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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 '너의 이름은.'



얼마전 방한한 '너의 이름은.'의 프로듀서 가와무라 겐키에 따르면, 신카이 마코토는 지브리 같은 대형 스튜디오에 소속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작업해온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에 가깝다고 함.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에서도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기대는 꾸준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에도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작품성이나 대중성의 어느 한 측면에서 조금 부족한 부분을 보이며 후보군에서 탈락하곤 했다. 

신카이 마코토(43)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과 이를 감싸는 서정성으로 인정받아왔다. <초속 5센티미터> <별을 쫓는 아이> 등은 각종 애니메이션 상을 휩쓸며 신카이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그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로 불릴 만큼 많은 관객을 불러모으진 못한 상태였다. 

최근작 <너의 이름은.>은 다르다. 일본에서 지난 8월 개봉해 지난주까지 관객 1640만명, 흥행수익 213억엔(약 2189억원)을 돌파했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이은 역대 일본 영화 흥행 2위 기록이다. 

미츠하는 카페 하나 없는 시골 마을의 여고생이다. 따분한 마을 분위기, 일본 전통의 신사 의식을 치러야 하는 가업 때문에 늘 답답한 상태다. 어느 날 미츠하는 도쿄의 남고생 다키가 된 꿈을 꾼다. 다키 역시 난생처음 본 시골 마을의 여고생 미츠하가 된 꿈을 꾼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둘은 이것이 꿈이 아니라 일주일에 2~3일 정도 몸이 뒤바뀌는 현상임을 알게 된다. 둘은 스마트폰의 일기를 통해 서로에게 전할 말들을 남긴다. 1000년 만에 한 번 나타나는 혜성이 점차 지구로 다가오고, 몸이 뒤바뀌는 현상은 갑자기 멈춘다. 다키는 미츠하를 직접 만나러 가기로 결심한다. 





<너의 이름은.>의 초반부는 전형적인 일본 청춘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를 띤다. 밝고 명랑하고 코믹하다. 그러면서도 전통의 무게에 짓눌린 청춘, 자유로워 보이지만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한 청춘의 고민도 살핀다. 미츠하의 몸에 들어온 다키는 활발한 체육 활동을 통해 남성성을 드러내고, 또래 아이들은 이에 반한다. 다키의 몸에 들어간 미츠하는 함께 일하는 여성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통해 상대의 환심을 산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로움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러한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드러낸다. 

그러나 중반부 이후 <너의 이름은.>은 급격히 얼굴을 바꾼다. 예기치 못한 설정상의 반전이 일어나고, 분위기는 어둡고 급박해진다. 임박한 재난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작은 희망을 찾으려는 인물들의 모습에선 동일본 대지진의 트라우마가 읽힌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은 사건들을 겪은 한국 관객들도 <너의 이름은.>의 후반부 전개에 무감할 수 없다. 

<너의 이름은.>은 대중성에 더해, 그 안에 담긴 생각의 깊이와 상상력, 표현력 역시 만만치 않다. 신카이 마코토는 “지금까지의 작품은 제 생각을 어떻게든 성립시키기 바빴다”며 “(<너의 이름은.>은) 우선은 ‘재미’를 위해 여러 요소를 쌓아 올리고 겹친 작품”이라고 말했다. 오랜 수련 끝에 세상에 나온 고수를 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