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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 왜 하나


전시 첫날 가서 봤는데 끝나갈 무렵 블로그에 올림. 아무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독립출판물을 전시하고 소장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전시실. 서가에는 여느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십진분류표가 붙어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분류방법이 특이함을 알 수 있다. 철학(100), 종교(200), 사회과학(300), 순수과학(400)의 익숙한 순서 대신, 예술(10), 문학(20), 사진(30), 디자인(40)으로 이어진다. 이는 국립중앙도서관이 마련한 특별전 ‘도서관 독립출판 열람실’(31일까지)을 위해 제작된 독립출판용 분류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제작된 국내 독립출판물 400여종, 600여권이 선보이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독립출판서점, 독립출판 페스티벌에서나 만날 수 있던 독립출판물을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이번에 전시된 출판물을 소장하는 동시에 전국 도서관 네트워크를 통해 순회 전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기존 출판사라면 만들리 없는 독특한 책과 잡지가 독자들을 맞이한다. ‘계간 홀로’는 ‘비연애인구 전용잡지’다. 전면 흑백에 키치적인 이미지를 삽입해 의도적인 저품질을 선보인다. ‘아노’는 키에슬롭스키, 왕자웨이, 버스터 키튼 등 1990년대 영화팬들 사이에 언급되던 영화인들을 다시 소환하는 영화잡지다. <비밀기지 만들기>는 곳곳의 지형지물을 활용해 비밀기지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다. 비닐팩에 밀봉돼 있는 ‘Scent’는 매호 담배 냄새, 살 냄새 등 냄새를 소재로한 잡지다. 예술, 청년문화, 라이프 스타일 관련 책들이 다수이며, 제작자와 독자는 대개 청년층이다. 





'도서관 독립출판 열람실'전.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한국의 독립출판물은 2000년대 중반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9년 대표적인 독립출판물 페스티벌인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처음 열리고, 2010년 독립출판서점 유어마인드, 더북소사이어티가 문을 열면서 독립출판 유통이 본격화됐다. 2015년 3월 현재 전국의 독립출판서점은 39곳에 이른다. 


기술의 발전이 독립출판물 바람을 이끌었다. 예전엔 출판을 하려면 기술과 돈이 있어야 했다. 출판 편집이 쉽지 않았고, 최소 2000~3000부를 인쇄해야 했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이 필요했다. 하지만 요즘은 출판용 소프트웨어를 깔면 누구라도 편집을 할 수 있고, 200~300부 정도의 소량 인쇄도 무리가 없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를 맡은 출판사 프로파간다의 김광철 대표는 “지금은 출판의 진입장벽이 낮아져 독립출판이 양적·질적으로 확산되는 시기”라고 말했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는 독립출판의 특징을 젊은 세대의 자기 표현 욕구와 관련 짓는다. 청년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만한 매체를 갖고 싶어한 것은 예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김현·백낙청씨 등 4·19 세대 비평가에겐 문학과지성, 창작과비평이 있었고, 90년대에는 리뷰, 상상, 키노 등 대중문화를 다루는 잡지들이 잇달아 창간됐다.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이같은 잡지들이 침체기에 빠졌다. 대학이 기업화하면서 청년들이 목소리를 낼만한 대학내 문화공간도 사라져갔다. 박 교수는 “이때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청년의 좌절된 욕망들이 이상한 방식으로 분출됐고, 이와 맞물려 소규모 출판물도 등장했다”고 말했다. 또 “초기엔 ‘싸이월드의 책 버전’이라고 할만큼 자아도취적인 책들이 많았으나, 이제는 오타쿠(특정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 성소수자 등 다양한 관점을 가진 이들이 기성 매체에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독립출판물이 지속가능한 유통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잡지의 경우 출간 간격이 지나치게 뜸하거나, 몇 호 나오지 않고 종간되는 경우도 잦다. 김광철 대표는 “보편적 독자에 소구하지 않고, 소수 취향에 부합하는 책을 만든다는 것은 독립출판의 한계이자 본질”이라며 “출판의 개성,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독립출판이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역시 독립출판에 대한 공공의 관심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정준민 전남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독립출판은 최소의 독자만으로도 출판이 가능한 메커니즘을 갖지만 독립출판의 입장에선 최소한의 독자마저 찾기 쉽지 않다”며 “그것을 지원해줄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