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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존스의 이상한 직업관


40대 초반이면 필드에선 커리어의 절정 아닌가. 게다가 '최고의 PD'라면서. 그런데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연발해도 되는 걸까. 


낙천적이고 사랑스러운 브리짓 존스가 12년만에 돌아왔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와 <브리짓 존스의 일기-열정과 애정>(2004)으로 많은 여성관객을 사로잡은 캐릭터다. 여성 원작자(헬렌 필딩), 여성 감독(샤론 맥과이어), 여성 주연(르제 젤위거)이 뭉쳤다. 하지만 28일 개봉하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를 ‘여성영화’라고 부르기엔 주저된다. 극중 브리짓 존스의 이상한 직업관 때문이다. 

줄거리는 전편에서 느슨하게 이어진다. 43세의 브리짓 존스는 시청률 1위 뉴스쇼의 프로듀서로 성공한 직업인이다. 하지만 여전히 싱글인데다, 이젠 ‘여성으로서의 유통기한’도 걱정하고 있다. 록페스티벌에 간 존스는 우연히 연애정보회사 CEO인 잭 퀀트(패트릭 뎀시)와 낭만적인 하룻밤을 보낸다. 때마침 옛 연인 마크 다시(콜린 퍼스)와도 우연히 만나 사랑을 확인한다. 얼마 뒤 임신 사실을 알게된 존스는 퀸트와 다시 중 누가 아이의 아빠인지 알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임신 소식을 전해들은 두 남자는 자신이 아빠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은 모른 채 마냥 기뻐한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변화한 사회상과 가족 개념을 반영한다. 브리짓 존스는 독신이라는 사실에 외로워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집착하지는 않는듯 보인다. 존스가 두 남자와 함께 임신부 교실을 찾자 강사는 자연스럽게 게이 커플과 대리모라고 생각하며 환영한다.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광범위한 대중을 상대로하는 상업영화지만, 동성 커플 가족에 대해 어떤 위화감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나 브리짓 존스의 직업관은 구시대적이다. 브리짓 존스는 기자로 활동했던 젊은 시절과 마찬가지로 직업에서 실수를 연발한다. 예를 들어 영국 외교부 장관을 스튜디오에 초대해 아프리카 어느 국가 독재자의 사망에 대한 인터뷰를 하는 대목이 있다. PD인 존스는 생방송중인 앵커에게 “내가 묻는 질문을 그대로 던지라”고 지시한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리고 존스는 태연히 전화를 받는다. 앵커는 존스의 통화 내용을 질문으로 오해해 외교부 장관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에선 이런 직업적 실수가 여러번 나온다. 이는 분명 관객에게 큰 웃음을 제공하는 대목이지만, 존스가 ‘성공한 직업인’이라는 설정과는 모순이다. 존스의 ‘실수’가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이는 해당 방송사의 사회적 위상을 걱정할 정도의 심각한 방송사고일 것이다. 

하지만 극중 누구도 존스의 직업적 실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존스가 사람 좋고 유쾌하기 때문에 그런 실수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존스의 실수를 지적하고 압박하는 구조조정팀장이 오히려 악당으로 묘사된다. 이런 묘사가 문제인 이유는 존스의 성(性)을 바꿔 생각할 때 쉽게 알 수 있다. 경력의 절정에 오른 40대 남성 직업인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연발한다면 어떨까. 그런 사람을 그린 영화는 코미디가 아니라 우울한 사회 드라마가 될 것이다. 

브리짓 존스는 실수를 하고, 누구나 일하면서 실수를 한다. 하지만 최고의 경력을 가진 남성 직장인이 이처럼 황당한 실수를 많이 하는 영화는 본 적이 없다. 혹시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의 창작자들은 여성의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아닐까. 여성에게 일이란 그저 부차적일 뿐이므로, 터무니 없는 실수를 해도 코미디로 간주해 웃어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재치있는 대본, 배우들의 적절한 이미지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에 대한 시선이 미심쩍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