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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지 않는 자객, <자객 섭은낭> 허우샤오시엔 8년만의 신작. 아름답고 낯설고 때로 길게 느껴지는 무협영화다. 한참 싸우다가 그냥 아무일 없었다는 듯 가버리는 섭은낭이 인상적이다. 은 이상한 무협영화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경공술이 없고, 강호의 도리를 설파하는 협객도 없다. 게다가 주인공은 사람을 죽이는데 실패하기 일수인 자객이다. 감독의 이름을 들으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로 유명한 대만 감독 허우샤오시엔(侯孝賢·69)이다. 지난해 제68회 칸국제영화제는 (2007) 이후 8년만에 돌아온 명장에게 감독상을 주며 환영했다. 9세기 당나라. 섭은낭은 위박 지역의 맹주인 전계안과 정혼했다가 파혼당한다. 전계안의 모친인 가성공주가 아들을 세력가의 딸과 결혼시키길 원했기 때문이다. 섭은낭은 가성공주의 쌍둥이 동생인 가신공주에게 맡겨져 .. 더보기
평범한 파시스트로 살아가기, <순응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46년전 영화가 이제 개봉한다. 30세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를 선보인 건 1970년이었다. 이 영화가 거의 반 세기가 흐른 2016년에 한국에서 정식 개봉한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세이지, 코엔 형제, 박찬욱이 최상급의 찬사를 보낸 46년전 작품에서 동시대 관객은 뭘 읽어낼 수 있을까. 로마의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마르첼로는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한다. ‘주방과 침실이 어울리는’ 중산층 가정의 여성과 결혼하고,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던 무솔리니 정권의 비밀경찰에 자원한다. 정부는 첫 임무로 파리에서 반파시스트 활동을 벌이고 있는 마르첼로의 대학 은사 콰드리 교수를 암살하라고 지시한다. 신혼여행을 겸해 파리로 떠난 마르첼로는 콰드리에게 접근했다가 그의 아내 안나의 매.. 더보기
몽상가, 독재자, 선동가, <스티브 잡스> 가 보다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뜬 2011년 10월5일부터 할리우드 사람들은 그를 스크린으로 소환할 방법을 궁리했을지 모른다. 잡스는 전 세계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생각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괴팍한 캐릭터와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으로도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작가 에런 소킨이 의 시나리오를 쓴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기대감이 올랐다. 소킨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다룬 로 IT 천재의 내면에 도사린 빛과 어둠을 능란하게 구현하는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소킨이 월터 아이작슨의 전기 를 저본으로 삼아 일찌감치 시나리오를 써나간 반면, 연출자를 정하는 데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를 연출했던 데이비드 핀처가 하차하고, 의 대니 보일이 합류했다. 배우도 애초 물망에 올.. 더보기
대자연 속 생존 실험 보고서, <레버넌트> ***스포일러 있음. '영화적인 영화' 혹은 '시네마틱한 경험'이란 무엇인가. 이론가들은 이를 두고 몇 시간을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감각적으로 '큰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영화인가'라고 자문한다. 얼마전 본 이 그랬다. 눈덮인 벌판을 달리는 마차가 나오는 첫 장면부터 "더 큰 스크린에서 볼 걸" 하고 후회했다. 은 절반 이상이 넓지 않은 실내에서 펼쳐지는 영화지만, 그래도 이를 담는 스크린이 커야 볼 맛이 난다. 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 영화는 대부분 실외 촬영이다. 백인에 의해 개발되기 이전의 북미 서부 지역의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힘없는 인간 몇 명이 피비린내 나는 생존 투쟁을 벌인다. 자연에는 자비심이 없다. 그 속에 내쳐진 인간의 힘겨운 투쟁을 강조하기 위해 카메라가 자주 쓰는 테크닉은 급격한 패.. 더보기
단 하나의 파격, <스타 워즈: 깨어난 포스> **스포일러 있음 J J 에이브럼스가 바톤을 넘겨받은 스타워즈 신작 를 봤다. 줄거리의 이음새가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며, 어색하지 않은 컴퓨터 그래픽 화면이 연말 극장가의 한 자리를 차지할 상업영화로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솔직히 불만이 있다. 이런 식이라면 에피소드 7, 8, 9가 아니라 70, 80, 90도 만들 수 있다. 의 구도는 에피소드 4와 거의 비슷하다. 다른 등장인물이 등장해 앞선 영화와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드로이드가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고, 자신의 힘을 깨닫지 못한 영웅이 있고, 결국 이 영웅이 힘을 깨닫고 수련해 가는 과정을 예기하며, 악당은 대체로 한 점의 반성도 없는 순수 악 그 자체이지만, 그 중 행동대장 격인 인물은 일말의 망설임이 있다. 심지어 아버.. 더보기
투명한 사회의 첩보원, <007 스펙터> **스포 일부 있음 로저 무어나 피어스 브로스넌의 007을 즐긴 적은 없다. 별로 세련될 것도 없는 내 90년대 감수성으로 봐도 그들의 007은 구시대적이었으니까. 브로스넌이 북한의 가상 악당을 대상으로 싸운 는 그저 하나의 농담 같았다. 새 007에 캐스팅된 다니엘 크레이그는 듣도 보도 못한 배우였다. 얼굴을 처음 봤을 때, 그 얼굴에 악당이면 악당이지 제임스 본드 역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도무지 생각하기 힘들었다. 크레이그의 첫 007 시리즈 (2006)은 첫 장면에서부터 제이슨 본 시리즈나 트리플 엑스 시리즈에 의해 놀림당할 대로 놀림당한 007의 전통을 품위있게 재창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선언은 실천됐다. 느끼하고 구닥다리 같은 007은 크레이그와 함께 기름기 없고 날렵하고 냉정하고 좀 더 현실.. 더보기
말하고 싶은 것과 보여주고 싶은 것, 스파이 브릿지 **스포일러 조금 스티븐 스필버그의 는 마치 두 편의 영화를 이어붙인 듯 보인다. 스필버그답지 않게 그 이음새가 어색하다는 느낌도 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57년을 배경으로, 보험전문 변호사 제임스 도노반이 소련 스파이 혐의를 받고 있는 루돌프 아벨의 변호를 맡아 법정 공방을 벌이는 대목이 전반부, 선고 이후 수감생활중인 아벨과 소련 상공에서 스파이 촬영을 하다가 불시착해 붙잡힌 미군 파일럿을 교환하기 위한 협상 대목이 후반부다. 전반부는 법정 영화의 틀을 따라가고, 후반부는 냉전 시대 스파이 영화의 형태를 보인다. 스필버그가 '하고 싶은 말'은 전반부에 응축돼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교실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한 뒤 핵전쟁 비디오를 감상하는 시대다. 미국은 핵전쟁에 대한 공포와.. 더보기
순도 높은 볼거리, <라 바야데르> 공연을 많이 보지는 못하는 편이지만, "다른 캐스팅으로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공연이 최근 두 편 있었다. 하나는 뮤지컬 였고, 다른 하나는 오늘 본 유니버설 발레단의 발레 였다. 는 다른 배우의 연기가 궁금해서였다면, 는 어떤 무용수라 하더라도 이 공연을 한 번 더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인도의 제국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무희, 그를 사랑하는 장군, 무희를 질투하는 공주, 무희를 남몰래 사랑하는 사제라는 4각 관계는, "드라마틱하다"기보다는 "막장 드라마 같다" 혹은 "낡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줄거리다. 근대 서구에서 만든 작품이 종종 그러하듯, 오리엔탈리즘의 혐의를 벗기도 어렵다. 이런 인물 구도와 줄거리를 대략 설명하는 1막은 다소 지루했다. 2막부터 분위기가 바뀐다. 이제부터는.. 더보기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 서울발레시어터의 김인희 단장 인터뷰를 잘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인터뷰는 잘됐다. 인터뷰이의 사연이 풍부하고, 인터뷰이가 그 사연을 전하는 조리가 있으며,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존중하고, 인터뷰 자리가 화기애애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과정이 결과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인터뷰 내용에 비해 주목도는 떨어진 것 같다. 어딘지 아쉬워 인터뷰 내용을 블로그에 옮겨 놓는다. 아울러 서울발레시어터의 공연에 대한 표현은 모두 진심이다. 정말 입이 딱 벌어졌고,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서울발레시어터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이자 김인희 단장(52)의 은퇴공연이 된 의 마지막 장면. 와이어에 매달린 김 단장이 무대를 고속으로 가르질렀다. 객석 곳곳에서 탄성과 박수가 터졌다. 공연 초반엔 “우아하고 위엄있다”는 평이 어울.. 더보기
감정의 슈퍼맨, <마션> 을 보고 리들리 스콧의 인장을 느끼긴 어렵다. ,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스콧의 영화 중 이토록 긍정과 희망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찬 영화가 있었던가. SF 장르만 한정해 보더라도 (2012)는 얼마나 우울하고 찝찝한가. 장르를 넓혀보면 (2013)같이 더 찝찝한 영화도 있다. 그런데 은? 전세계인이 화성에 홀로 남겨진 우주인 마크 와트니의 무사귀환을 빌고, 그가 화성을 탈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함께 기뻐한다. 할리우드 SF의 클리셰, 임무 성공 소식이 전해졌을 때 NASA 사람들이 환호하는 장면에선 거의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내게 은 만족스러운 상업영화였다. 난 이 일종의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생각하고 즐겼기 때문이다. 식물학자로서의 지식을 총동원해 감자를 재배하고, .. 더보기
안녕, CSI **스포일러?미국 드라마 라스베가스 시즌의 피날레를 봤다. 이 시리즈가 처음 시작한 것이 2000년이니 벌써 15년이다. 최근 몇 년 간은 전혀 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편이 한국 지상파에서 방영했을 때에도 관람했던 시청자로서, 심지어 이 시리즈가 편성 문제 때문에 들쑥날쑥 방영되자 분노에 찬 기사를 쓰기도 한 처지로서, 시리즈의 엔딩에 대해 한 마디 보태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 피날레는 피날레답게 그동안 하차했던 멤버들이 대거 모였다. 워릭은 극중 사망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길 그리섬, 캐서린 윌로우스가 범인을 잡기 위해 다시 나타났다. 잊을만하면 길 그리섬과 썸을 타던 레이디 헤더가 연관된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나 테러리즘 운운하며 거창하게 시작했던 초반부와 다르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이혼한.. 더보기
술파는 무대, 뮤지컬 <원스> 뮤지컬 리뷰. 극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무대 위에선 흥겨운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다. 관객들은 무대에 올라 뮤지션들을 둘러싸고 박수 치며 흥을 돋웠다. 공연시간이 가까워지자 관객들은 하나 둘씩 자리로 돌아갔고, 기타, 바이얼린, 아코디언을 연주하던 악사들은 어느새 배우가 됐다. 공연 시작 전과 후는 객석의 불이 조금 어두워졌다는 점만 달랐다. 뮤지컬 는 그렇게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인터미션에는 무대에 올라 간단한 음료를 사마실 수도 있었다. 무대 자체가 아일랜드 더블린의 펍을 재현했기 때문이다. 뮤지컬 는 2006년작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뮤지컬과 영화는 더블린 거리의 가난한 악사와 동유럽 출신 이민자의 쓸쓸한 사랑 이야기라는 뼈대를 공유한다. ‘폴링 슬로우리’ ‘이프 유 원트 미.. 더보기
배우가 창조하는 마법의 순간, <맨 오브 라만차> 내가 개막한 지 두 달도 더 된 뮤지컬 를 보러 간 건 버스 정류장을 지나다 본 아래 포스터 때문이다. 난 젊은 조승우와 늙은 조승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사실 이 포스터는 티저 포스터다. 그러니까 이런 모습이 공연에 나오진 않는다는 뜻이다. 조승우의 젊음과 늙음은 종교재판을 앞두고 지하감옥에 수감된 작가이자 젊은 관료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 그가 감옥 속에서 연기하는 늙은 기사 돈키호테로 표현된다. 세르반테스는 실제로 작가라기보다는 군인, 관료로 더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해적에 붙잡혔다가 몸값을 내고 풀려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포스터의 비밀이 궁금해 뮤지컬을 봤다면 살짝 '낚였다'는 기분이 들 수도 있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론 기분 좋은 '낚임'이 됐다. .. 더보기
꺠달음에 이르는 길고도 짧은 길 <당나라 승려> 읽어보니, 매체의 반응은 '혹평'이 많은 것 같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 많은 사람을 만족시킬 작품은 아니니. 그래도 난 이 작품을 보고 깊은 감흥을 받았으며, 심지어 삶에 대한 깨달음도 얻었다고 여긴다. 가 공연된 2시간 남짓, 지겨워 몸을 뒤틀 수도 있고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무대 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천지가 흔들리는 풍경을 봤을 수도 있다. 는 지난 4일 개관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개막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이날 첫선을 보였다.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대만 예술가 차이밍량(蔡明亮·58)이 연출했다. 아시아예술극장이 벨기에 쿤스텐 페스티벌, 오스트리아 빈 페스티벌, 대만 타이베이 아트 페스티벌과 공동제작한 작품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더보기
한국 수입사의 '개입'에 대해. <아마조니아>와 <숀더쉽>의 경우 휴가 기간중 아이와 온전히 며칠을 보낼 일이 생겨 두 차례 극장 나들이를 했다. 방학임에도 어린이 영화의 회차가 매우 적어 한정된 시간을 노려야 했다. 처음 본 영화는 다큐멘터리 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마존의 생태계를 다룬 영화다. 프랑스, 브라질 합작의 이 영화는 도시에서 자란 샤이라는 새끼 원숭이가 비행기 사고로 아마존 한복판에 추락한 뒤 그곳에서 삶을 개척해나가는 이야기다. 샤이는 당연히 아마존의 생태에 대해 무지하고 생존 능력도 떨어지지만, 이런저런 조력자의 도움과 유전자에 내재한 능력으로 어떻게든 생존해 나간다. 제작진은 야생동물 보호소에 있던 꼬리감는원숭이를 아마존에 적응시킨 뒤 영화에 '출연'시켰다고 한다. 한국의 수입사는 상영본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아마도 어린이 관객의 이해를.. 더보기
서울 사람들이 모르는 서울 <플레이스/서울> 프로파간다는 재미있는 책을 많이 낸다. 플레이스/서울피터 W. 페레토 지음, 신병곤 사진, 정은주·조순익 옮김/프로파간다/340쪽/1만5000원 “서울의 건물은 얼굴이 없다. 그 대신 가림막이, 즉 간판이 군림하는 표면이 있다. 상업용, 기관용, 개인용, 혹은 다른 어떤 형태이든 간에 간판은 잡초처럼 퍼져 공격적으로 그 숙주를 식민화하고 결국 본래의 종을 변이시킨다. 사람의 문신처럼 도시의 문신은 건물의 피부를 관통하지만, 그 메시지가 미적이거나 상징적이거나 묘사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다르다. 도시의 문신은 건물의 내부 프로그램을 찍어 보여주는 엑스레이와 같이 기능한다. 바꾸어 말해 소비자를 위한 이 합법적 낙서는 고객들이 맘 속에서 건물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한다.” 토착민의 눈에 자연스러운 것이 이.. 더보기
하늘에서 본 세상, <드론> 이런 사진을 보면 찍고 싶잖아... 드론조성준 지음/눈빛/128쪽/1만2000원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눈높이를 넘어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카메라를 든 인간도 같습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초상사진가 펠릭스 나다르는 다게레오타입 카메라를 들고 ‘열기구’에 올라 인류 최초로 공중촬영을 시도했습니다. 20세기, 삶과 예술의 유기적 결합을 꿈꾸었던 시각예술가 라슬로 모흘리-나기는 베를린 ‘라디오 타워’ 위에서, 21세기 인류와 환경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이끌어 낸 항공사진가 얀 베르트랑은 ‘헬기’ 위에서 각각 세상을 담아냈습니다. 오늘날 드론의 등장은 공중촬영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위로부터 잠실(2014.09), 목포신항 수출부두(2014.11), 해운대(2014.07) 눈빛 제공. 만화 .. 더보기
일본의 바니타스화? 구소시에마키 일단 그림부터. (마쓰다 유키마사/바다출판사)에서 본 그림이다. 가마쿠라 시대 말기의 오노노 고마치란 사람이 그렸다고 하니, 14세기쯤이다. 제목은 ‘구소시에마키(九相詩繪卷)’. 책의 저자는 "사람이 죽은 직후의 아직 생생한 장면에서부터 점점 썩어가고 결국 뼈만 남아 소멸에 이르는 아홉 번의 변화 과정이 한 장 한 장에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 변화하는 모습이 굉장히 현실감 있게 그려진 것을 보면 상상이 아니라 직접 관찰해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고 해설했다. 이어서 유명한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연속 사진을 해설하면서, 이 그림이 머이브리지보다 600년이나 빠른 운동 표현이라고 자랑한다. 그럴싸하다. 저자의 추측대로 진짜 시신이 썩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린 것이라면, 에 나온 '시체농장'이란 곳을 연상하면 .. 더보기
인간은 공룡에게 먹히기 위해 나타난다, <쥬라기 월드> ***스포일러 있음. 다시 한번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의 가장 큰 스크린에 들렀다. 개봉 첫 주 를 보기 위해서다. 스크린 크기나 사운드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여기는 편이었지만, 이왕이면 블록버스터는 이런 대형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만족스러웠다. 여름을 시작하는 블록버스터로서는 충분히 제값을 했다. 적어도 보다는 훨씬 잘 만든 블록버스터였다. (는 왜 그렇게 재미없었을까. 지금도 영웅들이 뭘 했는지 하나도 생각 안나고, 뜬금없이 등장한 호크아이의 시골집과 가족들만 생각난다.) 국내 언론에선 찬반이 갈리는 모양이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멍청함'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그런 지적이 나올 법하다. 실제로 의 등장인물들은 멍청하니까. 하지만 난 이 인물들의 한심함을 좀 더.. 더보기
안녕, 폴 워커,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의 사실적인 장면을 찾아보자. 1. 군용 수송기에 실려있던 묵직한 차들이 슬금슬금 후진을 하더니 공중으로 떨어진다. 공수부대가 몸을 가누듯 차도 차체를 움직인다. 그리고 정말 공수부대처럼 지상에 가까이오자 낙하산이 펴진다. 차들은 놀라울 정도의 정확성으로 도로 위에 착륙하자마자 질주를 시작한다. 잘못해서 나무 위나 강 같은 곳에 떨어지는 차는 없다. 2. 아부다비의 나란히 있는 세 개의 초고층 빌딩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한 자동차가 냅다 유리창을 뚫고 공중으로 날아간다. 그대로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옆 건물의 창을 깨고 그리로 착륙한다. 기둥 같은 곳에 부딪혔으면 추락했겠지만, 그런 일은 없다. 차는 다시 한번 창문을 깨고 옆 건물로 날아간다. 이쯤되면 이 영화는 픽사의 애니메이션 처럼, 자동차를 의인화.. 더보기
미국인의 초상, <아메리칸 스나이퍼> 크리스 카일(1974~2013)은 네번의 참전에서 160명의 적을 사살한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소속의 저격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는 그의 삶을 다룬다. 그러나 난 이 영화의 제목을 그냥 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영화가 그리는 크리스 카일이야말로 '진짜 미국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은 넓은 나라다. '합중국'(united states)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각 주마다 문화가 다르다. 영화에는 거대한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텍사스 사람인 크리스 카일이야말로 '미국인'의 진짜 모습이다. 카일은 텍사스 그리고 미국에 대한 애정에 넘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애정은 텍사스 혹은 미국 바깥의 사람에게는 절대 가닿지 않는다. 카일은 지역의 로데오 경기에 참여한 뒤 그 증거로 .. 더보기
롯데 월드타워를 보면서 <매드 맥스>를 생각한다 **스포일러 있음. 일요일 조조로 를 보았다. 마침 재개장한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도 가장 크다는(세계에서도 가장 크다는) 슈퍼G관에서였다. 엉뚱하게도, 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롯데 월드타워에 대한 느낌을 조금 적고 싶다. 알려져 있다시피, 그곳은 공사중인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수족관의 물이 세거나 극장에서 옆 상영관의 진동이 전달되는 등의 안전 문제가 지적돼 한동안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겼다. 물론 그 전에 석촌호수의 수위가 낮아지거나, 주변에 이유 없이 싱크홀이 생기는 등의 일로 좋지 않은 전조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극장과 아쿠아리움이 다시 문을 열었으나, 며칠 만에 작업중인 노동자 2명이 전기 작업을 하다가 화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속보'로 전해졌다. 난 궁금했다. 롯데 월드타워에만 이런 .. 더보기
왜 싸우는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을 개봉 이틀째에 봤다. 1편은 꽤 좋아했고, 나 (즉 캡틴 아메리카)도 그럭저럭 봐줬지만, 는 별로였다.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헐크가 함께 나왔는데 시너지를 내지 못한다고 느꼈다. 개성 강한 영웅끼리 티격태격하다가 끝. 모두들 이야기하는, 헐크가 로키를 떡실신시키는 장면에서 피식 웃었을 뿐이었다. 일단 이 속편을 두고 "캐릭터에 깊이가 생겼다"는 식의 평가에 동의를 못하겠다. 물론 전편보다 각 캐릭터의 '고민'을 좀 더 다루긴 했다. 예를 들어 활을 빠르고 정확하게 쏜다는 것 빼고는 특출한 능력이 없는 호크아이의 고민 같은 것. 호크아이는 곧 태어날 아이를 포함하면 세 아이의 아버지다. 가족은 한적한 시골에서 평화롭게 살아간다. 신(토르), 천재 엔지니어이자 대부호(.. 더보기
<화장>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시사회를 다녀왔다. 지금 이 영화에 대해 총체적인 감상을 적기는 어렵다. 그저 짤막한 단상 정도. 스포일러 포함. 1. 오상무(안성기)가 똥을 싸는 아내(김호정)를 욕실에서 씻어주는 장면은 정확하다. 빼고 더할 것이 없다. 알려진 바로는 임권택 감독은 김호정에게 하반신을 노출하고 찍어야 한다는 사실을 당일에서야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배우와 미리 상의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장면에는 노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다른 여지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똥오줌을 가리면서 사람이 된다. 아이는 똥오줌을 가릴 때쯤 서서히 자아를 갖춘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그래서 어른이 똥오줌을 못가린다는 것은 그의 신체적 능력이 아이 수.. 더보기
찰리 파커는 있는가, 위플래쉬 **스포일러 있음 는 말할 나위 없이 재미있는 영화다. 배우들이 열연하고, 줄거리가 간결하며, 무엇보다 편집이 기막히다. 마지막 공연 장면에선 손에 땀이 난다. 음악의 힘이 크지만, 이 리듬을 그대로 살려낸 편집도 대단하다. 드러머 앤드류와 지휘자 플레처를 번갈아 패닝해서 보여주는 테크닉은 어찌 보면 아마추어적인데, 이 영화에선 굉장히 잘 어울린다. 정신 없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영화는 그러나 매우 고전적인 주제를 다룬다. '음악 천재' 이야기는 20세기도 아니라 19세기의 아이템이다. '예술 천재' 개념 자체가 19세기 낭만주의의 산물이니까. 그런 고전적인 주제를 그렸기 때문에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장대한 SF의 외피를 썼으나 부녀간의 사랑이라는 고전적 주제를 다룬 가 한국.. 더보기
가장 귀족적이면서 천한 집단의 탄생 <킹스맨> (스포일러 재중)요즘엔 머리가 터지고 팔 다리가 잘리는 영화는 잘 보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는 예외로 해야겠다. 초반부부터 대여섯 명을 순식간에 죽이거나 사람을 세로로 해 반으로 써는 장면이 나오더니, 종반부엔 소수 종파의 대량 학살극이 나오고 급기야 세계 권력자들의 머리가 집단으로 터져나가는 장면까지 나온다. 머리 터지는 장면은 마치 불꽃놀이처럼 그려진다. 심지어 화이트 하우스의 주인의 머리도 터진다. (한 인터뷰에서 매튜 본 감독은 그것이 버락 오바마를 특정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 일반에 대한 조롱이라고 강변했다.) 은 전통적 스파이 영화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나이든 재단사가 맞춰준 멋진 수트를 입고, 전통적이면서 아름다운 구두를 신고, 위스키나 칵테일들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줄 알고, .. 더보기
왜 지금 우주인가, 이영준과 김형주의 대담 직설적이고 재치있는 두 분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지만, 왜 하는지 모를 일들이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우주 탐험이 그런 종류의 일이다. 실생활에 도움을 주지 않고, 뚜렷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며, 결과가 나온다 해도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는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 탐험은 현대 예술과 비슷하다. 우주 탐험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이 나란히 선보이고 있다. 5일 개봉한 은 세계 최초로 개인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아티스트 송호준씨를 주인공으로 삼은 다큐멘터리다. 송씨는 인공위성 발사 비용 1억원을 충당하기 위해 티셔츠 1만장을 파는 동시, 까다로운 로켓 제작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는 ‘우주생활-NAS.. 더보기
미다스의 손, 장민승 사적인 팁을 얻어 추진한 인터뷰였는데, 대단히 즐겁고 알찬 시간이었다. 그는 음악 만들고, 가구 만들고, 사진 찍고, 설치 한다. 다만는 글쓰기엔 좀 취약하다고 고백했다. 나로선 다행이다. 장민승(36)은 미다스의 손을 가졌다. 음악을 하다가 가구를 만들었고 또 얼마 있다가 사진을 찍고 설치 작업을 했다. 그리고 모두 성공했다. 작업 매체를 바꾼 이유는 “싫증을 잘 느낀다”는 것이다. 평생 한 가지만 하고도 이름을 못떨치는 사람이 보기엔 복장 터지는 노릇이다. 그는 최근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후보 3인에 올랐다. 서울 강남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는 그의 신작 가 전시중이다. 어두컴컴한 복도에는 일본의 단시 하이쿠 6편이 수용성 종이에 인쇄돼 걸려있다. “파도는 차갑고, 물새도 잠들지 못하는구나” “꿈은 마.. 더보기
세상에 이런 곳이. 대안의 대안 전시공간들 커먼 센터의 모습은 오랜만의 문화충격. 여러모로 재미있었다. 아무튼 이 기사를 마지막으로 건축, 디자인 담당은 해제. 영등포역을 나와 노숙자 급식소, 가발가게, 철학관, 직업소개소 등을 거치니 목적지가 나왔다. 그러나 낡아빠진 4층짜리 건물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었다. ‘청춘과 잉여’전 참여 작가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현수막만이 이 허름한 장소의 용도를 말해주었다. 공간 내부도 ‘불친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디서부터 전시가 시작되는지 알 수 없었고, 작품이나 작가 이름도 붙어있지 않았다. 전시공간인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바닥에 붙은 작은 화살표를 따라 검은 커튼을 젖히고 뒷마당으로 돌아가야 했다.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난방은 되지 않았다. 곱은 손을 불어가며 다닥다닥 붙은 작은 방들을 옮겨 다녔다.. 더보기
2015 달력들 왕년엔 문화부 언저리에 있으면 예쁜 달력들이 참 많았다. 아무래도 미술관, 갤러리 등 아름다움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들이 많다보니, 이들이 만드는 달력들도 멋있던 것 같다. 2014년 말을 문화부에서 보내고 있다. 하지만 회사로 들어오는 달력의 양은 예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다들 형편이 어려워 달력을 찍지 않는 것일수도 있고, 이제 사람들이 벽걸이 달력을 필요로하지 않기 때문일수도 있다. 짐작으로는 겸사겸사인 것 같다. 그래도 주변에 있는 몇 가지 달력을 챙겨 펼쳐 보았다. 굳이 달력이 필요 없어도, 이 정도면 걸어도 될 것 같다. 그 유명한 리움의 달력이다. 풍속화를 주제로 삼았다. 인쇄의 질이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다. 해외에서 인쇄해 들여왔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문제작이다. 디자인회사 '육공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