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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두뇌는 진화하지 않았다. 언어와 음악이 진화했다, <자연모방>



자연모방

마크 챈기지 지음·노승영 옮김/에이도스/270쪽/1만6000원


<자연모방>(원제 Harnessed·‘안장을 씌운다’는 뜻으로 언어·음악이 인간 뇌에 꼭 들어맞음을 비유함)의 저자는 인간 청각의 중요성이 시각에 비해 과소평가돼 왔다고 말한다. 우리는 대개 눈으로 세상을 파악한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귀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는 뜻이었다. 


과연 그랬다. 출근길 지하철 빈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귀를 열어보았다. 객차내 안내방송은 수시로 정차역을 알려주었다. 열차가 레일과 마찰하는 소리의 크기에 따라 역에서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정도, 속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문이 열린 뒤 들리는 발자국 소리의 크기는 역별 승객수에 비례했다. 암흑 속에서도 출근길 지하철의 풍경은 선하게 그려졌다. 


책에는 이런 예도 나온다. 헤드폰을 끼고 조깅을 하는 이는 근처에서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겐 무시무시한 존재다. 나무, 그루터기, 연석, 차량 같이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은 잘도 피하겠지만, 그 말고도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거나 안 보이는 것이 갑자기 나타난다면 사고의 위험이 커진다. 헤드폰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음맹’(音盲)을 자처하는 일인데, 이는 우리가 소리만으로 사람들의 위치, 동작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음을 말해준다.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 <데어데블>에는 시각장애인 슈퍼히어로가 나오는데, 앞을 볼 수 없으면서도 수많은 적들을 물리치는 영화 주인공 모습은 사실 그럴싸한 과장인 셈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교하고 복잡한 언어 체계, 원시 시대부터 각종 제의와 오락에서 감정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일차적으로 청각에 호소하는 도구인 언어와 음악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신경생물학자인 저자가 이 책에서 내세운 목표다. 사실 이 분야에선 세계적 석학들이 저마다의 이론을 이미 세워놓았다. 최근에는 스티븐 핑커의 ‘언어 본능’이 유력한 지위를 차지했다. 인간들이 기막히게 복잡한 언어를 별 노력도 없이 기막히게 구사하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며, 그것은 인간이 ‘언어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논지다. 언어는 어디에나 있으며, 많은 언어가 서로 통하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핑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 보인다. 


마크 챈기지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는 우리의 뇌가 언어, 나아가서는 음악을 위해 한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두뇌는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였으나, 언어와 음악은 몰라보게 발전했다. 그것은 언어와 음악이 두뇌에 맞게 안성맞춤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과정을 ‘문화선택’이라고 부른다.  


언어와 음악이 자신을 두뇌에 맞춰가는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자연’이다. 이때의 자연이란 산과 물, 공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우리 세계의 물리 법칙을 일컫는다. “언어는 자연을 흉내내고, 음악은 인간의 동작처럼 소리난다”는 것이 책의 요점이다. 뇌는 자연에 알맞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형성되고, 문화는 뇌에 알맞도록 ‘문화 선택’에 의해 형성된다. 결국 문화는 자연을 닮도록 유도된다. 


이 요점을 뒷받침하는 세부적인 설명이 이어진다. 먼저 언어다. 언어가 자연을 닮게 형성되는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선 자연의 ‘음소’를 살펴야 한다. 배트로 공을 치는 소리, 보신각 종이 울리는 소리, 어미 원숭이가 아기 원숭이를 쓰다듬는 소리, 낙엽이 바스락대는 소리 등 자연에는 온갖 소리가 있지만, 대부분의 자연음은 때리기, 비비기, 울리기에 의해 난다. 고체가 다른 물체와 부딪힐 때 때리는 소리가 나고, 두 고체 표면이 마찰할 때 비비는 소리가 난다. 고체가 물리적 영향을 받아 진동할 때는 울리는 소리가 난다. 소리가 나는 사건의 빈도는 때리기, 비비기, 울리기 순이다. 


그리고 인간 언어의 음소가 바로 이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때리기는 파열음, 비비기는 마찰음, 울리기는 공명음에 해당한다. 사람의 혀, 입술, 턱 등은 서로 조합해 온갖 소리를 낼 수 있는데, 동물 소리는 물론 재주 많은 코미디언들이 하듯이 병따는 소리, 자동차 소리, 방귀 소리도 흉내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소리들은 파열음, 마찰음, 공명음이 아니며, 그래서인지 인간의 언어로 사용되지도 않는다. 우리의 입은 온갖 소리를 낼 수 있음에도 물리 세계에서 자주 사용되는 음소만으로 구성된 언어 체계를 채택한 것이다. 


이 설명으로 만족 못했다면 좀 더 구체적인 증거들이 있다. 물리적 상호 작용을 더욱 면밀히 검토하면 때리기, 비비기, 울리기에 이어 때려 비비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손바닥으로 책상을 친 뒤 쓸어내리면 그게 때려 비비기다. 그러나 물리 세계에선 이와 반대되는 비벼 때리기는 있을 수 없다. 인간 언어의 음소에도 때려 비비기에 해당하는 파찰음은 있지만, 비벼 때리기에 해당하는 찰파음은 없다.


음소 뿐 아니라 단어의 길이조차 물리계의 사건을 닮았다고 챈기지는 주장한다. 볼펜이 책상에 떨어져 구르는 모습을 상상하면 어떨까. 이때의 음소는 때리기에 이은 비비기가 될 것이다. 인간이 접할 수 있는 물리계 대부분의 사건은 이와 같이 짧게 구성된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사용하는 단어는 대부분 2~3개 정도의 음소로 구성된다. 아무리 길어도 10개까지는 가지 않는다. 


의문문에서 마지막 부분을 올리는 것도 물리 현상으로 설명한다. 다가오는 기차의 기적 소리는 처음에는 높다가 나를 지나치면서 낮아진다. 이러한 상황은 도플러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서 흔히 인용된다. 이렇게 물리적 사건의 연쇄는 음높이의 하강이라는 특성을 가진다. 평서문 문장 역시 음높이가 하강하면서 끝난다. 반면 의문문같은 음높이의 상승은 사건이 끝나지 않았음을 뜻한다. 


이제 음악이 어떻게 자연을 닮았는지 살펴보자. 서두에서 예를 든 조깅하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청각은 주변 사물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갖춰놓았다. 이 시스템은 움직이는 물체와 나 사이의 거리, 내 시점에서의 방향, 속력, 행동이나 걸음걸이를 조합해 작동된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요소는 음악의 음량, 음높이, 빠르기, 리듬에 해당한다. “사람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 중에서 가장 정보 가치가 큰 성분이 음악의 기본 구성 요소가 된 것이다!”


왜 낯선 외국어 회화를 들을 때와 달리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질까. 그것은 음악이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동작을 따왔고, 그래서 정서를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그림을 볼 수는 없지만, 하루 종일 음악을 들을 수는 있다. “우리가 세상에서 보는 물체들은 대체로 소리를 내고 있다. 따라서 듣지 않고 보기만 하면 이상하고 부자연스럽고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든다. 이에 반해 보지 않고 듣는 것은 흔한 일이다.(…) 장면은 거의 언제나 소리를 동반하지만 소리는 곧잘 장면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음악이 뇌에 가장 잘 맞을까. 영미권에는 ‘귀벌레’(earworm)이란 표현이 있다. 귀에 맴돌면서 떠나지 않을 정도로 호소력 있는 노래를 말한다. 연구 결과 귀벌레 곡의 상당수는 사람의 움직임에 맞아떨어지는 춤곡이었다. 그러므로 히트곡을 만들려면 사람의 동작 중 표현력이 가장 큰 것을 알아내어 그렇게 소리나도록 해야 한다. 


따져보면 음악의 핵심 요소는 모두 인간의 구체적인 동작에 조응한다. 박자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발걸음, 음의 높낮이는 팔다리 접촉음, 리듬은 걸음걸이의 패턴을 따른다. 


인간의 언어가 물리 현상을, 음악이 인간 동작을 따라 진화했다는 챈기지의 주장은 아직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개연성은 있되 확실성은 부족한 인상이다. 주장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논리의 비약도 있고 그래서 작지만 치명적인 반박 한 번으로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다. 특히 언어보다는 음악 부분에 대한 설명이 허술하다.  


오히려 책의 유용성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겠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는 숱한 오류가 있고, 실제로 환자를 고치는데 유용한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란이 있다. 그럼에도 프로이트의 이론은 많은 예술가와 비평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프로이트의 업적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자연모방>도 비슷한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겠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듯 무심코 쓰는 말과 듣는 음악이 어떤 요소로 구성됐는지, 또 청각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낯설게’ 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뇌의 기능이 발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언어와 음악으로 대표되는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힌트가 나온다. “현대 인류가 언어 없는 ‘호모 사피엔스’ 유인원과 생물학적으로 동일하면서도 이들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된 비결은 그들 안에도, 조상들의 자연환경에도 있지 않다. 언어와 음악은 진화된, 생명체를 닮은 인공물로, 인간 유인원과 공생한다.”


미국식의 짓궂은 유머가 종종 나와서 책을 딱딱하게 읽어나가는 독자라면 조금 당황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