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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트, 마키아벨리, 지젝


칼 슈미트에서 시작해 마키아벨리를 경유해 슬라보예 지젝에 이르렀다,기 보다는 이들의 책이 마침 책꽂이에 있어서 차례로 읽어봤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이 아니라 <군주론>에 대한 해설서였다. 이들의 글에 대해 평가할 위치는 안되니, 시간과 노력을 들인 독서의 결과물을 남기기 위해 밑줄 그은 몇 문장을 정리해보겠다.

1888년 태어나 1985년 사망한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는 한때 나치스의 어용학자였으나 3년만에 권력 핵심부에서 밀려나고 종전후 1년간 수용소 생활을 하고 석방된다. 4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그는 기존 학계나 정계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이따금 글을 발표했다. 샹탈 무페, 슬라보예 지젝, 조르조 아감벤 등이 슈미트의 사상에 주목하면서 다시금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1922년 출간된 <정치신학>은 그의 대표작이다.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그는 극한적 긴급상황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뿐 아니라, 그것을 평정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이 주권자는 통상적으로 유효한 법질서 바깥에 서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 안에 속해 있다.  
-모든 질서와 마찬가지로 법질서는 규범이 아니라 결정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혼란상태에 적용될 수 있는 규범 따위는 없다. 법질서가 유의미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질서가 구축되어야만 한다....따라서 모든 법은 '상황에 따른 법'이다.
-예외는 정상상태보다 흥미롭다. 정상적인 것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지만 예외는 모든 것을 증명한다.
-현대 국가론의 중요 개념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 개념이다...법학에서 예외상태는 신학에서의 기적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영원한 대화를 하며 영원히 유보상태에 머물 수 있다는 기대....자유주의는 이런 기대를 하면서 수다를 늘어놓는 셈이다.

대략 이렇게 섬찟하지만 매혹적인 사유들이다. 한국의 국가주의자들이 쌍수 들어 환영할만하다. 그들에게 칼 슈미트를 읽을 인내심과 지능이 있다면.

정치철학을 공부하는 정정훈의 <군주론, 운명을 넘어서는 역량의 정치학>은 제목 그대로 <군주론>에 대한 해설서다. 그는 <군주론>에서 '인민 해방의 기획'을 읽어낸다. 특히 "국가를 구성하는 이들의 자유는 서로 다른 계급들의 정치적 권리상의 평등을 전제로 할 때에만 국가 활력의 원천이 될 수 있고, 정치적 권리의 평등은 인민들이 자유로울 때에만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는 마키아벨리의 생각에서 에티엔 발리바르의 '평등자유' 테제를 떠올린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지젝은 역시 명불허전.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에서 비극은 2001년 9.11 테러, 희극은 2008년 금융위기다. 지젝은 '역사의 종언'을 선언한 후랜시스 후쿠야마의 유토피아가 두번 죽었다고 말하는데, 9.11은 자유민주주주의 정치적 유토피아를, 2008년 금융위기는 시장자본주의의 유토피아를 죽였다고 한다. 아래는 주옥같고 무시무시한 발췌.

-자본주의의 역설은 실물경제라는 건강한 아기는 그냥 놓아두고, 금융투기라는 더러운 물만 내다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에 있어 지배이데올로기의 중심과제는 붕괴의 책임을 세계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아니라 부차적이며 우연적인 일탈들(지나치게 느슨한 법적 규제들, 거대 금융기관들의 타락 등등)에 돌리는 서사를 강요하는 것이다. 
-지배계급은 하층계급이 경제의 현상태를 교란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할 수 있게 한다.   
-둘 다(좌파 포크가수와 우파 티 파티 가수) 사람들을 착취하는 부자와 그들의 국가에 대한  포퓰리즘적이고 반체제적인 비판을 정식화해내고 있었으며, 또한 둘 다 시민불복종까지 포함하는 급진적 조치를 요구하고 있었다.
-루비콘강을 건너는 정확한 지점, 합법적 업무가 비합법적 계략으로 변형되는 정확한 지점은 없다. 자본주의의 원동력 자체가 '합법적' 투자와 '무모한' 투기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데..
-새로운 권리들에 대한 요구는 수용되었으나 이러한 수용은 오로지 이런저런 '허용'의 모양새를 취하였다. '관대한 사회'란 주체들에게 실질적으로 권력을 더 나눠주지 않으면서 그들이 할 수 있게 허락된 것의 범위를 확대하는 바로 그런 사회였던 것.
-우리는 마치 자유로운 듯이 살도록 강요된다.
-징후는 거짓 외양의 표면을 어지럽히는 예외, 억압된 다른 장면이 분출하는 지점이며, 반면 물신은 우리로 하여금 견딜 수 없는 진실을 지탱할 수 있게 하는 거짓말의 구현체다....화폐는 맑스에게 하나의 물신이다....서구 불교는 바로 그러한 물신이다.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미쳐 돌아가는 자본주의적 게임에 전면적으로 동참하는 동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언제든 그리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고 있는 내적 자아의 평화이므로 당신이 정말로 그 게임 안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그 모든 광경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당신은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탈레반의 발흥과 같은 현상이 보여주는 것은 "매 경우 파시즘의 발흥은 실패한 혁명을 증언한다"는 발터 벤야민의 오래된 명제가 오늘날 여전히 진실일 뿐 아니라 어쩌면 이전 어느 때보다 더 적실하다는 것이다.
-급진좌파의 기본적 통찰은, 위기는 고통스럽고 위험하지만 피할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은 싸움을 벌여 이겨야만 하는 것이라는 것.
-진정한 맑스주의에서 총체성은 이상이 아니라 비판적 관념이다. 하나의 현상을 그 총체성 속에 위치시킨다는 것은 전체의 숨은 조화를 본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의 체제 안에 그것의 모든 징후들, 그 적대와 모순들을 체제의 필수적 구성요소로 포함시킨다는 뜻이다.
-지난 수십년간의 경험은 시장이 제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었을 때 가장 잘 돌아가는 호의적 기계장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준다. 시장은 그것이 기능하기 위한 조건을 확립하고 유지하는데 엄청난 시장 외적 폭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실용적,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 오바마는 결국 얼굴 주름 펴기 성형수술을 하듯 지엽적 문제만 몇가지 해결해놓고 끝나는, '인간적 얼굴을 한 부시'로 드러날 가능성이 다분하다...강경우파 애국주의자로 통하는 보수주의자만이 해낼 수 있는 진보적인 일들이 있다. 드골만이 알제리의 독립을 허용할 수 있었고, 닉슨만이 중국과의 국교를 수립할 수 있었다.

역시 록스타는 달라도 뭔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