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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영화는 묻는다

<테이킹 우드스탁>

이번 여름에도 여러개의 음악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음악 페스티벌엔 왜 가는 걸까요.


1969년 8월15일부터 3일간 미국 뉴욕주 베델 평원에서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 무대에 오르고, 50만명의 히피 관객이 모인 이 축제는 공연 수준, 관객의 태도, 묘한 시대 분위기가 어울려 이후 모든 음악 축제의 이데아가 됐습니다.


29일 개봉하는 리안 감독의 <테이킹 우드스탁>은 이 페스티벌의 기획자였던 엘리엇 타이버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엘리엇은 화가를 꿈꾸는 젊은이지만, 부모님이 경영하는 시골 모텔이 파산 직전이라는 소식에 안절부절못합니다. 이웃 동네에서 열리기로 했던 록 페스티벌이 주민의 반대로 취소되자, 엘리엇은 페스티벌을 유치해 관광객을 끌어모으기로 합니다.
농장이 공연장으로, 낡은 모텔은 공식 숙소로 변합니다. 그러나 관계 당국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보수적인 지역 주민들은 몰려드는 히피들을 못마땅해합니다.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색, 계>의 리안은 인물의 내면과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그리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그러나 <테이킹 우드스탁>에선 리안의 장점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내내 나른하고 한가한 분위기가 이어져 극적인 긴장감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면서 몽롱하게 약기운에 취했던 우드스탁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내려는 감독의 의도였을까요.


72년작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는 ‘포스트 우드스탁’ 소설이라 할 만합니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헌터 S 톰슨은 우드스탁을 정점으로 치솟았던 변혁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된 당시 상황을 드러냅니다. 온갖 술과 환각제에 취해 돌아다니는 소설 속 저널리스트는 히피들의 시대였던 60년대를 회상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어느 시간이든 광기가 넘쳤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늘 옳고 결국에는 승리하리라는, 막연하지만 당연한 느낌이 있었다. …그로부터 5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나는 라스베이거스의 가파른 언덕에 올라 서쪽을 바라본다. 상황을 볼 줄 아는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은 부서져버린 파도가 한때는 어디까지 높이 치솟았는지 보일 것이다.”


미군의 철수와 함께 월남전은 끝났지만, 히피와 록음악과 사랑과 평화의 시대도 막을 내렸습니다. 우드스탁은 60년대 말 머나먼 미국땅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이벤트였습니다.


지금 젊은 음악팬들이 원하는 건 진흙탕 위의 슬라이딩, 야외의 불편한 잠자리, 환각제, 낯선 이와의 친교가 아닌 깨끗한 화장실, 귀가가 편한 교통편, 좋은 음향, 예쁜 기념품일지도 모릅니다. 21세기의 음악팬이 60년대의 우드스탁에 타임머신을 타고 간다면, ‘낭만’ 대신 ‘불편’을 말할 겁니다.


대중음악이 한 세대 젊은이들의 정신세계를 형성하던 시기는 지났습니다. 한국에서 젊은이들의 세대 의식을 대변한 음악인은 서태지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요즘의 젊은이들도 음악을 듣지만, 각자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아이돌 그룹의 MP3 파일을 ‘소비’할 뿐입니다. <테이킹 우드스탁>에 활력이 없게 느껴진다면, 그건 우드스탁이 머나먼 과거에 고립됐고 오늘날의 음악도 마찬가지 처지이기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