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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적 지식 소매상, '바디: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의 '바디: 우리 몸 안내서'(까치)를 감탄하면서 읽다. 브라이슨은 생물학자도 의사도 아닌데, 피부와 털에서 시작해 뇌, 심장, 뼈, 소화기관을 거쳐 생식기, 질병, 현대 의학의 문제까지 우리 몸과 관련된 온갖 상식들을 흥미롭고 알기 쉽게 풀어낸다. 가끔 '평균적인 인간이 평생 내놓는 똥의 양은 6톤' 같이 '굳이 이런걸 알아야 하나' 하는 지식도 있지만, 저 지식을 내가 책을 들추지 않고 적을 수 있는데서 알 수 있듯 이 지식들은 기억에 남을만큼 재미있다기도 하다. 수많은 책을 살피고, 수많은 전문가를 만나 취재한 공력이 고스란히 담겼다. '지식 소매상'이란 말은 이 정도 글을 쓴 뒤에 자칭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몸에 대해 500페이지 이상 서술한 이 책을 읽은 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모른다'는 말이다. 수많은 인체 기관의 용도, 역할에 대해 우리는 아직 많이 모른다. 최근에야 그 역할이 밝혀진 기관도 있고,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짐작만 하는 기관도 있고, 아예 왜 그런지 모르는 기관도 있다. 우리는 왜 딸국질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왜 하품을 하는지도 모른다. 왜 다치면 치명적인 고환이 인체 바깥에 돌출해있는지도 모른다. 왜 만성 통증이 생기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뜨거운 불에 데었거나 가시에 찔렸을 때 급성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몸을 보호할 수 없다. 즉 급성 통증은 '좋은 통증'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이 몇날 며칠간 사라지지 않는 만성 통증은 '몸의 보호'와 상관 없다. 대부분의 암 통증은 나타나는 시기가 너무 늦어 암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죽어가는 암 환자를 오랫동안 괴롭힐 뿐이다. 

 

마취 기술이 거의 없었고 각 장기의 기능에 대해 현대보다 훨씬 무지하던 시대에 행해진 각종 수술과 시술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너무 끔찍해 몸서리가 처졌다. 존 에프 케네디의 여동생 로즈 메리 케네디가 23살 때 받은 이마엽 절개술은 직전에 읽은 '살갗 아래'(아날로그)에도 나와 있어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의학적 처치는 대부분 실패해 환자를 죽게 했지만 간혹 성공해 의학의 신기원을 열기도 했다. 환자가 아니라 자기 몸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실험을 한 과학자, 의사도 많았다. '영웅적'이라 해도 될 것이다. 

 

몸에 대한 책의 결말이 '죽음'인 건 자연스럽다. 현대인의 사망 원인 중 암이 손꼽히는 건, 옛날 사람들은 암에 걸릴만큼 오래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령 모든 암을 완치시킬 방법이 나온다 해도, 인류 전체의 기대수명은 단 3.2년 늘어난다. "가려서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해도, 어쨌든 죽는다." 생명체가 죽는 이유에 대해 여러 과학자들이 알아내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미진하다. (예를 들어 염색체 끝에 있는 텔로미어라는 특수 DNA 가닥은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아지는데, 정해진 길이에 이르면 세포는 죽거나 활성을 잃는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을 막는다면 노화를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텔로미어는 노화 과정의 일부만을 설명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늙으면 방광은 탄력을 잃어 화장실을 자주 찾아야 하고, 혈관은 더 쉽게 터져 멍이 잘 들고,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뿜어내는 혈액의 양도 줄어든다. 난자가 여전히 남아있어도 폐경은 찾아온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너무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라 화이자 같은 거대 제약회사도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연구를 거의 포기했다. 알츠하이머병의 치료에 대해서는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마찬가지 수준이다. 말기질환자의 50~60%가 죽음을 앞두고 강렬하지만 마음 편하게 해주는 꿈을 꾼다는 건 작은 위안이다. 죽은 뒤 봉인된 관 속에 묻히면 5~40년간 부패한다. 친지들이 무덤을 찾는 기간은 평균 15년이니, 세상에서 잊힌 뒤에도 시신은 여전히 지구에 남는다. 만일 화장한다면 재는 2킬로그램 정도다. 브라이슨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그것이 우리가 남기는 전부이다. 그러나 삶이란 살아볼 만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