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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물의 생명연장, '닥터 스트레인지'



마블 슈퍼히어로에 조금 싫증이 나는 느낌이었는데, '닥터 스트레인지'로 약간 생명 연장한 것 같다. 



슈퍼히어로물은 어디까지 진화할까. 유전적 돌연변이(엑스맨),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갑부(아이언맨, 배트맨), 외계인(슈퍼맨), 신(토르)에 좀도둑(앤트맨)까지 나왔으니, 더 나올 것이 있나 싶다. 그렇게 수많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나오는 사이, 관객들이 조금씩 피로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24일 시사회를 통해 국내에 처음 공개된 <닥터 스트레인지>는 <어벤져스> 시리즈로 유명한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이다. 결과적으로 <닥터 스트레인지>는 조금씩 시드는 조짐이 있던 슈퍼히어로 장르의 활력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고, 향후 나올 또 다른 <어벤져스> 시리즈와의 연결고리도 확보했다. 

신경외과 의사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탁월한 실력을 가졌지만 다소 오만한 인물이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채 고급 자동차를 운전하던 그는 운전 부주의로 큰 사고를 당한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위험하고 정밀한 수술을 거침없이 해내던 손은 망가져버렸다. 스트레인지는 재활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 네팔의 신비로운 사원 카마르 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곳에서 스승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턴)을 만난 스트레인지는 특별한 능력을 전해받는다. 스트레인지는 스승을 도와 세상의 평화를 파괴하려는 악당 케실리우스(매즈 미켈슨)를 막아내야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미국 현지에서 예고편 개봉 시점부터 논란이 있었다. 1960년대 원작 만화에선 아시아계로 설정된 에인션트 원을 영화 속에선 영국 출신 백인 여배우 틸다 스윈턴이 맡았기 때문이다. 이는 할리우드에서 유색인종 배역을 줄이는 표백(화이트워싱) 문제와 맞물려 반발을 샀다. 공개된 영화는 ‘동양의 신비’에 대한 서양식 고정관념에 적절히 기대면서도, 이에 매몰되지는 않는 영리한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서양식 의학기술, 이성, 물질주의의 신봉자인 스트레인지는 삶의 막바지에 몰린 끝에 동양의 대안적 가치를 찾아나서지만, 이를 선뜻 받아들이진 못한다. 에인션트 원이 내미는 동양의학 서적은 선물가게의 기념품 취급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 경험은 환각물질 때문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에인션트 원의 압도적인 능력 앞에 결국 무릎 꿇은 스트레인지는 제자가 되길 자처한다. 




그렇다고 스트레인지가 갑자기 교주 행세를 하는 건 아니다. 이성과 추론을 통한 서구식 회의주의를 간직한 그는 카마르 타지의 오랜 규율을 가볍게 어기는가 하면, 스승의 무오류, 절대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근대 아시아 개화파 지식인들의 사상이 ‘동도서기(東道西器)’였다면, 스트레인지는 ‘서도동기’를 따른다. 

영화의 분위기도 이 같은 방법론을 뒷받침한다. 고대의 엄숙하고 신비로운 사원 카마르 타지에선 적재적소의 서구식 유머가 터진다. 예고편에서도 공개된 ‘와이파이 유머’가 대표적이다. 에인션트 원의 또 다른 제자 모르도가 스트레인지에게 기괴한 문자 쪽지를 전해준다. 스트레인지가 마법 주문이냐고 묻자, 모르도는 “와이파이 비번이야”라고 답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본분에 걸맞게 탁월한 시각적 쾌감도 제공한다. 뉴욕, 런던, 홍콩의 혼잡한 도심 속 거리, 마천루들이 수직, 수평으로 쪼개지고 생성되는 모습은 이전 슈퍼히어로 영화에선 보지 못한 풍경이다. 배트맨, 아이언맨, 헐크가 제아무리 장쾌한 액션을 선보였다 한들, 이 액션은 단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난 것들이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간과 공간을 재치있게 뒤섞음으로써 슈퍼히어로 영화 액션의 범위를 한 뼘 넓혔다. 

제아무리 기묘한 시각효과를 쓴다 해도, 영화의 중심엔 스타로서의 광휘를 뽐내는 배우가 있어야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에미상 남우주연상 수상자(컴버배치),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미켈슨),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자(스윈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레이첼 맥애덤스) 등 연기력과 스타성을 두루 갖춘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특히 텔레비전 시리즈 <셜록>으로 공전의 인기를 얻은 컴버배치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첫 주연을 맡아 연착륙에 성공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2018년 공개 예정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합류할 예정이다. 컴버배치의 개성있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또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어떤 화학작용을 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