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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들의 수다. 김조광수 vs 이혁상

사진 강윤중 기자

김조광수는 한 눈에 알아봤다. 그는 2001년쯤 부산국제영화제 스태프로 일하던 이혁상을 어느 영화제 파티에서 만났다. 부산영화제 관계자들은 아닐 거라고 했지만, 김조광수가 맞았다. 김조광수는 자신의 게이더(게이+레이더)가 꽤 정확하다고 했다. 10년이 흘러 둘은 한국의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인·활동가가 됐다.

흥행작 <조선명탐정>의 제작자·장편 데뷔를 준비하는 감독·LGBT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김조광수와 <종로의 기적>의 감독 이혁상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를 뜻하는 LGBT 영화제는 1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성소수자 영화제로, 6월 2~8일 종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선정한 지난해 최고의 독립영화인 <종로의 기적>은 게이 4명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로 6월 2일 개봉한다.


둘은 ‘커밍 아웃’의 어려움부터 털어놨다. 특히 부모님께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리는 것이 가장 마지막이자 고난이도 단계다. 18년전쯤 지인들에게 커밍 아웃했고, 그로부터도 10년 뒤 부모님께 알렸다는 김조광수는 “난 솔직하게 살고 싶은데 나 편하자고 부모님 괴롭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혁상은 아직 부모님께 알리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짐작하고 계신 것 같다고 했다. <종로의 기적> 개봉은 이혁상에게 마지막 단계가 되는 셈이다.


커밍 아웃은 개인의 일이지만, 성소수자 영화 만들기는 사회와 연관된다. 개인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김조광수는 “영화 사업은 보수적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유롭게 산다고 자처하면서도 돈 얘기가 나오면 굳어진다”고 말했다. 데뷔 장편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캐스팅만 6개월째다. <종로의 기적>도 마찬가지였다. 커밍 아웃도 쉽지 않은 선택인데, 카메라까지 따라붙는다니 더욱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게이바가 100개 이상 몰려있다는 종로의 한 뒷골목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다. “아버지벌, 할아버지뻘 되는 분들이 손가락질 하면서 욕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왜 우리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느냐’는 얘기였다. 내가 (게이) 커뮤니티의 지지를 못받고 영화 만드는 것 아니냐는 회의가 들었다.” 이혁상의 말이다.


그래도 상황은 조금씩 나아졌다. 첫 촬영 후 3년이 지나고 보충촬영을 위해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이번엔 “오빠, 나 예쁘게 찍어줘”하고 브이자를 그리는 사람까지 있었다. LGBT영화제도 그렇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예산이 끊어져 영화제가 존폐 위기에 몰렸을 때 영민한 상업영화 제작자인 김조광수가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배우 소유진이 홍보대사를 자처했고, 대기업의 협찬도 이끌어냈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어려운 점도 있다. 이혁상은 “연애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얼굴이 알려진 사람과 함께 다니면 자신도 아우팅(원치 않게 커밍 아웃되는 것)될까봐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과정을 겪으며 고락을 함께 한 파트너가 있는 김조광수를 부러워했다.


김조광수는 내년쯤 한국의 게이로서는 최초로 공개결혼식을 할 계획이다. 동성애자 관련 행사를 할 때 한켠에서 공연도 하며 여러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식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편견이 아주 심한 사람은 못바꾸겠지만, 편견이 조금 있는 사람들은 깨트려보고 싶다”는 것이 김조광수의 복안이다. 10만명에게 1만원씩 축의금을 받아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6색 무지개의 ‘퀴어 센터’를 세우는건 더 큰 목표다. 이혁상은 자신이 게이인지 아닌지, 게이가 맞다면 어떻게 할지 몰라 답답해하는 ‘벽장 안의 성소수자들’에게 <종로의 기적>을 많이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발랄한 김조광수와 진지한 이혁상, 서로에게 힘을 주는 수다는 이어졌다. 

사진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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