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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과 김초엽

 

두 권의 SF를 잇달아 읽다. 테드 창의 신작 '숨'(엘리)과 김초엽의 데뷔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딱히 비교해 읽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테드 창의 작품을 다 읽어가는 시점에 김초엽의 책이 손에 들어왔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세간의 평만큼 좋게 읽지는 않았다. 어떤 작품은 너무 길다고 느꼈다. '보르헤스가 5페이지에 쓸 이야기를 50페이지로 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영화 '컨택트' 덕분에 뒤늦게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주목받기도 했지만, 난 여전히 아서 클라크에 더 끌리는 사람이다. 

'숨'을 읽은 뒤에는 '보르헤스 비교'는 더 하지 않기로 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아지모프의 '바이센테니얼맨'의 훌륭한 업데이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센테니얼맨'이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차이를 질문함으로써 결국 인간의 조건에 대해 탐색한다면, '소프트웨어 객체...'는 프로그래밍된 버츄얼한 존재와 인간의 차이를 묻는다. 피와 살이 없는 존재 인간의 감정이 투여된다면, 물리적 실체를 갖지 않더라도 자아가 있다면, 그것의 존재적 위상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탐구한다. 그 탐구가 앙상한 개념을 넘어 튼실한 내러티브로 지탱된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언어, 사실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사회학, 인류학, 문학 수업 시간의 교재로 쓰일 법하다. '옴팔로스'는 유사 종교 소설이다. 과학적 사고를 한계 너머로 밀어가려는 SF가 어느 순간 종교 전통과 만나는 것은 낯선 시도가 아닌데, 테드 창은 이 쪽으로도 재능이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최상급의 SF작가인 테드 창과 이제 첫 소설집을 낸 김초엽을 비교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도 테드 창에 뒤이어 읽으니, 김초엽의 글에서 어디가 문제인지 조금은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이 소설집에 담긴 작품 중 어떤 것들은 부실한 설계도를 따른 건물, 취재가 덜된 기사 같았다. 작품의 과학적 배경이나 플롯의 논리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테크닉에 의지해 마무리지은 듯한 글들이 있다. (작가가 얼렁뚱땅 넘어가려 한, 혹은 작가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나 독자는 완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지적하고 보완을 요구하는 건 최초의 독자인 편집자 몫이 아닐까. 한국의 문학 편집자에게 어느 정도의 재량이 주어지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이 책에는 빛나는 글들이 있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관내분실'. 존재하지만 찾을 수 없는 존재인 여성, 특히 엄마의 처지를 거대한 도서관에서 색인이 삭제된 채 방치된 책에 비유했다(이 작품에선 책이 아니라 생전의 두뇌를 사후에 데이터화한 정보로 은유된다). 표제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과 거리의 유한성과 우주 여행의 무한성을 대비해 감정을 고조시키는 작품이다(영화 '인터스텔라'도 이런 테크닉을 썼다). '공생가설'도 흥미롭다. 몇 가지 다른 이야기들이 섞여 있는 것 같은데, 다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작가는 '가장 즐겁게 썼던 글'이라고 말하는데, 읽는데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