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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의 삼국지, <디지털 워>

디지털 워

찰스 아서 지음·전용범 옮김/이콘/464쪽/1만7000원


총알, 폭탄이 없고 사상자도 없었다. 하지만 1998년 이후 실리콘 밸리에서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예전의 많은 전쟁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디지털 전쟁’ 역시 우리 삶의 양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동양 고전 <삼국지>에선 위·촉·오가 천하를 두고 겨뤘는데, ‘디지털 전쟁’의 주역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이었다. 


‘디지털 전쟁’의 초반, 마이크로소프트는 천하를 거머쥐고 있었다. 애플은 한때 융성했으나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 듯 보였다. 구글은 스탠퍼드 대학원을 그만둔 25세 동갑내기 청년 둘이 창고에 세운 자그마한 정보기술(IT) 회사에 불과했다. 당시 구글은 닷컴 호황기에 거품처럼 생겼다 터질 수많은 벤처 회사의 하나처럼 보였다. 전쟁의 시작 시점을 98년으로 잡은 것도 바로 이 해 에 구글이 설립됐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IT 전문기자가 지은 <디지털 워>(원제 Digital Wars)는 세 회사가 치른 격전의 양상, 경영자들과 기술자들의 전략, 전쟁의 승패를 가른 소비자의 욕망과 반응을 상세하고 알기 쉽게 전한다. 


98년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가치는 2500억 달러였고, 43세의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 부자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는 전세계 개인용 컴퓨터(PC)의 95%에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돈으로 존경을 살 수는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느덧 <스타워즈> 속 ‘악의 제국’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들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비열한 행동을 했다. 윈도우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다른 부문에서도 강압적인 이득을 얻으려 했다. 웹 브라우저 시장의 경쟁자인 넷스케이프를 고사시키기 위해 윈도우에 자사 제품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판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응하지 않으려는 PC제조업체들에겐 윈도우를 팔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소비자들은 피해를 입었다. 일단 다양한 웹 브라우저를 선택할 권리를 잃었다. 악성 바이러스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통해 윈도우 시스템 전체를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또다른 피해다. 미국 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반독점 행위를 조사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들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 회사가 쪼개지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그러나 반독점 소송은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그래머들은 이후 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또 반독점법을 위반하는 건 아닐까” 하는 체크리스트를 떠올려야 했다. 결정적인 타격은 프로그래머들의 자부심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의 프로그래머들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는 것이 양심을 파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이후 실력있는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선 마이크로소프트에 들어가길 꺼리는 분위기가 생겼다. 


신생기업 구글이 내건 모토는 당시의 이같은 흐름을 반영한다. “사악하지 말자”(Don‘t be evil).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1973년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웹서핑을 하면서 자라난 세대였다. 이들은 온라인 시장의 잠재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회사 중역이 된 뒤에야 인터넷을 만난 마이크로소프트 사람들이 인터넷의 중요성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도 알타 비스타, 야후 등 몇 가지 검색 엔진이 나와 있었으나 이 검색 엔진 회사의 최고경영진들은 검색의 정확성을 높이기보다는 광고수익을 올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들은 오히려 너무 정확한 검색 결과를 알려준다면 네티즌들이 곧바로 해당 사이트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정확성은 필요치 않다고까지 했다. 이는 전통적인 기업 논리에서는 자연스러웠다. 


페이지와 브린은 전통적 기업인이 아니었다. 이들은 구글을 각종 광고와 포르노 사이트로부터 해방시키려 했다. 오직 정확하고 신속하게 검색 결과를 찾아내 사용자에게 제시하는데 집중했다. 구글의 메인 페이지는 구글 로고와 검색창 하나로만 구성됐으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이렇다할 마케팅도 하지 않았다. 그 돈이 있으면 출장 요리사를 고용해 직원들에게 최고의 요리를 제공하는데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글 직원들은 맛있는 점심 식사를 찾아 실리콘 밸리는 헤매는 대신, 구내식당에서 일급 요리를 먹은 뒤 다시 일을 했다. 


물론 이렇게 하면 돈이 안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사용자의 충성심이다. 검색 엔진을 사용한다는 것은 일종의 습관이다. 네이버에 길들여져있으면 네이버만 찾는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검색 엔진이라 하더라도 손에 익지 않으면 어색하게 느껴진다. 구글은 철저히 공학도의 회사였다. 그들은 디자인에도 돈을 쓰지 않았다. 구글 로고 역시 설립자 중 한 명이 포토샵으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가장 실용적인 길을 걸은 덕분에 구글은 2001년 9·11 테러 당시 뉴스와 정보에 대한 링크를 제공한 유일한 사이트가 됐다. 


공룡 마이크로소프트는 뒤늦게 검색 엔진 개발에 뛰어들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구글을 사버리는 것이었다. 2003년 마이크로소프트는 구글에게 제휴 혹은 인수를 제안했으나 페이지와 브린은 이를 거절했다. 페이지와 브린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는 순간 관료적으로 경직돼고 혁신은 둔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글을 살 수 없다면 이겨야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만만했다. 돈과 재능을 무한정에 가깝게 쏟아부을 수 있었기에, 곧 구글을 따라잡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지형에서는 대군도 게릴라를 이기기 힘들다. 인터넷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다. 멋진 식당에 여러 부서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던 구글과 달리, 마이크로소프트는 각 부서별 실적 쌓기에 여념이 없었다. 거액을 투자해 내놓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 사이트는 엉망이었다. 구글을 진정한 경쟁상대라고 여길 정도의 혜안을 가진 이는 마이크로소프트 내에선 빌 게이츠 뿐이었으나, 이미 그는 경영 일선보다 사회사업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그 회사가 위기에 빠진 뒤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애플이 구색 맞추기로 내놓은 제품 대부분의 생산을 중단했다. 애플의 부활은 디지털 음악 시장에서 시작됐다. 페이지와 브린이 공학도였다면 잡스는 디자이너에 가까웠다. 그는 디지털 음원을 재생할 수 있는 아이팟의 용량, 기술적 특성보다는 외형적 특성에 집착했다. 하얀 이어폰이 꼽힌 아이팟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 무언가 멋진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잡스의 목표였다. 잡스는 아이팟을 월마트 같은 대형 유통망에 납품하지 않았다. 그곳이 진열대에 놓여 다른 MP3 플레이어와 비교되는 순간, 아이팟은 똑같은 싸구려로 전락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이팟을 전시하는 애플 매장은 고급 자동차 매장처럼 꾸며졌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즈 잡스


소비자들은 잡스의 뜻대로 움직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액셀을 사용하거나 구글 검색 엔진을 사용한다고 멋져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팟을 들으면 멋져보인다고 소비자들은 느끼기 시작했다. 아아팟, 아이팟 미니, 아이팟 나노 등이 잇달아 인기를 끌었다. 이제 애플 제품은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아이팟의 판매가 정점에 오르기도 전, 잡스는 선지자적인 안목으로 새 사업을 은밀히 구상하고 있었다. 잡스는 노키아, 모로토라 등의 거인이 자리잡고 있던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다들 잡스를 비웃었다. “휴대폰은 PC와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잡스는 직원들을 미치기 직전까지 닥달했다. 아이폰 개발 연구소가 은밀하게 자리잡은 건물 복도에는 문을 세게 닫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바람에 손잡이가 부서져 연구실 안에 사람이 갇히는 일도 있었다. 


잡스의 복안은 ‘터치’였다. 그는 아이폰에 단 하나의 버튼만 달기를 원했다. 그 이외 모든 것은 ‘터치’였다. 잡스 이전엔 그 누구도 인터넷을 손으로 어루만질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다시 한번 열광했다 태평양 건너편에서도 밤을 새면서 섬세하게 연출된 잡스의 신제품 발표회를 기다리는 팬이 생겼고, 애플 신제품이 출시되는 날 새벽부터 줄을 서는 풍경은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이번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회의를 하다가 빌 게이츠가 전화를 받느라 자리를 비우면 최고경영자 스티브 발머가 한 가지 얘기를 하고, 발머가 자리를 비우면 게이츠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명확히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한 휴대폰 회사 데인저의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고민 끝에 내놓은 아이디어들은 계속 묵살당했다. 갈수록 힘이 빠졌고 제품에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만 분명해졌다. … 지도자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 우린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새 스마트폰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대신, 자신들이 쌓아온 특허로 유력 스마트폰 회사의 발목을 잡는데 집중했다. 


2011년 8월 9일, 애플의 시가총액은 3415억 달러까지 상승해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회사가 됐다. 그날 마이크로소프트는 2143억 달러, 구글은 1851억 달러였다. 98년 세 회사의 가치는 각각 애플 55억4000만 달러, 마이크로소프트 3446억 달러, 구글 1000만 달러였다. 애플이 62배, 구글이 18510배 몸집을 불린 사이, 마이크로소프트는 3분의 2로 줄어든 셈이다. 애플이 아이패드로 태블릿PC 시장에서 선전하고, 구글이 휴대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로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이러한 구도는 당분간 고착될 가능성이 많다. 


한국에서 애플과 스마트폰 시장의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삼성에 대한 언급은 없을까. 몇 차례 나오긴 한다. 2009년 12월 한 삼성 직원이 아이패드의 추정 출시량, 스크린 주문량 등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했는데, 출시전까지 엄격한 비밀주의를 고수한 잡스가 이 소식을 듣고 삼성 스크린 구매 계약을 해지했다는 정도가 주요한 내용이다. 저자의 시선에 삼성은 그저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이용하는 덩치 큰 휴대폰 제조회사, 즉 구글의 말(馬) 정도다. 실리콘 밸리 회사만을 IT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서구 저자의 편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그 견해가 틀리지만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