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고향에서 맛난 음식과 술을 드셨겠죠. 혹시 다이어트나 절주의 결심을 깰 만큼 많이 드시진 않았습니까. 과식과 과음은 부모님과 친척의 권유 때문입니까. 당신 뱃속의 누군가가 술과 음식을 간절히 잡아 당긴 것 같지는 않습니까.

2월5일 개봉하는 <낮술·사진>은 '장한' 독립영화입니다. 영화 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시나리오 공모전에 번번이 떨어지던 노영석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자"는 심정으로 각본, 연출, 촬영, 제작, 미술, 음악, 편집, 목소리 연기 등 1인 8역으로 <낮술>을 찍습니다. 제작비 1000만원을 모아 알음알음 배우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돼 화제를 모은 뒤 로카르노 영화제, 토론토 영화제 등에서 상영되며 호평을 얻었습니다. 3월에는 미국에서도 개봉 예정입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제목 그대로 술에 대한 영화입니다. 실연의 아픔을 되새기던 혁진은 얼떨결에 홀로 강원도 여행길에 오릅니다. 우여곡절 끝에 친구가 소개해준 펜션에 도착하지만 할 일이 없어 심심하던 차, 옆방에 미모의 여성이 혼자 투숙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여자가 술을 사달라며 혁진에게 접근하면서, 혁진의 파란만장한 강원도 오딧세이가 시작됩니다.

술이 방아쇠를 당기자 순진한 청년은 우스꽝스러운 모험길로 들어섭니다. 술자리의 친구들은 "내일 강원도 여행을 가자"고 부추기지만, 정작 모두가 곯아떨어져 터미널에 나온 것은 혁진뿐입니다. 정체모를 여성에게 접근을 허용한 계기도 술이고, 한겨울 강원도의 국도에서 지갑을 빼앗긴 채 정신을 차린 것도 술 때문입니다. 여느 때의 혁진은 평범한 청년처럼 보입니다. 발을 헛디딘 건 오직 술 때문입니다.

뛰어난 감수성과 재능, 의지력을 가진 사람들도 술독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어네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스티븐 킹은 모두 뛰어난 미국 작가이자 한 때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였습니다. 그들의 책 사이에선 진한 위스키 냄새가 나곤 합니다. 간혹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채 글을 써내려갔을 겁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곤 합니다. 그러나 두뇌의 의지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두뇌가 보내는 경고음을 들으면서도 음식으로 향하는 손을 멈출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혀는 게걸스럽게 맛을 탐하고, 위는 음식을 빨아들이죠. 여타 신체기관의 탐욕 앞에 두뇌는 무력합니다.

한창 알코올 중독에 빠져있을 때의 스티븐 킹은 하룻밤에 밀러 라이트 한 박스를 해치웠다고 합니다. 글을 쓰려고 타자기 앞에 앉아있으면, 냉장고의 차가운 맥주캔이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을 테죠.

술은 죽은 연인의 영혼 같습니다. 익숙한 목소리로 당신을 부를 때, 따라가지 않을 도리는 없습니다. 술의 자리에 당신이 좋아하는 아무것이나 대입해보세요. 담배, 음식, 게임, '막장 드라마' 등. 인간은 약합니다. 강한 척 허세를 부리다간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맙니다. 약함을 인정하고 유들유들하게 타협하는 자세를 보일 때, 유혹의 세상을 헤쳐나가기 쉽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