짜라서, 스탠퍼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브라운, 컬럼비아, 코넬 등은 명성이 떨어져서 덜 선호된다. 월스트리트에서 하버드, 프린스턴 출신이라는 것은 같은 졸업장을 가진 거대한 가족의 일원이자 ‘선민’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마치 암흑가에서 이탈리아 시칠리 출신의 콜레오네 성씨를 가진 것처럼 말이다. 


월스트리트 금융사들은 하버드, 프린스턴 학생들을 포섭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투자 은행과 컨설팅 기업들은 가을 새 학기 첫날부터 화려한 취업 박람회를 연다. 선물 주머니, 머그컵, 물병, 모자, 티셔츠 등을 살포한다. 며칠 만에 몇 천 명의 학생들이 특정 금융사 로고가 적힌 상품들을 입거나 들고 캠퍼스를 활보한다. 채용 행사는 고급 호텔에서 열린다. 고급 양복을 입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남자들이 프리젠테이션을 한다. 회사 소개 영상에는 맨해튼 전경에 이어 멋진 고층 건물 내부를 활발히 걸어가는 양복 노동자들, 참석자들이 소매를 걷어붙인 채 진행하는 화상회의가 나온다. 은행 직원들은 자신이 얼마나 ‘완벽한 삶’을 사는지 자랑한다. ‘똑똑’하다면 월스트리트로 오라! 그것이 이 취업 설명회의 요지다. 철학자, 소설가를 꿈꾸던 학부생들은 졸업할 때가 되면 불현듯 예전부터 월스트리트에 가고 싶었다고 ‘깨닫게’ 되고, 그 결과 2005년 프린스턴대 졸업생의 40%가 금융 업계에 취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똑똑한’ 학생들이 월스트리트에 가면 어떤 일을 할까. 올리버 스톤의 영화 <월스트리트>에 나오는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처럼 멜빵을 맨 양복에 제트기를 타고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니며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까. 이곳에서 멜빵은 관리 부장쯤이 돼야 할 수 있다. 게코를 따라하느라 멋모르고 멜빵을 맨 채 출근한 한 신입사원은 “외모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열심히 일이나 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월스트리트 초짜들의 이상, 고든 게코. 그러나 저렇게 입고 다니면 혼난다. 


월스트리트 신입들은 1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한다. 자정 전에 집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밤을 샐 때도 많다. 주말, 휴일 출근도 부지기수다. 식사는 인근 식당에서 종이 박스에 테이크아웃해 사무실로 가져와 얼른 먹고는 다시 일한다. 구내식당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먹다가는 한가한 시간이 많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다고 도시락을 싸오는 것도 금기다. 도시락은 돈을 아낀다는 뜻이고, 그것은 아래 계급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곳에서 필요한 품성은 ‘똑똑함’이 아니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지루하고 고된 일을 견디는 인내력’일지도 모른다는 자조가 나온다. 


물론 이들은 돈을 많이 번다. 억대 연봉이 기본이고, 보너스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붙는다. 늦게 퇴근하면 검은 가죽 시트가 깔린 회사 소유의 고급 승용차가 집까지 데려다주고, 해외 출장을 갈 때는 비즈니스 클래스에 앉는다. 이런 호사스러운 생활이 극한의 노동 착취에 지친 화이트 칼라 노동자들을 어루만진다. 


고액의 연봉은 고용 불안에 대한 면죄부도 된다. 월스트리트에서는 대규모 감원과 그만큼의 신규 채용이 일상사다. 취직한 지 6개월 뒤인 1997년 1월, 호가 점심을 거른 채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자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꺼번에 점심이라도 먹으러 간 것인가 하고 조금 기다렸더니, 한 무리의 부서원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회의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들은 팀 전체가 “해산됐다”는 통보를 받고 나온 참이었다. 여기서 ‘해산’이란 ‘정리해고’를 뜻한다. 그래도 호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관리부장이 상부와 협상을 해 향후 5개월 가량 진행될 프로젝트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었다. 보통은 해고 통보를 받은 지 15분 안에 경비원의 안내를 받아 건물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회사는 보안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개인 물품은 훗날 택배를 이용해 원하는 곳으로 보내준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해고 통지에 항의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액의 연봉과 퇴직금에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의 화이트 칼라 노동자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시장의 그래프에 매달린 존재들이다. 시장이 하락하면 수 백 명이 해고된다. 판매하는 금융 상품이 사라지면 그 상품을 맡은 부서도 사라진다. 불경기일 때만 감원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불경기에는 남은 사람들의 보너스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호경기에는 더 좋은 인력을 뽑기 위해 감원이 이뤄진다. 많이 뽑아 혹독하게 부린 뒤에 해고한다. 그리고 다시 뽑는다. 고용의 ‘요요 현상’이다. 


물론 해고자들은 곧바로 다른 회사에 취직하곤 한다. 다시 말하지만 월스트리트는 학벌로 연결된 대가족으로 구성된 곳이다. 해고자들은 이런저런 사교 모임을 통해 엮은 인맥으로 재취직의 길을 뚫는다. 그러나 이런 채용 문화가 회사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기업의 장기적인 조직적 지식은 파괴되고, 노동자들은 안정적인 삶의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기대할 수 없고, 깊은 인간 관계를 맺기도 어렵다. 


문제는 이런 월스트리트의 문화가 ‘글로벌 표준’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재취직의 기회가 많은 월스트리트 사람들은 해고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월스트리트 투자 은행의 조언에 따라 인수·합병되는 과정에서 해고되는 여느 기업의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다.  


세간의 예상과 달리, 월스트리트 투자 은행에는 ‘장기적 계획’이란 것이 없다. 당장 돈을 벌 수 있는지, 즉 ‘현재’만이 문제가 된다. 월스트리트 사람들은 장기적 계획이 없는 이유를 ‘예측 불가능한 시장’ 탓으로 돌리곤 하지만, 호가 보기에 이러한 ‘전략 없음의 전략’은 투자 은행이 가진 문화적 정체성의 핵심이다. 품질 관리, 장기 계획이 존재하지 않기에 은행들은 계속 손해를 보지만, 이들은 새 사업에 진출하는 것으로 손해를 만회하러 든다. 


월스트리트의 ‘주주 가치’에 대한 믿음에도 호는 의문을 제기한다. 피터 드러커(1909~2005)만 해도 주주들이 기업을 소유한다는 주장을 ‘낡고 조잡하면서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허구’로 치부했다. “기업은 영구적이며, 주주는 일시적이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드러커의 시대에 기업은 주주가 아니라 구성원을 위하고, 사회에 책임을 지는 조직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한 기업 인수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회사=주주’의 등식이 널리 퍼졌다. 주가를 창출, 회복하는 일은 경제적·도덕적으로 최우선이었다. 


그러나 주가 상승만을 노리는 기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업의 생산 능력은 주주들에게 배분될 뿐,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 주가를 높이기 위해 인수·합병된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하는 모순이 종종 목격됐다. 기업을 통째로 팔기보다는 쪼개서 파는 편이 이익이기에 멀쩡한 기업을 분해해 파는 일이 잦은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쫓겨난다. 물론 노동자의 불안은 주가에 반영되지 않는다. 인수·합병한 기업들이 손해를 보든 이익을 보든, 관련된 투자 은행들은 거액의 수수료를 챙긴다.


호가 관찰한 월스트리트는 비인간적이다. 아니, 이런 도덕적 판단을 넘어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이기까지 하다. 호는 월스트리트에서의 짧은 근무와 추가 현지 조사를 진행한 후 학교로 돌아가 박사 학위를 땄다. 박사 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펴낸 책이 <호모 인베스투스>(원제 Liquidated: An Ethnography of Wall Street)다. 호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도 월스트리트의 분위기는 바뀐 것이 없다고 말한다. 다른 기업에 변화, 개혁을 그토록 강조하는 월스트리트야말로 가장 완고한 반개혁 세력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