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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안드로메다로 가는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

'안드로메다로 간다'는 말은 보통 비유적으로 쓰이지만, <트리 오브 라이프>는 정말 안드로메다를 보여준다.

이 영화 이후 출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제시카 차스테인(오른쪽 상단의 여성) 


감독 테런스 맬릭(67)은 그의 문제적 신작 <트리 오브 라이프>만큼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는 하버드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하이데거 철학을 전공했고 MIT에서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1973년 <황무지>로 데뷔한 그가 지금까지 연출한 영화는 <트리 오브 라이프>를 포함해 다섯 편에 불과하다. 맬릭의 영화에는 할리우드의 톱스타 마틴 쉰, 리처드 기어, 숀 펜, 브래드 피트 등이 출연했지만, 정작 맬릭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길 극도로 꺼리는 은둔자다. 그는 1975년 영화 전문지와 가진 단 두 차례의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어떤 매체와도 만난 적이 없으며, <트리 오브 라이프>가 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시상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1950년대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시작한다. 밝은 햇살이 하얀 창틀 사이로 새어 들어오고, 마당에는 그네를 매단 오래된 나무가 서 있다. 그러나 평온한 광경은 무언가 나쁜 소식을 들은 어머니 오브라이언 부인(제시카 차스테인)의 흐느낌과 함께 박살난다.


카메라는 현대 도심의 마천루로 출근하는 오브라이언 부부의 장남 잭(숀 펜)으로 시선을 돌린다. 잭은 아버지 오브라이언(브래드 피트)과 잠시 전화 통화를 한 뒤, 유년 시절과 부모님을 떠올린다. 아버지는 권위적이었다. 아직 어린 세 아들에게 말끝마다 존칭(Sir)을 붙이게 했고, 어떠한 경우에도 말대답을 참지 못했다. 온가족이 바른 자세로 앉아 밥을 먹어야 했고, 문을 세게 닫으면 살살 닫는 연습을 50회 시켰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세상은 싸움’이라고 가르쳤다. 정작 자신은 실패한 엔지니어였지만, 자식만은 세상 속에서 싸워 성공하기를 바랐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자신의 턱에 주먹을 날려보라고 시키기도 했다.


어머니는 자애로웠다. 어머니는 ‘세상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윽박지르는 남편이 못마땅했지만,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아들은 아버지를 존경하기보단 두려워했다. 집에서 억눌린 아들은 바깥에서 화를 풀었다. 어머니는 점점 멀어지는 남편과 아들 사이를 중재하지 못했다.


 

부부는 행복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영화는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부성과 모성을 대조시킨다. 그리고 이를 우주의 원리로까지 확장한다. 영화 초반 10분이 흐른 뒤 등장하는 15분간의 ‘문제적 장면’에 감독의 야심이 녹아있다. 마치 과학 다큐멘터리처럼, 빅뱅으로 우주가 생기고 지구가 탄생하고 생명이 출현하는 과정이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15분간 재현된다.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벌어지는 오이디푸스적 드라마 사이에 갑자기 끼어든 우주 탄생 이야기는 많은 관객을 당혹스럽게 한다.

<트리 오브 라이프>를 통해 드러난 맬릭은 독실한 신앙인이다. 그러나 맬릭의 신은 슬퍼하고 화내고 사랑하는 인격신이 아니라,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 이신(理神)에 가깝다. 19세의 동생을 저승으로 떠나보낸 잭은 기도한다. “주여 왜입니까. 그때 어디에 계셨습니까?” 신은 있다. 그러나 인간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가까이 있지는 않다. 신은 우주를 만들고 생명의 원리를 세우기에도 바쁘다.


영화는 성경의 욥기를 인용하며 시작한다. “내가 땅에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그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욥은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에서도 매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선하고 부유했던 욥은 신의 시험을 받아 자손, 재산, 건강을 모두 잃었으나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결국 신은 욥이 잃어버린 것을 모두 회복시켜 주셨다. 영화에는 “주는 분도 거두는 분도 모두 하나님”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인간은 ‘생명의 나무’의 끝자락에 매달린 잎사귀 같은 존재일 뿐이다.


 

 사실 숀 펜은 특별출연 수준이다. 현대의 마천루를 거닐면서 특유의 주름을 지은 채 "나 고민중"이라고 티내는 역할이다.


맬릭은 가족을 이야기한다. 아버지와 갈등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동생을 잃고, 결국엔 화해하는 과정이 137분간 그려진다. 그러나 맬릭은 또한 우주를 이야기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대치하고 가족이 다투는 원리는 모두 우주에 귀속된다는, 너무나 커다란 나머지 누구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 아무도 보지 않은 영상을 내놓는다.

이것은 우주적 대서사시인가, 은둔 철학자의 자아도취인가. 어느 쪽이든 평범한 관객이 팝콘을 먹으며 보기는 쉽지 않지만, 영화는 때로 장자의 곤(‘소요유’ 편에 등장하는 길이가 몇 천리에 이르는 물고기)처럼 커다란 이야기도 할 수 있다. 곤의 비늘 한 조각만 보든, 곤의 윤곽을 파악하든 그건 관객의 의지에 달려 있다. 27일 개봉.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