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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배우를 말한다

윤계상은 풍산개

지난주 개봉한 <풍산개>는 주말 동안 23만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겼다고 한다. 다만 이같은 저예산에는 배우, 특히 스태프들의 '희생'이 있었고, 가능하면 이러한 희생을 담보로 영화를 찍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풍산개>의 주연 윤계상/강윤중 기자

<풍산개>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서울에서 평양까지 무엇이든 3시간만에 배달하는 정체불명의 배달부. 영화 내내 한 마디 대사도 없이 표정과 몸짓으로만 표현한다. god 시절의 눈웃음치는 ‘장난꾸러기’, <최고의 사랑>의 ‘훈남’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화 속 윤계상의 모습 중 가장 남성미 강한 배역이다. 6㎏을 감량하며 만들어낸 근육질 몸매는 여성 관객을 위한 ‘팬서비스’다.

그는 “god 시절의 귀엽고 발랄한 이미지 때문인지 남성적 역할을 맡을 기회가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 <비스티 보이즈>, <집행자> 등을 거치며 조금씩 남자다운 역할을 해나갔고, 이번에 그동안 응축된 에너지를 제대로 폭발시켰다.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40일 남짓한 기간동안 이뤄진 25회차의 게릴라같은 촬영. 거의 매일 밤을 새면서 찍었다. 새벽 3시 파주의 허허벌판에서 물에 들어가거나, 차가운 진흙을 온몸에 바르는 장면도 있었다. 윤계상은 “체력을 따지고 말고 할 겨를이 없었다. 안찍으면 안되는 상황이니까 어떻게든 찍어졌다”고 돌이켰다.



김기덕 감독이 제작하고 전재홍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김기덕 사단’의 전통을 이어 2억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완성됐다. 윤계상을 비롯한 출연진과 스태프들은 임금을 받지 않는 대신 작품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참여했다. 이익을 남겨서 돈을 받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묻자 윤계상은 “안 받아도 된다. 다만 스태프들에게는 반드시 돈이 돌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계상이 해석한 ‘배달부’는 “가장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다. 남한말을 쓰면 남한사람처럼, 북한말을 쓰면 북한사람처럼 보일까봐 아예 대사가 없었다. 처음엔 돈을 벌기 위해 배달하고, 나중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데 힘쓴다. ‘남북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으니 “어린 시절 반공교육을 받았고, 군대에서는 북한을 주적이라고 교육받았다. 하지만 영화를 찍으면서 보니 남과 북에는 정말 많은 문제가 겹쳐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윤계상은 연기하는 순간이 행복하다고 했다. 무언가 창조하는 기분이 “예술가라도 된 것 같다”고 했다.


“‘슬픔’, ‘기쁨’이라고 시나리오에 적힌 감정을 현실화시키는게 상상도 못하게 재미있어요. 제 모습을 모니터에서 보면서 제가 아닌 것 같을 때는 닭살이 돋고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아요. 또다른 내 모습이 필름에 담겨 기록되고, 제 손자, 증손자까지 볼 수 있게 남겨진다는게 너무나 행복해요.”


다만 연기가 너무 좋아 연기를 못한 적도 있었다. <비스티 보이즈> 촬영 당시의 일이다. 배역에 ‘과몰입’한 나머지 기술적인 부분을 놓쳤다. 호스트 역할을 소화하느라 매일 밤 술을 마시고 낮에 잠을 잤다. 인물의 감정은 느낄 수 있었지만 실제 삶이 피폐해졌다. 눈빛이 퀭하고 사람을 봐도 모른 척하는 일이 잦아지자, 윤계상의 아버지는 매니저에게 정신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진지하게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요령이 생겼다. 전체 작품의 흐름, 몰입해야할 타이밍을 계산하면서 연기한다. <최고의 사랑>이나 <풍산개>가 그 예다.


윤계상은 김기덕 감독을 단 한 번 봤다고 한다. 올 초, 김기덕 감독이 은둔해 있는 강원도의 한 오두막에 온 세상 사람들 중 처음으로 초대받았다. 윤계상·김규리 두 배우, 감독과 프로듀서의 4명이었다. 그는 김 감독에 대해 “무서울 줄 알았는데 아저씨 같고 농담도 잘했다. 삼겹살도 구워주셨다”며 웃었다. 


◇영화 <풍산개>는?=남과 북을 오가며 물건을 배달해주는 정체불명의 사나이. 북한 담배 ‘풍산개’를 즐겨 피운다는 것밖에는 그의 정체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남에 망명한 북한 고위 인사의 애인 인옥(김규리)을 데려와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남자는 인옥을 안전하게 데려오지만, 국가정보원은 그를 잡아 “남이냐 북이냐”고 캐묻는다. 망명 인사는 인옥과 남자의 관계를 의심하고, 인옥 역시 집착이 심해진 망명 인사를 벗어나려 한다. 남파된 북한 간첩단은 망명 인사와 인옥을 처단하기 위해 접근한다.

유령 혹은 초인적 존재인 배달부를 통해 통일에 대한 의지를 형상화한다. 남과 북의 끝없고 어리석은 다툼을 풍자한다. “자장면 소화되기 전에 죽고 싶어?”, “인공호흡이야 키스야?” 같은 예상못한 대사에서 폭소가 터지기도 한다. 전재홍은 <의형제>의 장훈,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장철수 등과 함께 김기덕 감독의 연출부 출신이다. 김흥수 화백의 외손자이기도 한 그는 고교시절 성악을, 대학시절 경영학을 전공한 뒤 영화로 방향을 튼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