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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일하는 법, <모스트 원티드 맨>


**스포일러 있음.


안톤 코르빈 감독의<모스트 원티드 맨>은 스파이 소설의 명장 존 르 카레(1931~)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83세의 르 카레는 올해에도 신작을 발표했다. 소설 <모스트 원티드 맨>은 2008년인데, 냉전 시대부터 스파이 소설을 써온 존 르 카레가 나날이 변하는 현대의 외교, 정치 상황에 대해 여전히 예리한 안목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 장군이 체첸의 미성년 여성을 성폭행해 태어난 청년 이사 카르포프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여러 곳을 떠돌며 신산한 삶을 살아온 그는 심성이 곱고 이슬람교에 대한 신심이 강하다. 독일 함부르크로 밀항해 온 카르포프는 한 소규모 은행을 찾아가려는 중이다. 그곳에는 아버지가 부정하게 모은 거액의 돈이 예치돼 있다. 카르포프가 돈의 쓰임새를 두고 갈등하는 사이, 독일의 온건한 정보요원과 강경한 정보요원, 미국의 CIA, 난민을 돕는 젊은 여성 변호사, 은행원 등이 얽히고 설킨다. 변호사, 은행원 등은 카르포프가 돈을 찾아 함부르크에서 새 삶을 살게 도우려 하고, 정보요원들은 카르포프와 이슬람 테러리스트와의 연계를 의심하거나, 카르포프를 미끼로 테러 조직의 돈줄을 추적하려 한다.  


영화는 온건한 독일 정보요원 군터 바흐만(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설을 읽으면서는 느끼지 못했지만, 호프만이 그려낸 바흐만은 일에 찌든 중년 직장 남성의 전형과 같다. 일에만 찌든 것이 아니라 알코올과 니코틴에도 찌들었다. '담배 중독'이란 말은 없으므로 쓸 수 없지만, 알코올 중독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호프만은 새벽 2시 30분쯤에 사무실에서 혼자 위스키를 마시며 카르포프에 대한 자료를 살피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 배우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명복을 빈다. 


일터 바깥의 바흐만에 대해서 영화는 전혀 그리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직장 내의 가볍게 로맨틱한 감정이 그려진 것 같은데, 영화에서는 아예 이 부분조차 없다. 이 남자의 가족, 친구,주거지, 취미 등에 대해 관객은 전혀 알 수 없다. 이 남자는 오직 직장 동료, 상관, 정보원, 다른 조직의 경쟁자, 체포해야 할 대상 같이 일과 관련된 사람만 만난다. 호프만은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 일중독자를 그려낸다. 


이 남자는 왜 일할까. 삶에서 별다른 쾌락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고, 돈을 벌어주어야할 누군가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일 자체를 무지 좋아하는 걸까.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호프만은 내내 무표정하다. 영화 속에서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던 것 같다. 바흐만은 가볍게 웃으면서 "세상을 더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그러나 그건 며칠전 경쟁자 혹은 조력자인 CIA 요원이 한 말의 반복이었다. 본심을 담지 않은 패러디다. 



CIA로 나오는 로빈 라이트.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도 그렇더니 요즘 이분 권모술수의 대가로 자주 나오시는 듯. 


바흐만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같이 생각없지만 유능한 관료라고 해석하기도 어렵다. 바흐만은 조직 안팎의 경쟁자를 물리치려 하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상부에 설득시키려 한다. 그 과정에서 꽤 협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옳다고 믿은 방향으로 하려는 사람이다. 물론 여기서의 '옳다'는 말은 '정의롭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적합하다'는 뜻에 가깝다.  


일, 목표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한 바흐만은 그러나 끝내 패배한다. 마치 애써 잡아온 사냥감을 다른 맹수에게 가로채기 당한 꼴이다. 경쟁자들은 바흐만의 노획물을 자기 식대로 요리할 것이다. 그것이 "세상을 더 안전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바흐만은 자동차를 운전해 어딘가로 향한다. 목적지에 도달한 듯 그는 차에서 내리고 카메라는 아무도 없는 운전석을 한참 비춘다. 그리고 영화는 끝. 


바흐만은 상부에 항의할까. 혹시 사직서라도 낼까. 그도 아니라면 또다른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할까. 아닐 것 같다. 바흐만이 내린 곳은 대낮부터 문을 여는 술집일 것 같다. 그곳에서 정신을 잃지 않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골아 떨어진 뒤 다음날 다시 출근할 것 같다. 터무니 없는 결과라도 그것이 결과라면 받아들이는 것이 이 남자가 일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조직의 한계, 세계의 사악함을 탓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그 속에서 손을 더럽히며 일하는 것. 다음번에는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애쓰는 것. 출근을 그만하는 그날까지 이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제발로 나가거나 밀려나지 않고 버티는 것. 그것이 이 남자가 일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