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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만한 독립영화. <파수꾼> vs <애니멀 타운>

2011년이 2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파수꾼>은 올해 본 한국영화 중 제일이다. 10개월이 더 지나도 이 영화는 여전히 기억날 것 같다. <애니멀 타운>은 논쟁적이다. 극 초반엔 집중하기 힘들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실린다. 감독의 다른 작품도 보고 싶다. 물론 이 영화를 보고 몹시 불쾌해할 관객도 있겠다.


파수꾼


2011년 한국 독립영화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 몇 년 간의 침체를 벗어나 상업영화가 감히 꿈꾸지 못한 방식의 수작들을 내놓고 있다. 3월 들어 잇달아 선보이는 <파수꾼>과 <애니멀 타운>에 주목할만하다. 이들은 국내외 각종 영화제를 돌며 상찬받은 뒤 한국 관객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올해의 발견, <파수꾼>=2011년이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파수꾼>은 이미 ‘올해의 발견’감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졸업생을 대상으로 장편 프로젝트 제작을 지원하는 ‘장편영화 제작연구과정’ 3기 작품이다. 지금까지 연구과정 영화들은 한국영화아카데미가 배급했는데, <파수꾼>은 CJ엔터테인먼트의 중저예산 영화 전문팀인 필라멘트 픽쳐스가 따로 배급한다.

한 아이가 또래들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하고 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죽은 이유를 알기 위해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아들과 가장 친하게 지내던 두 친구 중 한 명은 전학갔고, 다른 한 명은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세 고교생 사이에 있었던 사건과 감정을 재구성한다.

<파수꾼>은 넓은 의미에서 ‘성장영화’다. 제목도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영감을 얻었다. 청소년은 성인과는 달리 마음에 갑옷을 미처 갖춰입지 못한 시기다. 사소한 시선, 무심한 말 한 마디에 큰 상처를 받는다. 세 친구들도 그렇다. 두 명끼리 주고받는 눈짓 하나에 나머지 한 명은 그 의미를 추궁한다. 아무 뜻이 없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오랜 기간 쌓아온 우정이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다.

파수꾼. 폐역사를 아지트로 삼은 고교생들.

그러므로 이들의 행동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프로 바둑기사가 아마추어 기사의 듣도 보도 못한 수에 당황하는 것처럼, <파수꾼> 속 청소년들의 행동은 숙달된 관객의 예상을 매번 비껴나간다. 끈질기게 ‘진실’을 찾는 극중 아버지도 결국 세 아이들의 얽키고 설킨 사연을 이해하지 못한 채 끝내 방관자로 남는다.

이해할 수는 있어도 설명하기는 힘든 감정을 스크린에 온전히 구현한 건 각본·연출을 맡은 윤성현의 공이다. 윤성현은 의뭉스럽게도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빵부스러기처럼 조금씩 흘린 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어쩌면 거대하고 어쩌면 사소한 진실을 관객에게 알려준다. 많은 좋은 영화가 그렇듯, <파수꾼>도 드러내 말하지 않으면서도 창작자와 관객이 발딛은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파수꾼>의 소년들은 그들이 몸담은 작은 집단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아무 것도 아닌 권력에 도취돼 파국으로 치닫는다. 권력의 속성을 탐구한 성장물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파수꾼>은 지금 우리의 현실에 밀착해 있다는 점에서 더욱 섬찟하다.

애니멀 타운. 초반부의 한 장면. 그는 욕구를 다 해소하지 못한다.

◇날 것 그대로의 영화, <애니멀 타운>=전규환은 한국 관객에겐 미지의 감독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4편의 장편영화를 찍었다. <모차르트 타운>(2008)을 시작으로 <애니멀 타운>(2009), <댄스 타운>(2010)의 ‘타운 3부작’을 찍었고, 인도를 배경으로 한 <바라나시>를 완성해둔 상태다.

<애니멀 타운>은 아동 성범죄자와 그를 쫓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오성철은 막노동을 하면서 철거를 앞둔 아파트에 살고 있다. 다리에 찬 전자발찌는 두꺼운 양말로 간신히 감춘다. 그는 동네에서 폐지를 주우며 사는 9살 소녀를 향한 시선을 힘겹게 억누른다. 작은 인쇄소를 경영하는 김형도는 우연히 오성철을 목격한다. 교회에 다니고, 대체로 무표정한 얼굴의 그는 어찌된 일인지 오성철의 주위를 맴돈다.

윤리적·법적으로 엄히 단죄해야 마땅한 성범죄자를 때로 동정이 가는 인물로 삼았다는 점에서 <애니멀 타운>은 논쟁적이다. 그의 낡은 거주지에는 물과 난방이 끊겼으며, 공사장에서는 자금 사정을 이유로 밀린 임금을 끝내 주지 않는다. 어렵사리 택시 기사 자리를 구했지만, 밍크 코트를 입은 뒷자리 여자 승객은 길을 돌아갔다며 다짜고짜 욕설을 해댄다.

애니멀타운. 성범죄자 오성철.

영화 초반부는 불안하다. 촬영과 편집의 리듬이 불안정하다. 생소한 배우들의 얼굴에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야기가 골격을 드러내는 중반 이후부터 영화는 힘을 낸다. 김기덕의 초기작에서 미의식을 제거한 듯한 날 것 그대로의 연기, 연출이 이어진다. 제목의 ‘애니멀’은 도심에 출몰하는 멧돼지, 성범죄자와 그를 쫓는 남자 모두를 뜻한다. 베드신에서는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 성철의 성기까지 노출된다. 영화의 미학도 그렇게 동물적이다.

<모차르트 타운>은 노점상과 이주노동자, <댄스 타운>은 탈북자 등이 주인공이다. 모두 도시 주변부의 하층민, 아웃사이더다. 전규환 감독은 상업영화 제작자로 나섰다가 일이 풀리지 않자 직접 메가폰을 잡고 언제 개봉할 지 알 수 없는 장편 독립영화를 4편 찍어두었다. 그는 “언젠가 내 영화를 이해하고 봐주는 관객들이 늘어나 다음 작품을 기다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