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미지

디펙티브 디텍이브의 활약, '범죄의 여왕'



꽤 재미있게 봤지만 흥행은 잘 되지 않은 <범죄의 여왕>. 역시 상업영화에는 '스타발'이 중요하다. 


추리소설 팬들이라면 ‘defective detective’란 말뜻을 쉽게 짐작할 것이다. 이는 ‘결함 있는 탐정’이란 의미인데, 범죄의 추리에는 능숙하지만 다른 면모는 어딘가 부족한 탐정을 말한다. 이런 탐정은 마약이나 알코올에 중독돼 있거나, 몸이나 마음에 장애가 있을 때도 있다. 인기 TV 시리즈 <몽크>의 주인공인 전직 경찰 몽크는 심각한 결벽증이 있어 타인과의 악수조차 꺼린다. 이렇게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탐정들이 극악한 범죄자들의 교묘한 범행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고 독자들은 재미와 흥분을 느낀다.

25일 개봉하는 <범죄의 여왕>(감독 이요섭) 속 탐정 역시 전형적인 수사관은 아니다. 이 영화 속 탐정은 ‘오지랖 넓은 아줌마’ 양미경이다. 강인한 생활력과 남다른 ‘촉’을 갖고 있지만, 때론 앞뒤 재지 않는 저돌성이 누군가에게는 무례로 느껴질 수 있는 인물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동네 아줌마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 시술을 하며 살아가는 미용실 원장 양미경(박지영)은 서울에 사는 고시생 아들로부터 긴급한 전화를 받는다. 수도요금이 120만원 나왔으니 돈을 추가로 부쳐달라는 요청이었다. 아들은 2차 사법시험준비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일단 돈을 달라고 하지만, 미경은 이토록 의문스러운 일을 참고 넘기는 성격이 아니다. 부랴부랴 상경한 미경은 불량스러운 인상의 고시원 관리소 직원들, 시험을 앞두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고시생들을 상대로 과도한 수도요금의 비밀을 밝혀나간다. 그리고 예상 못한 범죄의 냄새를 맡는다. 






어느 모로 봐도 탐정 같지 않은 양미경은 낯이 두껍고, 남의 일에 간섭 잘하고, 누구에게든 쉽게 다가서는 ‘한국 아줌마’의 개성을 이용해 범죄의 핵심에 조금씩 다가선다. 이런 ‘한국 아줌마’의 개성은 때로 ‘악덕’으로 여겨지지만, <범죄의 여왕>에선 미덕이 된다. ‘범죄의 여왕’이란 원래 불멸의 추리소설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별명이다. <범죄의 여왕>은 크리스티 소설 속에서 만날 법한 흥미로운 탐정 캐릭터를 한국 영화 풍경 속으로 소환했다. 능글맞은 경찰, 독종 같은 검사, 그악스러운 조폭 없이도 범죄 영화를 만들 수 있음을 <범죄의 여왕>은 보여준다.

고시원이라는 장소도 흥미롭다. 고시원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청춘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사법시험 준비생들의 미래는 로스쿨 도입과 함께 한층 불투명해졌는데, <범죄의 여왕>은 그 처연하면서 음울한 분위기를 적절하게 담아냈다. 이 영화의 순 제작비는 4억원에 불과하지만, 우중충하고 그로테스크한 고시원 분위기를 담아낸 촬영, 미술, 조명이 훌륭하다.

<족구왕>(2013)으로 주목받은 젊은 창작집단 광화문시네마가 제작한 작품이다. 광화문시네마는 김태곤, 이요섭 감독, 김보희 프로듀서 등 7명으로 구성됐다. 올해엔 김태곤 감독이 쇼박스 투자·배급작인 <굿바이 싱글>을 흥행시키는 등 한국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족구왕>은 안재홍, 황미영, 황승언 등 앞으로 한국 영화계가 즐겨 찾을 배우들을 배출한 바 있다. <범죄의 여왕> 역시 조복래, 백수장 등 개성 있는 조연을 적소에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