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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곳이. 대안의 대안 전시공간들







커먼 센터의 모습은 오랜만의 문화충격. 여러모로 재미있었다. 아무튼 이 기사를 마지막으로 건축, 디자인 담당은 해제. 



영등포역을 나와 노숙자 급식소, 가발가게, 철학관, 직업소개소 등을 거치니 목적지가 나왔다. 그러나 낡아빠진 4층짜리 건물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었다. ‘청춘과 잉여’전 참여 작가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현수막만이 이 허름한 장소의 용도를 말해주었다.  


공간 내부도 ‘불친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디서부터 전시가 시작되는지 알 수 없었고, 작품이나 작가 이름도 붙어있지 않았다. 전시공간인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바닥에 붙은 작은 화살표를 따라 검은 커튼을 젖히고 뒷마당으로 돌아가야 했다.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난방은 되지 않았다. 곱은 손을 불어가며 다닥다닥 붙은 작은 방들을 옮겨 다녔다. 문이 열려 있으면 들어갔고, 닫혀 있으면 들어가지 않았다. 시멘트가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고, 뜯다 만 벽지도 남아있었다. 방 안에서는 영상 작품, 설치 작품, 벽화 등이 관람객을 맞이했다. 


이곳은 지난해 11월 문을 연 대안전시공간 커먼 센터다. 쇠락한 도심에서 수년간 비어있던 건물을 임대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는 이름을 쓰지는 않지만,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한다는 점에서는 전시공간이다. 개관준비전 ‘적합한 종류’부터 ‘청춘과 잉여’까지 1년여 동안 7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퍼포먼스, 작가와의 대화가 펼쳐지기도 했다. 개관 이후 젊은 관람객 사이에는 꽤나 알려져 찾는 사람이 늘었지만, 공간의 성격에 대한 정보 없이 찾는 이들은 여전히 당황하곤 한다. 


커먼 센터는 최근 문을 연 대안전시공간의 두드러진 경향을 보여준다. 위치 측면에서는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모여있는 종로, 청담동 화랑가 이외 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고, 공간 측면에서는 전시공간의 전형인 사각의 흰색 방(화이트 큐브)을 탈피했다. 





커먼 센터에서 열린 '청춘과 잉여'전에 출품된 이자혜의 <페미닌전사 앤니로리의 전설>. 난 앞으로 커먼 센터를 이 벽화와 함께 기억할 것 같다. /커먼 센터 제공


용산에 있는 ‘구슬모아 당구장’은 대림미술관의 프로젝트 전시공간이다. 이곳은 실제 당구장이 있던 곳으로, 당구장 시절의 당구대와 점수판 등을 그대로 둔 채 전시에 활용한다. 같은 지역의 ‘아마도 예술공간’은 지난해 문을 열었다. 3층 주택을 개조했는데 이전의 방, 부엌, 다락 등이 전시공간으로 그대로 남았다. 




구슬모아 당구장의 전시들. 저렇게 관리하면 당구를 치기는 쉽지 않겠지만. /구슬모아 당구장 제공


종로의 ‘시청각’은 1947년 지어진 ㄷ자 한옥을 활용한다. 이곳 역시 작은 마당, 세 개의 방, 부엌, 세탁실 등의 형태를 훼손하지 않았다. ‘온그라운드·지상소’는 건축 전문 갤러리를 표방한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단층짜리 일본식 목조주택을 개조했다. 지붕 기와를 걷어내 나무 뼈대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전시공간을 비춘다. 


이들 대안전시공간에서는 기존 국·공립 미술관이나 대형 사립 미술관에서 보기 힘든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커먼 센터의 ‘청춘과 잉여’전에는 박찬경·정연두·안규철씨 등 기존의 유명 작가와 함께 20대 초반의 젊은 만화가 이자혜씨의 벽화가 전시됐다. 구슬모아당구장에서는 내년 초 검정색 잉크만을 사용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무나씨의 전시회를 연다. 이들 전시공간은 건축, 디자인 등 기존의 대형 미술관에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는 분야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공간이 특이하다보니 새로운 형태의 전시를 기획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현시원 시청각 대표는 “전형적인 전시 형태에서 탈피하기 위해 화이트 큐브 미술관과는 다른 구조의 한옥을 임대했다”며 “아카이브, 공연, 좌담회 등 전시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시청각에서 열린 구동회 작가의 ‘밤도둑’전은 오후 6시~12시에만 볼 수 있었다. 시청각이 위치한 어두운 골목과 밤의 한옥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함영준 커먼 센터 디렉터는 “기존의 ‘미술 감상’은 일반인의 일상과 격리된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회화, 조각 등 전통적인 미술 작품을 보는 행위였으나 이러한 프레임은 이제 도전받고 있다”며 “젊은 애호가들이 찾을만한 젊은 작가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