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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센티멘털, 스티븐 킹의 '리바이벌'



스티븐 킹(70)은 죽지 않았다.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좀비처럼 그는 꾸준히 작품을 써낸다. 간혹 평작이 나오기도 하지만 때로 수작도 섞여 있다. 2014년작으로 최근 국내에 번역된 '리바이벌'은 수작이다.  젊은 시절부터 스티븐 킹이 줄곧 보여줬던 공포와 어느덧 노년에 이른 작가의 여유가 어울렸다. 때로 으스스하다가, 때로 촉촉하게 센티멘털하다. 물론 결론은 센티멘털이 아니라 으스스. 


노년에 이른 록 기타리스트 제이미 모턴이 작중 화자다. 그는 여섯 살의 자신 앞에 나타난 젊은 목사 찰스 제이컵스와 가진 일생에 걸친 인연을 회상한다. 시골 마을에 부임한 목사 제이컵스는 활기차고 유능하고 친근한 태도로 모턴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산다. 그러나 어느날 그의 아름다운 젊은 아내와 귀여운 아이가 끔찍한 사고로 세상을 뜨고(이 장면의 묘사는 역시 스티븐 킹답게 무시무시하다. 잔잔하게 나가다가 이런 장면을 넣는 걸 보면 악취미 같기도 하다), 제이컵스는 얼마후 예배 시간에 신성을 모독하는 설교를 하다가 마을에서 쫓겨난다. 제이미는 이후 그런대로 괜찮은 실력의 프로페셔널 기타리스트가 됐다가 약물에 중독돼 심각한 나날을 보낸다. 전기를 이용한 떠돌이 마술사가 된 제이컵스가 제이미 앞에 나타나 기묘한 전기 치료 방식으로 제이미의 마약 중독을 치료해준다. 제이컵스의 전기 사용법은 이후 소설의 핵심 소재가 된다. 


스티븐 킹의 많은 소설이 그렇지만, '리바이벌' 역시 '미국적'이다. 보수적인 시골 마을에 나타난 젊은 개신교 목사라는 설정이나, 그가 테슬라 같은 괴짜 과학자를 연상시키는 전기 오타쿠라는 설정이 그러하다. 전기를 초자연적이고 강력한 힘과 연결시키는 설정은 미국 공포문학의 대가 러브크래프트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내가 더 끌린 건 이런 공포 문학의 요소를 끌어안는 아련한 회고조의 분위기였다. 록 기타리스트로서 산전수전을 겪은 주인공은 어쩌면 평범하고 어쩌면 비극적인 가족사를 간간이 돌이킨다. 어머니는 암으로 비교적 일찍 돌아가셨고, 사랑스러운 큰 누나는 제정신 아닌 남자를 만났다가 죽음을 맞았다. 남은 형제들은 그럭저럭 성공한 삶을 살았다. 가족의 슬픔은 큰 상처를 남겼지만,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아 인생을 이어간다.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애송이 기타리스트 시절에 만난 첫사랑, 그녀와의 풋풋하고 서툰 연애, 영원할 것 같았던 그 사랑이 별 이유 없이 시드는 모습, 그리고 먼 훗날의 우연하지만 결국은 계획된 재회. 살다보면 슬프고 끔찍하고 잊고 싶은 기억들이 생기지만, 산 사람들은 어떻게든 산다. 상처엔 딱지가 생기고 새살이 돋는다. 물론 흉터는 남지만, 흉터 몇 개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공포 문학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런 전언들이 '리바이벌'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리바이벌'의 또 하나의 교훈은 '공짜는 없고, 모든 것은 돌아온다'는 것. 생각해보면 스티븐 킹의 소설은 대개 그랬다. 깊은 우물에 빠트린 부인의 시체가 살아 돌아오고, 나쁜 교도소장은 결국엔 파멸한다. 인과응보, 뿌린대로 거둔다는 믿음이 자주 배신당하는 세상이지만, 이 세상이 아니면 저 세상을 포함해 생각해서라도 그런 세계관을 유지하고 싶다. 스티븐 킹은 그럴 때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