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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에서 청년이 방 한 칸을 가진다는 것, '프란시스 하' 뒤늦게 노아 바움벡의 '프란시스 하'(2012)를 보다. 감독 바움벡과 주연 그레타 거윅은 이 영화 이후 좋은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바움벡의 최근작 '마이로위츠 스토리'는 지난해 칸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거윅의 연출 데뷔작 '레이디 버드'는 지난해 각종 시상식에서 가장 각광받은 영화이기도 하다. 바움벡하고 거윅은 지금 사귀고 있대나 어쨌대나. '프란시스 하'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흑백영화다. 20대 후반의 프란시스는 현대무용가, 그의 절친인 소피는 출판 편집자다. 하지만 아직 입지가 확고하지는 않다. 프란시스는 일종의 연습단원으로 겨우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는 상태다. 생활비 비싼 뉴욕에서의 생활은 당연히도 쉽지 않다. '프란시스 하'는 그래서 현대 대도시 청년 1인 가구가 살아가는 모습을 다룬 영.. 더보기
에이리언의 기원, '에이리언: 커버넌트' 재미 없지는 않지만, 기대만큼 좋지도 않은 '에이리언: 커버넌트'. 여섯 번째 ‘에이리언’ 시리즈인 는 갓 깨어난 인공지능(AI) 데이비드(마이클 패스벤더)와 그의 창조자 피터 웨이랜드(가이 피어스)의 대화 장면으로 시작한다. 태어나자마자 피아노로 바그너의 곡을 연주하고, 차도 만들 줄 아는 데이비드는 자신의 창조주에게 문득 묻는다. “누가 당신을 창조했습니까?” 42세에 전설적인 SF호러영화 (1979)을 만든 감독 리들리 스콧(80)은 30여년이 흐른 뒤 의 프리퀄인 (2012)로 돌아왔다. 는 이후의 상황을 그린다. 우주 식민지 개척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머나먼 목적지로 향하던 커버넌트호는 비행 도중 사고를 당한다. 예상보다 일찍 냉동수면에서 깨어난 승무원들은 목적지 대신 인간이 살기에 적합해 보이.. 더보기
선거는 똥 속에서 진주 꺼내기, '특별시민' 아이디어라든가, 개봉시점이라든가, 괜찮았으나, 결과적으로 흥행은 미적지근.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표현하지만, 막상 선거를 치르는 후보와 참모들은 ‘꽃길’을 걷지 못한다. 선거전(選擧戰)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오늘날의 선거는 ‘전쟁’에 가깝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각 개인의 목소리가 증폭되는 요즘 세상에선 선거 캠프 바깥의 유권자까지도 이 전쟁에 뛰어들곤 한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에선 더 원색적이고 색다른 표현을 쓴다. “선거는 똥 속에서 진주 꺼내는 거야. 손에 똥 안 묻히고 진주 꺼낼 수 있겠어?”(변종구 캠프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 박인제 감독은 3년 전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촬영 기간은 지난해 4~8월이었다. 그땐 천하의 용한 점쟁이라도 19대 대선이 2017년 5월 치러질.. 더보기
영화는 영화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할리우드판 '공각기동대'를 영원히 기억할 걸작으로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원작'에 비교하며 깎아내리는 풍조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만화, 애니메이션에서 벗어나 영화라는 새로운 필드로 들어온 한, 새로운 평가 기준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1989년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만화, 1995년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인기를 얻은 는 이후 나온 많은 SF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설정은 (1999) (2009) 등에서 만날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 은 기획 단계부터 여러모로 기대와 우려를 받았다. 복잡하고 기묘한 원작의 세계관을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어떻게 소화할지 관건이었다. 주인공 ‘메이저’ 역에 스타 스칼렛 요한슨이 캐스팅됐다는 소식도 원작의 유색인 역할을 백인 배.. 더보기
조금 달콤, 많이 씁쓸한 '토니 에드만' 웃긴 것 같으면서도 우울하고, 해피엔딩 같으면서도 슬픈 '토니 에드만'. 딸은 가족 모임에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일중독자다. 반려견이 죽은 뒤 적적함을 느낀 아버지는 예고 없이 딸이 일하는 루마니아로 찾아간다. 새로운 계약 체결에 사력을 다하는 중인 딸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부담스럽다. 약간의 다툼 끝에 아버지는 독일로 돌아가는 척하지만, 얼마 뒤 ‘토니 에드만’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자아로 분해 딸의 친구 모임이나 직장 주변을 배회한다. 우스꽝스러운 틀니와 검은 더벅머리 가발을 쓴 토니 에드만은 매번 황당한 상황을 연출하며 딸을 당황스럽게 한다. 의 줄거리를 읽으면 일에 쫓겨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고, 부녀 간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는 가슴 따뜻한 가족극이 연상된다. 아버지의 또 다른 자.. 더보기
공주는 없다. '미녀와 야수' 엠마 왓슨은 지금보단 연기를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미녀와 야수'는 흥행했지만. ‘미녀와 야수’의 모티브는 18세기 프랑스 동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흉측한 외모의 야수와 용기 있는 미녀가 차이와 편견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룬다는 줄거리에는 세월을 뛰어넘는 호소력이 있다. 오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는 1991년 선보인 동명 애니메이션의 실사판 리메이크다. ‘미녀와 야수’ 모티브는 수차례 영화, 드라마로 제작됐지만, 이 디즈니 애니메이션만큼 광범위한 인기를 끈 작품은 없었다. 영화 는 원작의 인기를 계승하는 동시에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해야 하는 임무를 떠맡았다. 줄거리는 익히 알려져 있다. 프랑스 어느 고성의 왕자(댄 스티븐스)는 오만한 언행 때문에 저주를 받아 야수의 외모를 갖는다. 진.. 더보기
캐릭터에 대한 존중과 애정, '로건' '로건'은 한동안은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로 기억될 듯. 캐릭터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해석이다. 그 캐릭터는 창조된 것이지만, 관객이 좋아하는 한 살아있는 생명체나 마찬가지기 때문. 늙고 지친 표정의 사내가 있다. 주름진 피부와 희끗한 머리의 남자는 한쪽 다리를 전다. 리무진 운전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남자는 어디서든 술을 찾는다. 그는 퇴행성 뇌질환에 걸린 채 휠채어에 앉아있는 90대 노인을 봉양중이다. 근사할 것도, 아름다울 것도 없는 노년의 남자들이다. 이들은 한때 슈퍼히어로였다. 다리 저는 사내는 ‘울버린’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로건(휴 잭맨), 90대 노인은 ‘프로페서X’였던 찰스 자비에(패트릭 스튜어트)다. 2000년 처음 나온 시리즈에서부터 이들 돌연변이들은 세상 사람들의.. 더보기
나와 너의 연결고리, '컨택트' 음...영화를 이렇게 만들어놓으면 차기작인 '블레이드 러너 2049'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진다는 단점이 생긴다. 타자와의 접촉은 위협인 동시에 축복이다. ‘나’의 경계가 무너지는 동시, 그 경계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2일 개봉한 SF영화 (원제 Arrival)는 세로로 선 거대한 조개 모양의 괴비행체(쉘)가 전세계 12개 지역에 동시에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쉘은 18시간마다 한 번씩 열리고, 각국의 과학자, 군인들은 이때 쉘 안으로 들어가 다리가 7개 달린 거대한 문어 모양의 외계인 헵타포드와 접촉한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가 외계인의 언어를 알아내기 위해 나선다. 정부는 외계인이 왜 지구에 왔는지, 지구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알아내려 한다. 하지만 외계인의 의도 파악이 늦어지면서, 인.. 더보기
검사 영화의 최종판? '더 킹'과 한재림 감독 인터뷰 '더 킹' 시사 끝나자마자 극장 아래 스타벅스에 가서 후다닥 쓴 리뷰. 사실 이 리뷰 이후에도 '더 킹'에 대해 언급한 기획 기사를 몇 번 썼다. 이 영화를 아주 좋아해서가 아니라, 이 영화가 (예전에 자주 쓰던 말로) '징후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태수(조인성)는 목포의 시시한 건달의 아들이다. 양아치로 고교 시절을 보내던 태수는 아버지가 검사 앞에 굽실대는 모습을 본 뒤, 검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태수는 ‘서울 법대 입학→시위에 휘말려 군입대→사법시험 합격→검사 임명→마담뚜 소개로 부유한 집안의 아나운서 임상희(김아중)와 결혼’의 코스를 밟지만, 여전히 지방에서 하루 30건씩 시시한 범죄를 처리한다. 지역 유지의 아들을 성폭행범으로 잡아넣으려던 태수는 대학 선배 검사 양동철(배성우)의 제안을 .. 더보기
질투는 나의 것? '여교사'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 영화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난 이 영화가 좋았다. 새해 벽두부터 를 본다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 할 만하다. 건조하고 단순한 영화 제목은 격렬하고 음험한 감정, 사건을 숨기고 있다. 효주(김하늘)는 사립고등학교의 계약직 과학 교사다. 불안정한 일자리, 무능하고 뻔뻔한 남자친구(이희준) 때문에 효주는 늘 피로하고 짜증이 난 상태다. 어느 날 이사장의 딸인 혜영(유인영)이 과학 정교사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온다. 효주는 학교 후배였다면서 살갑게 구는 혜영이 못마땅해 쌀쌀맞게 대한다. 효주는 임시 담임을 맡은 반의 무용 특기생 재하(이원근)와 혜영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를 빌미로 효주는 혜영을 위협한다. 효주 역시 재하에게 조금씩 끌린다. 영화 대부분.. 더보기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 '너의 이름은.' 얼마전 방한한 '너의 이름은.'의 프로듀서 가와무라 겐키에 따르면, 신카이 마코토는 지브리 같은 대형 스튜디오에 소속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작업해온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에 가깝다고 함.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에서도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기대는 꾸준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에도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작품성이나 대중성의 어느 한 측면에서 조금 부족한 부분을 보이며 후보군에서 탈락하곤 했다. 신카이 마코토(43)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과 이를 감싸는 서정성으로 인정받아왔다. 등은 각종 애니메이션 상을 휩쓸며 신카이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그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로 불릴 만큼 많은 관객을 불러모으진 못한 상태였다. 최근작 은 다르다. 일본에서 지난 8월 개봉해 지난주까.. 더보기
가장 전통적이고 가장 혁신적인, '라라 랜드' 처음 10분을 그냥 멍하니 쳐다봄. 때론 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혁신적이다. 위대한 전통을 가진 문화권은 그래서 강하다.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위대한 전통은 할리우드에 있다. 할리우드는 때로 지지부진하거나 비틀거리지만, 금세 기력을 회복해 새로운 영화들을 쏟아낸다. 는 195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21세기 관객들의 눈과 귀를 매혹시킨다. ‘황홀하다’ ‘마법 같다’는 표현은 이런 영화를 위해 아껴두어야 한다. 꿈을 품은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로스앤젤레스.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는 스튜디오 내의 카페에서 일하며 수시로 오디션을 보지만 매번 낙담한다.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시류에 맞지 않는 1950~1960년대풍 프리 재즈를 좋아하는 탓에 별 볼 일 없는.. 더보기
프로파간다가 두렵지 않은 '판도라' 인터뷰를 보니, 감독은 이 영화의 전형성에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아무튼 그 목적은 일정 부분 달성됐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무서웠으니까. 재난영화인 줄 알았는데 공포영화다. 어쩌면 ‘한국의 원자력발전 정책 비판’이라는 뚜렷한 목적의 프로파간다 영화다. 총제작비 150억원대가 투입된 한국 영화 가 29일 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경남 어느 지역을 연상시키는 40년 된 원전 소재지가 배경이다. 마을 사람들은 원전이 가져다 준 얼마간의 일거리에 반색하면서도, 노후한 원전의 안전성이 늘 불안하다. 원전 노동자들은 출근할 때마다 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힘겹게 뚫어야 하는 상황이다. 어느 날 이 지역에 예기치 못한 지진이 발생한다. 지진으로 인한 직접 피해는 크지 않았으나, 원전이 극도로 불안해진다... 더보기
공식 포스터가 티저 포스터보다 촌스러운 이유, 이관용 인터뷰 배우, 감독, 가끔 제작자 인터뷰를 하지만 그외 영화인 인터뷰를 할 일은 많지 않다. 포스터 디자이너를 만나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책도 그렇고 인터뷰도 흥미로웠다. 한 편의 영화를 가장 먼저 세상에 소개하는 이미지는 뭘까. 영화 속 영상의 일부도, 배우의 스틸 사진도 아닌 영화 포스터다. 많은 경우 포스터 디자이너는 영화가 전혀 촬영되지 않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포스터 디자인을 구상한다. 포스터는 영화와 대중을 최전선에서 연결하는 이미지다.미지 원본보기 이관용 스푸트닉 대표(44)는 (1999)에서 시작해 등 300여편의 포스터를 만든 한국의 대표적인 포스터 아트디렉터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포스터 51컷과 그 뒷얘기를 소개한 (리더스북)를 최근 펴냈다. 책과 인터뷰를 통해 영화 포스터에 대해.. 더보기
마법과 현실의 크로스오버, '신비한 동물사전' 워너가 향후 먹거리를 장만한듯. 에디 레드메인의 오타쿠스러운 해석이 흥미로웠다. 외로운 고아 소년이 선량하고 강인한 마법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해리 포터’ 시리즈는 소설, 영화로 나오며 지난 20년간 가장 사랑받은 대중문화 콘텐츠였다. 소년·소녀들은 해리 포터의 성장담에서 어떻게 좋은 친구를 사귀는지, 두려움과 악을 이기는 용기는 어떻게 얻는지, 꿈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은 성인들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것이기에, 많은 성인 독자와 관객도 당당하게 해리 포터의 팬을 자처했다. 해리 포터가 강력한 악당 볼드모트를 무찌르면서 장대한 소설과 영화는 모두 끝났다. 그러나 해리 포터 세계관의 매력은 빛바래지 않았다. 눈치 빠른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이를 놓칠 리 없다. 영화판 ‘해리 포터’.. 더보기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슈퍼소닉' 오아시스 2집 같은 음반을 내기 위해선 그저 무언가 타고나야 한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1996년 8월 10, 11일 영국 넵워스에서는 25만명의 관객이 운집한 공연이 열렸다. 이 공연 예매를 시도한 사람만 260만명이었다. 공연의 주인공은 1990년대 영국 최고의 밴드 오아시스였다. 오아시스가 정식 데뷔 싱글 ‘슈퍼소닉’을 발매한 건 1994년 4월이었다. 오아시스가 영국을 넘어 90년대를 대표하는 세계적 밴드로 자리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년여에 불과했던 셈이다. 24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맷 화이트크로스)은 오아시스가 전설적인 넵워스 공연을 치르기까지 겪었던 짧지만 격렬했던 사건들을 그렸다. 영화 시작부터 ‘f’로 시작되는 욕설이 섞인 대화들이 들려온다. 오아시스의 핵심인 기타리스.. 더보기
외로운 소년, 소녀의 진실과 거짓말, '가려진 시간' 이 영화의 흥행 실패와 함께 '강동원'이 장르가 됐다는 주장은 사라지게 됐다. 난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지만, 관객이 강동원의 존재에도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지점이 조금은 짐작된다. 그거 나중에. 엄마를 사고로 잃은 수린(신은수)은 새아빠(김희원)를 따라 화노도로 이사온다. 외로운 수린은 유체이탈, 귀신소환 같은 자신만의 놀이에 빠져 있다. 고아 소년 성민(이효제)은 수린에게 조금씩 다가서고, 외로웠던 소녀와 소년은 곧 친구가 된다. 어느 날 성민과 또래 친구들은 공사장 발파 현장을 구경하겠다고 나서고, 이를 발견한 수린도 소년들을 따라간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발견한 의문의 동굴 속에서 신비하게 빛나는 돌을 줍는다. 수린이 동굴에 떨어뜨린 머리핀을 주우러 갔다 돌아온 사이, 소년들은 모두 사라진다. .. 더보기
영감의 원천으로서의 웨스턴, '로스트 인 더스트' 미국의 창작자들에게 웨스턴은 영원한 영감의 원천인 것 같다. 한국 창작자들에게 조선 후기나 구한말이 그런 것처럼. 가본 적도 없는 낯선 곳에 순식간에 다녀온 듯한 경험은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다. 11월 3일 개봉하는 영화 를 보는 관객은 103분 동안 황량하고 건조한 미국 텍사스를 헤매고 온 듯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입 안에서 버석버석한 흙먼지가 씹히는 느낌이다. 빚더미에 앉은 동생 토비(크리스 파인)는 범죄 이력이 많은 형 태너(벤 포스터)와 함께 텍사스의 작은 은행들을 돌며 강도 행각을 벌인다. 어머니의 유산인 농장이 은행에 차압당할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형사 해밀턴(제프 브리지스)과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의 파트너 질베르토(길 버밍햄)는 형.. 더보기
슈퍼히어로물의 생명연장, '닥터 스트레인지' 마블 슈퍼히어로에 조금 싫증이 나는 느낌이었는데, '닥터 스트레인지'로 약간 생명 연장한 것 같다. 슈퍼히어로물은 어디까지 진화할까. 유전적 돌연변이(엑스맨),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갑부(아이언맨, 배트맨), 외계인(슈퍼맨), 신(토르)에 좀도둑(앤트맨)까지 나왔으니, 더 나올 것이 있나 싶다. 그렇게 수많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나오는 사이, 관객들이 조금씩 피로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24일 시사회를 통해 국내에 처음 공개된 는 시리즈로 유명한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이다. 결과적으로 는 조금씩 시드는 조짐이 있던 슈퍼히어로 장르의 활력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고, 향후 나올 또 다른 시리즈와의 연결고리도 확보했다. 신경외과 의사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탁월한 실력을 가졌지만 다소 오만한 .. 더보기
매혹적이면서 구역질나는, '네온 데몬'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는 '식인'을 소재로 한 영화가 꽤 있었다. '네온 데몬'도 그 중 하나다. 난 이 영화가 다소 공허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의견도 많은 모양이다. 은 혀로 핥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동시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운 영화다. 여기서 ‘구역질’이란 은유가 아니다. 영화 종반부엔 정말 일부 관객의 구토를 유발할 만한 장면이 나온다. 소도시 출신의 순진한 16세 소녀 제시(엘르 패닝)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혼자 살며 톱모델의 꿈을 꾼다. 갈고 닦아 아름다워진 미녀들 사이에서 타고난 미의 기운을 발산하는 제시는 ‘유리 속의 빛나는 다이아몬드’처럼 눈에 띈다. 톱모델들은 제시의 아름다움을 질투하기 시작한다. 영화 줄거리를 더 길게 쓰지 않는 이유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세한.. 더보기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해결해주는 천사, '죽여주는 여자'와 이재용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이재용 감독 인터뷰. 윤여정의 캐릭터를 영화 캐릭터에 잘 녹여냈다. 윤계상이 이런 영화에 꾸준히 나오는 것 같아 좋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랑과 죽음.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고 운명이다. 두 가지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사이거나 성인이다. 영화 (6일 개봉)엔 그런 사람이 나온다. 주로 탑골공원을 무대로 일하는 소영(윤여정)은 65세의 ‘박카스 아줌마’다. 노인들 사이엔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로 인기가 많다. 어느날 소영은 우연히 재회한 옛 ‘고객’ 재우(전무송)로부터 또 다른 고객들의 근황을 전해듣는다. 맞춤양복 아니면 입지 않는 깔끔한 신사였으나 이제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스스로 용변조차 볼 수 없는 노인, 쪽방촌에 살며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 노인.. 더보기
애국의 품격,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미국식 애국영화의 품격. “애국은 불한당들의 마지막 도피처”(새뮤얼 존슨)라 했다. 애국을 위해 자유, 평등과 같은 그 모든 여느 소중한 가치를 깔아뭉개는 사람을 경고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애국이 우리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터전을 아끼고 사랑해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열망이라면 누가 시비할 것인가. 할리우드에서 드문 보수주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86)의 신작 (이하 설리·28일 개봉)은 애국의 한 방향을 보여주는 영화다. 는 2009년 1월15일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실화에 기반을 둔다. 이날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US항공 소속 1549편 여객기는 이륙 직후 새떼와 충돌해 양쪽 엔진을 잃었다. 회항이 어렵다고 판단한 기장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는 허드슨강에 비행기를 비상착수시켰다. .. 더보기
무엇에 쓰는 지옥인가,'아수라' 개봉 첫 주 200만에 못미칠 듯. 손익분기점은 350만 가량. 조각 같은 외모의 정우성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극장문을 나설 수도 있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연출 김성수) 상영시간 내내 정우성의 얼굴은 갖가지 방식으로 상해 있다. 눈빛은 때로 미친 것처럼 희번덕거린다. 그가 내뱉은 대사의 절반엔 욕설이 섞여 있다. 정우성뿐 아니다.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등 주요 배역은 물론, 김원해, 김종수, 김해곤, 윤제문 등 조연까지도, 이 영화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없다. 법도 없고 의리도 없고 윤리도 없다. 선한 사람은 없다. 악당과 더 나쁜 악당이 있을 뿐이다. 아니, 애초에 이 영화 속 사람들에게 선악 개념을 적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의 등장인물들은 문화와 양식을 가진 .. 더보기
브리짓 존스의 이상한 직업관 40대 초반이면 필드에선 커리어의 절정 아닌가. 게다가 '최고의 PD'라면서. 그런데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연발해도 되는 걸까. 낙천적이고 사랑스러운 브리짓 존스가 12년만에 돌아왔다. (2001)와 (2004)으로 많은 여성관객을 사로잡은 캐릭터다. 여성 원작자(헬렌 필딩), 여성 감독(샤론 맥과이어), 여성 주연(르제 젤위거)이 뭉쳤다. 하지만 28일 개봉하는 를 ‘여성영화’라고 부르기엔 주저된다. 극중 브리짓 존스의 이상한 직업관 때문이다. 줄거리는 전편에서 느슨하게 이어진다. 43세의 브리짓 존스는 시청률 1위 뉴스쇼의 프로듀서로 성공한 직업인이다. 하지만 여전히 싱글인데다, 이젠 ‘여성으로서의 유통기한’도 걱정하고 있다. 록페스티벌에 간 존스는 우연히 연애정보회사 CEO인 잭 퀀트(패트릭.. 더보기
세월의 노예, 감정의 노예, '카페 소사이어티' 우디 앨런의 수작. 새로 내놓은 티비 시리즈는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언젠가부터 우디 앨런(81)은 일부러 그러기라도 하는 듯, 수작과 범작을 번갈아가며 매년 1편씩의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7월 개봉한 이 범작이라면, 올해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인 (14일 개봉)는 수작이다. 인생의 아이러니, 사랑의 씁쓸한 뒷맛, 호사스런 삶에 대한 동경과 경멸 등 앨런의 영화에 반복적으로 드러난 주제들이 능란하게 제시돼있다. 1930년대 미국. 뉴욕 출신 바비(제시 아이젠버그)는 성공을 꿈꾸며 할리우드로 건너가 유능한 에이전시 대표인 삼촌 필(스티브 카렐)을 찾아간다. 필은 비서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바비의 길 안내를 부탁한다. 바비는 첫눈에 보니에게 빠지지만, 보니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한다. 보니의 숨은 남자친.. 더보기
영화에 미친 남자들, '연인과 독재자' 영화에 미친 남자들이 있었다. 한 명은 영화감독이었고, 한 명은 정치인이었다. 둘의 만남은 악연에 가까웠지만, 영화라는 공통분모로 통하는 점도 없지 않았다. 22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연출 로버트 캐넌·로스 아담)는 영화감독 신상옥(1926~2006)과 배우 최은희(90) 부부의 납북과 탈출 과정을 그린 영화다. 1978년 1월 홍콩으로 투자자를 만나러 갔던 최은희는 정체 모를 사람들에게 납치됐다. 8일간의 선박 여행 끝에 도착한 북한 남포항에는 김정일이 마중나와 있었다. 6개월 뒤 최은희를 찾으러 홍콩으로 갔던 신상옥 역시 납치돼 북한으로 향했다. 제공된 주택에 머물며 김정일과 함께 공연을 볼 정도로 비교적 편한 생활을 했던 최은희와 달리, 신상옥은 수용소에 감금돼 사상교육을 받아야 했다. 서로의 생.. 더보기
디펙티브 디텍이브의 활약, '범죄의 여왕' 꽤 재미있게 봤지만 흥행은 잘 되지 않은 . 역시 상업영화에는 '스타발'이 중요하다. 추리소설 팬들이라면 ‘defective detective’란 말뜻을 쉽게 짐작할 것이다. 이는 ‘결함 있는 탐정’이란 의미인데, 범죄의 추리에는 능숙하지만 다른 면모는 어딘가 부족한 탐정을 말한다. 이런 탐정은 마약이나 알코올에 중독돼 있거나, 몸이나 마음에 장애가 있을 때도 있다. 인기 TV 시리즈 의 주인공인 전직 경찰 몽크는 심각한 결벽증이 있어 타인과의 악수조차 꺼린다. 이렇게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탐정들이 극악한 범죄자들의 교묘한 범행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고 독자들은 재미와 흥분을 느낀다. 25일 개봉하는 (감독 이요섭) 속 탐정 역시 전형적인 수사관은 아니다. 이 영화 속 탐정은 ‘오지랖 넓은 아줌마’ 양미경.. 더보기
시시한 악당, 시시한 영화, 최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해 지난 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시시하다고 느끼던 차에 가디언 기사를 읽고 엮어본 기획. 할리우드도 슬슬 대비책을 내놓아야 할 듯. 때로 할리우드 영화 속 악당들은 주인공보다 더 매력있는 존재였다. 이들 악당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을 넘어, 우리 사회와 삶에 도사린 악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했다. 의 다스 베이더, 의 한니발 렉터, 의 조커는 영화가 낳은 불세출의 인기 캐릭터로 남아 있다(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요즘 악당은 어떤가. 3일 개봉한 는 아예 슈퍼히어로 영화 속 악당들을 모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다. 할리퀸, 데드샷, 조커 등 배트맨의 숙적들이 한꺼번에 나온다. 배트맨은 카메오처럼 잠시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팬들의 기대와 달리 에 대한 반응은 좋지 않다. 한국에서 200만 가까.. 더보기
한국형 재난영화의 사회적 함의, '터널' 한참 늦게 올리는 리뷰. 지난 여름 한국영화 중 막바지로 개봉해 좋은 흥행 성적을 냈다. '한국형 재난영화'의 사회적 함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를 남겼다. 할리우드의 재난영화 주인공들은 재난 그 자체와 싸운다. 한국의 재난영화 주인공들은 재난뿐 아니라 재난을 둘러싼 사회와도 싸운다. 10일 개봉하는 영화 은 , , 로 이어지는 2016년 여름 성수기 한국영화 신작 릴레이의 마지막 주자다. (2013)로 ‘장르 비틀기’에 일가견을 보인 김성훈 감독의 작품으로, 쇼박스가 투자·배급했다. 자동차 딜러 정수(하정우)는 딸의 생일 케이크를 사들고 차로 귀가하던 중이다. 기름을 3만원어치만 넣으려다가 가는귀먹은 노인 주유원의 실수로 가득 채운 걸 제외하고는 별다른 일이 없어 보인다. 마침 뜸을 들이던 판매 계약.. 더보기
친일파에 대한 생각, 뒤늦게 '암살'을 보고 몇 년간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영화 담당을 하니 놓친 영화를 찾아봐야할 일이 생긴다. 이번주 시사를 앞두고 어제 본 도 그런 경우였다. 일단 안옥윤/미츠코 쌍둥이 설정과 그에 따라 안옥윤이 미츠코의 집에 자연스럽게 잠입한다는 내용, 하와이 피스톨이 가와구치 대위와 우연히 엮여 그의 결혼식장에 경호원으로 들어간다는 설정 등은 지나치게 극적이고 작위적으로 보였다. 그런 장치 없이 스트레이트하게 달려도 충분히 재미있을 영화였다. 흥미로운 건 일본 밀정 염석진 캐릭터다. 제작진이 이 캐릭터에 입체성을 주기 위해 당대 친일파의 논리를 세심히 살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의 밑도 끝도 없는 악당 친일파 한택수(윤제문)와도 대비되는 부분이다. 젊은 시절의 염석진은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기도하다가 붙잡히는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