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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일하러와가 쓸데없는 소리 합니까, '더 포스트' 오늘 밤에도 어느 케이블 영화채널에서 방영될지 모르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는 명대사들이 많은데, 최근 발견한 건 이 대목이다. 세관 공무원 최익현(최민식)은 빼돌린 압수품인 마약을 처분하기 위해 건너건너 아는 조폭 최형배(하정우)와 접촉한다. 거래를 위해 만나 몇 잔 술을 걸친 최익현은 최형배의 본관, 파, 돌림자 등을 묻더니 대뜸 자기가 최형배의 고조 할아버지뻘이라며, 할아버지를 봤으면 절을 하라고 큰소리를 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최익현은 최형배의 부하 조폭에게 끌려가 몇 대를 쳐맞는다(이 장면에선 '맞는다'기보단 '쳐맞는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최형배는 부하를 제지시키고는 말한다. "어이 아저씨. 와 일하러와가 쓸데없는 소리 합니까." 하지만 바로 다음 장면에서 최익현은 .. 더보기
서사가 아니라 감각,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포일러 있음.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서사가 아니라 감각의 영화다.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너무 단순해서 쉽게 요약된다. 말 못하는 청소부 엘라이자가 양서류 괴물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끝.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이들의 사랑을 돕거나 방해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동료 청소부 젤다와 이웃집 게이 화가 자일스가 엘라이자를 돕고, 실험실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는 엘라이자를 방해한다. 과학자 호프스테틀러 박사는 그 사이에 끼어있다. 여기에 스트릭랜드가 엘라이자에게 추근대는, 약간의 변주를 넣었다. 그래서 엘라이자-괴물-스트릭랜드의 삼각 관계가 조성된다. 하지만 이 관계는 기능적으로 보인다. 스트릭랜드가 엘라이자에게 끌리는 과정이 매끈하지 않을 뿐더러(스트릭랜드가 아내와 섹스하며 아내.. 더보기
전통과 초현대가 공존하는 그곳, '블랙 팬서' 지금 블랙 컬쳐는 쿨하다. ('흑인 문화'보다는 '블랙 컬쳐'가 쿨해 보여서 그렇게 표현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미국 사회의 감수성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블랙 컬쳐는 쿨하고 쉬크하고 모던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블랙 컬쳐는 미국 대중문화의 한 줄기임에는 분명했으나, '주류'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한국에선 물론이다. 유색인종인 한국인들이 다른 유색인종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비밀도 아니니까. 분위기가 바뀐 건 힙합의 인기와 맞물린 듯하다. 지금 힙합은 대중음악의 확고부동한 중심 장르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쇼 미 더 머니'다. 그 서브 컨텐츠인 '언프리티 랩스타'나 '고등래퍼'까지 인기 있으니, 반면 록을 중심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 '탑밴드'는 어땠나.. 더보기
'스타트렉'과 소화가능한 윤리적 딜레마 '스타워즈'는 신화적이고 '스타트렉'은 철학적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금 유보적인 표현을 쓴 이유는, 이 두 시리즈에 대한 팬덤이 너무나 강력해 뭐라고 함부로 말을 보태기가 무섭기 때문이다. 조셉 캠벨이 잘 지적했듯 '스타워즈'는 신화에서 볼법한 오랜 영웅 서사를 담았다. 평범해 보이는 주인공이 자신의 고귀한 신분과 소명을 깨닫고 머나먼 여정에 나서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큰 고난을 당했다가, 결국 극복하고 목적을 성취한 뒤 고향으로 돌아온다. 여기에 루크 스카이워커와 다스베이더 부자의 오이디푸스 궤적도 엮여있다. 요즘 나오고 있는 시퀄 시리즈에선 고아 소녀 레이에게 루크의 궤적을 따르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조금의 뒤틀림을 줬는데, 이 때문에 팬덤에서는 거센 반발이 있다고도 한다. 이렇게 고대로부터.. 더보기
메트로폴리스에서 청년이 방 한 칸을 가진다는 것, '프란시스 하' 뒤늦게 노아 바움벡의 '프란시스 하'(2012)를 보다. 감독 바움벡과 주연 그레타 거윅은 이 영화 이후 좋은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바움벡의 최근작 '마이로위츠 스토리'는 지난해 칸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거윅의 연출 데뷔작 '레이디 버드'는 지난해 각종 시상식에서 가장 각광받은 영화이기도 하다. 바움벡하고 거윅은 지금 사귀고 있대나 어쨌대나. '프란시스 하'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흑백영화다. 20대 후반의 프란시스는 현대무용가, 그의 절친인 소피는 출판 편집자다. 하지만 아직 입지가 확고하지는 않다. 프란시스는 일종의 연습단원으로 겨우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는 상태다. 생활비 비싼 뉴욕에서의 생활은 당연히도 쉽지 않다. '프란시스 하'는 그래서 현대 대도시 청년 1인 가구가 살아가는 모습을 다룬 영.. 더보기
어처구니 없는 극우의 스케일,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열린책들에서 야심차게 콜렉션을 내놓은, 하지만 판매실적은 신통치 않다는 풍문을 전해들은 로베르토 볼라뇨의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을유문화사)을 읽다. 볼라뇨는 "스탈린과 딜런 토머스가 죽은 해"인 1953년 칠레에서 태어났고 2003년 대작 '2666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은 1996년 발간됐는데, 비평계에서는 찬사를, 독자로부터는 외면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은 제목만 알고 있었는데, 일 때문에 접촉한 모 소설가의 추천으로 손에 들게 되었다. 그 소설가는 연재를 타진하기 위해 샘플 원고를 보내왔고 나는 그 원고가 좋았으나, 여러가지 사정상 게재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매체에서라도 소설가의 후속 작업을 읽었으면 좋겠다.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은 북미, 남미에.. 더보기
데이비드 밴의 악스트 인터뷰 중 발췌. 13살때 아버지가 자살한 작가의 이야기. 1966년 미국 알래스카주 아다크 섬에서 태어난 작가 데이비드 밴의 인터뷰 중 발췌. 격월간 문예지 '악스트' 15호에 실림. 작가가 13살 때 아버지가 자살. 국내에는 '자살의 전설' '고트 마운틴' '아쿠아리움' 등이 출간. "대부분의 작가는 (적어도 초기작에서는) 개인사와 가족 이야기를 끌어다 쓴다. 그 소재에는 무게와 진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 나는 학생들에게 "가족을 제단에 올려놓고 도끼를 휘두르라"라고 말한다. 나는 그리스 비극을 쓰는데, 그리스인들은 가족이 우리를 만들고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2500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현대의 치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해서 망가졌는지 이해하지 않고서는 다시 온전해질 수 없다." "역경은 품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일부러 .. 더보기
오래 살자, 살아서 말하자, '눈먼 암살자'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2000년작 '눈먼 암살자'(민음사)를 읽다. 작가가 61세에 집필한 작품이다. 한국 번역본으로 두 권, 900쪽에 육박하는 묵직한 분량이다. (덕분에 추석 연휴 전에 시작해 지금까지 읽었다) 분량만으로만 봐도 작가 후반부의 역량이 집대성된 작품이라 여겨진다. 액자 안 액자 소설 구조다. 82세의 아이리스 체이스 그리픈이 말한다. 아이리스는 유복한 단추공장 사장의 손녀로 태어났다. 하지만 참전군인이었던 아버지대에 이르러 사업은 조금씩 쇠락기에 접어든다. 아이리스는 결국 10대 후반의 나이에 신흥 사업가인 리처드와 일종의 정략 결혼을 했다. 부와 함께 명예를 중시하던 아버지와 달리, 리처드와 그의 여동생 위니프리드는 속물적인 졸부였다. (애트우드는 이 남매의 한심한 행각을 신.. 더보기
에이리언의 기원, '에이리언: 커버넌트' 재미 없지는 않지만, 기대만큼 좋지도 않은 '에이리언: 커버넌트'. 여섯 번째 ‘에이리언’ 시리즈인 는 갓 깨어난 인공지능(AI) 데이비드(마이클 패스벤더)와 그의 창조자 피터 웨이랜드(가이 피어스)의 대화 장면으로 시작한다. 태어나자마자 피아노로 바그너의 곡을 연주하고, 차도 만들 줄 아는 데이비드는 자신의 창조주에게 문득 묻는다. “누가 당신을 창조했습니까?” 42세에 전설적인 SF호러영화 (1979)을 만든 감독 리들리 스콧(80)은 30여년이 흐른 뒤 의 프리퀄인 (2012)로 돌아왔다. 는 이후의 상황을 그린다. 우주 식민지 개척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머나먼 목적지로 향하던 커버넌트호는 비행 도중 사고를 당한다. 예상보다 일찍 냉동수면에서 깨어난 승무원들은 목적지 대신 인간이 살기에 적합해 보이.. 더보기
예술의 상상력과 정치의 각론 사이의 북한 결말 보고 당황한 '길소뜸', 영화화 생각하면서 읽은 '우리의 소원은 전쟁'. 실제로 '우리의 소원은 전쟁'은 영화제작중이라고. 통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초등학교 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정작 소원 빌 일이 있을 때 ‘통일’이라고 말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애니메이션 을 본 기억도 어렴풋이 나는데, 북한의 공산주의자가 사실 알고 봤더니 돼지나 늑대였다는 내용은 어린아이가 보기에도 유치했다. 텔레비전에 북한 관련 소식과 북한 방송 내용을 전해주는 란 제목의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도 같다. 제작진께는 죄송하지만, 요즘도 이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야 알았다. ‘일요일 오전 6시10분’이라는, 평범한 의지의 인간이라면 시청을 장.. 더보기
선거는 똥 속에서 진주 꺼내기, '특별시민' 아이디어라든가, 개봉시점이라든가, 괜찮았으나, 결과적으로 흥행은 미적지근.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표현하지만, 막상 선거를 치르는 후보와 참모들은 ‘꽃길’을 걷지 못한다. 선거전(選擧戰)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오늘날의 선거는 ‘전쟁’에 가깝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각 개인의 목소리가 증폭되는 요즘 세상에선 선거 캠프 바깥의 유권자까지도 이 전쟁에 뛰어들곤 한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에선 더 원색적이고 색다른 표현을 쓴다. “선거는 똥 속에서 진주 꺼내는 거야. 손에 똥 안 묻히고 진주 꺼낼 수 있겠어?”(변종구 캠프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 박인제 감독은 3년 전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촬영 기간은 지난해 4~8월이었다. 그땐 천하의 용한 점쟁이라도 19대 대선이 2017년 5월 치러질.. 더보기
민주주의를 위한 마음의 습관 아이가 'DOC와 춤을' 노래하는 것 듣고 쓴 칼럼. 그나저나 김대중 후보의 'DJ와 춤을' 뮤직비디오 찾아보다가 김종필, 박태준도 나와서 깜놀. 김대중이 집권하기 위해선 그 정도로 상상치 못할 '대연정'이 필요했던 것. 언젠가부터 초등학생인 아이가 ‘DOC와 춤을’이란 노래를 흥얼거린다. 아이가 태어나기 십수년 전의 노래다. 어쩐 일인가 살펴보니 학교에서 이 노래에 맞춰 체조를 한 모양이다. 1990년대 그룹인 DJ DOC의 경쾌하고 흥겨운 멜로디가 요즘 초등학생에게도 호소력을 발휘한 셈이다. 그런데 무심코 노래를 듣다 가사를 깨닫고 멍해졌다. 몇 구절 인용해보자. “옆집 아저씨와 밥을 먹었지. 그 아저씨 내 젓가락질 보고 뭐라 그래. 하지만 난 이게 좋아 편해 밥만 잘 먹지. 나는 나예요 상관 말아 .. 더보기
영화는 영화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할리우드판 '공각기동대'를 영원히 기억할 걸작으로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원작'에 비교하며 깎아내리는 풍조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만화, 애니메이션에서 벗어나 영화라는 새로운 필드로 들어온 한, 새로운 평가 기준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1989년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만화, 1995년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인기를 얻은 는 이후 나온 많은 SF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설정은 (1999) (2009) 등에서 만날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 은 기획 단계부터 여러모로 기대와 우려를 받았다. 복잡하고 기묘한 원작의 세계관을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어떻게 소화할지 관건이었다. 주인공 ‘메이저’ 역에 스타 스칼렛 요한슨이 캐스팅됐다는 소식도 원작의 유색인 역할을 백인 배.. 더보기
조금 달콤, 많이 씁쓸한 '토니 에드만' 웃긴 것 같으면서도 우울하고, 해피엔딩 같으면서도 슬픈 '토니 에드만'. 딸은 가족 모임에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일중독자다. 반려견이 죽은 뒤 적적함을 느낀 아버지는 예고 없이 딸이 일하는 루마니아로 찾아간다. 새로운 계약 체결에 사력을 다하는 중인 딸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부담스럽다. 약간의 다툼 끝에 아버지는 독일로 돌아가는 척하지만, 얼마 뒤 ‘토니 에드만’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자아로 분해 딸의 친구 모임이나 직장 주변을 배회한다. 우스꽝스러운 틀니와 검은 더벅머리 가발을 쓴 토니 에드만은 매번 황당한 상황을 연출하며 딸을 당황스럽게 한다. 의 줄거리를 읽으면 일에 쫓겨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고, 부녀 간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는 가슴 따뜻한 가족극이 연상된다. 아버지의 또 다른 자.. 더보기
예뻐야 해 뭐든지 예쁜게 좋아 좀 기괴한 해프닝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라라랜드'와 '문라이트'가 상을 받은 올해 아카데미가 '스포트라이트'와 '레버넌트'가 상 받은 지난해보단 재밌었던 것 같다. 워런 비티가 더듬거리며 봉투를 만질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티는 또 다른 쪽지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봉투를 한 번 더 살펴봤는데, 그때 이미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그 순간 올해 80대가 된 비티의 총기를 염려했을 것이다. 지난주 아카데미 시상식은 89회 역사상 가장 황당한 촌극과 함께 막을 내렸다. 최고 영예인 작품상 시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에게 직전 시상된 여우주연상(의 에마 스톤) 봉투가 잘못 전달된 것이다. 작품상 수상작으로 호명된 제작진이.. 더보기
공주는 없다. '미녀와 야수' 엠마 왓슨은 지금보단 연기를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미녀와 야수'는 흥행했지만. ‘미녀와 야수’의 모티브는 18세기 프랑스 동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흉측한 외모의 야수와 용기 있는 미녀가 차이와 편견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룬다는 줄거리에는 세월을 뛰어넘는 호소력이 있다. 오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는 1991년 선보인 동명 애니메이션의 실사판 리메이크다. ‘미녀와 야수’ 모티브는 수차례 영화, 드라마로 제작됐지만, 이 디즈니 애니메이션만큼 광범위한 인기를 끈 작품은 없었다. 영화 는 원작의 인기를 계승하는 동시에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해야 하는 임무를 떠맡았다. 줄거리는 익히 알려져 있다. 프랑스 어느 고성의 왕자(댄 스티븐스)는 오만한 언행 때문에 저주를 받아 야수의 외모를 갖는다. 진.. 더보기
캐릭터에 대한 존중과 애정, '로건' '로건'은 한동안은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로 기억될 듯. 캐릭터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해석이다. 그 캐릭터는 창조된 것이지만, 관객이 좋아하는 한 살아있는 생명체나 마찬가지기 때문. 늙고 지친 표정의 사내가 있다. 주름진 피부와 희끗한 머리의 남자는 한쪽 다리를 전다. 리무진 운전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남자는 어디서든 술을 찾는다. 그는 퇴행성 뇌질환에 걸린 채 휠채어에 앉아있는 90대 노인을 봉양중이다. 근사할 것도, 아름다울 것도 없는 노년의 남자들이다. 이들은 한때 슈퍼히어로였다. 다리 저는 사내는 ‘울버린’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로건(휴 잭맨), 90대 노인은 ‘프로페서X’였던 찰스 자비에(패트릭 스튜어트)다. 2000년 처음 나온 시리즈에서부터 이들 돌연변이들은 세상 사람들의.. 더보기
성룡과 블랙리스트 한때 영화 담당이었던 본사 베이징 특파원의 칼럼에 영감 받아 씀. 10년을 넘게 썼지만 ‘청룽’(成龍)이란 표기는 여전히 낯설다. 우리에게 청룽은 언제나 ‘성룡’이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조금 앞 세대인 유하 감독의 속 청춘들은 비장한 리샤오룽의 시대에서 코믹한 청룽의 시대로 옮겨가면서 성장했다. 아마 그 시대 청룽의 대표작은 이었을 것이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무술 동작은 영화 속 적과 관객을 모두 무장해제시켰다. 내게 청룽의 대표작은 다. 이 영화에서 청룽은 마약왕을 잡으려는 홍콩 경찰이었다. 가끔 실수를 하고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무리한 수사도 벌이지만, 그래도 청룽은 좋은 경찰이었다. 악을 응징하겠다는 정의감, 약자를 돕겠다는 의협심, 맡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승진이나 .. 더보기
나와 너의 연결고리, '컨택트' 음...영화를 이렇게 만들어놓으면 차기작인 '블레이드 러너 2049'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진다는 단점이 생긴다. 타자와의 접촉은 위협인 동시에 축복이다. ‘나’의 경계가 무너지는 동시, 그 경계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2일 개봉한 SF영화 (원제 Arrival)는 세로로 선 거대한 조개 모양의 괴비행체(쉘)가 전세계 12개 지역에 동시에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쉘은 18시간마다 한 번씩 열리고, 각국의 과학자, 군인들은 이때 쉘 안으로 들어가 다리가 7개 달린 거대한 문어 모양의 외계인 헵타포드와 접촉한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가 외계인의 언어를 알아내기 위해 나선다. 정부는 외계인이 왜 지구에 왔는지, 지구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알아내려 한다. 하지만 외계인의 의도 파악이 늦어지면서, 인.. 더보기
검사 영화의 최종판? '더 킹'과 한재림 감독 인터뷰 '더 킹' 시사 끝나자마자 극장 아래 스타벅스에 가서 후다닥 쓴 리뷰. 사실 이 리뷰 이후에도 '더 킹'에 대해 언급한 기획 기사를 몇 번 썼다. 이 영화를 아주 좋아해서가 아니라, 이 영화가 (예전에 자주 쓰던 말로) '징후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태수(조인성)는 목포의 시시한 건달의 아들이다. 양아치로 고교 시절을 보내던 태수는 아버지가 검사 앞에 굽실대는 모습을 본 뒤, 검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태수는 ‘서울 법대 입학→시위에 휘말려 군입대→사법시험 합격→검사 임명→마담뚜 소개로 부유한 집안의 아나운서 임상희(김아중)와 결혼’의 코스를 밟지만, 여전히 지방에서 하루 30건씩 시시한 범죄를 처리한다. 지역 유지의 아들을 성폭행범으로 잡아넣으려던 태수는 대학 선배 검사 양동철(배성우)의 제안을 .. 더보기
사이다는 없다 '우회도로'란 문패를 걸고 쓴 첫 칼럼. '우회도로'란 문화의 속성을 은유한다. 첫회부터 제목과 비슷한 소재의 글을 썼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인정한 뒤 국회에서 탄핵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6일이었다. 분노한 1000만 촛불이 광화문광장과 전국을 가득 채웠다. 최근 ‘박근혜 결사 옹위’를 주장하는 ‘맞불 시위’가 등장하긴 했지만, 거센 분노의 흐름을 되돌리긴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 현대사에서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고 부패한 지도자를 거의 축출한 작금의 상황은 시쳇말로 ‘사이다’이다. 이제 시민들은 저마다 새로운 시대를 꿈꾸고 있다. 계기가 마련됐으니, 그런 날이 오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하다. 정말 그럴까. 12일 개봉하는 은 이명박 정권 당시 YTN, MBC .. 더보기
질투는 나의 것? '여교사'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 영화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난 이 영화가 좋았다. 새해 벽두부터 를 본다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 할 만하다. 건조하고 단순한 영화 제목은 격렬하고 음험한 감정, 사건을 숨기고 있다. 효주(김하늘)는 사립고등학교의 계약직 과학 교사다. 불안정한 일자리, 무능하고 뻔뻔한 남자친구(이희준) 때문에 효주는 늘 피로하고 짜증이 난 상태다. 어느 날 이사장의 딸인 혜영(유인영)이 과학 정교사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온다. 효주는 학교 후배였다면서 살갑게 구는 혜영이 못마땅해 쌀쌀맞게 대한다. 효주는 임시 담임을 맡은 반의 무용 특기생 재하(이원근)와 혜영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를 빌미로 효주는 혜영을 위협한다. 효주 역시 재하에게 조금씩 끌린다. 영화 대부분.. 더보기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 '너의 이름은.' 얼마전 방한한 '너의 이름은.'의 프로듀서 가와무라 겐키에 따르면, 신카이 마코토는 지브리 같은 대형 스튜디오에 소속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작업해온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에 가깝다고 함.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에서도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기대는 꾸준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에도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작품성이나 대중성의 어느 한 측면에서 조금 부족한 부분을 보이며 후보군에서 탈락하곤 했다. 신카이 마코토(43)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과 이를 감싸는 서정성으로 인정받아왔다. 등은 각종 애니메이션 상을 휩쓸며 신카이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그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로 불릴 만큼 많은 관객을 불러모으진 못한 상태였다. 최근작 은 다르다. 일본에서 지난 8월 개봉해 지난주까.. 더보기
기자와 작가, '헤밍웨이의 말' 어니스트 헤밍뭬이 말년의 인터뷰들을 묶은 '헤밍웨이의 말'(마음산책)을 읽다. 소문난 플레이보이이자 낚시광, 사냥꾼, 투우애호가, 기자, 작가였던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쿠바의 거처에서 글을 썼는데, 좀처럼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헤밍웨이는 1954년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 중의 비행기 사고를 당했다.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그의 건강은 이후 쇠퇴일로였다. '헤밍웨이의 말'에 실린 인터뷰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헤밍웨이가 나이보다 늙어보인다는 점이었다. 비행기 사고로 인한 부상 때문에 그럴 것이고, 에너지를 젊은 시절에 모두 쏟아부어버렸기 때문에도 그럴 것이다. 7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2시간 공연을 거뜬히 소화하는 믹 재거 같은 괴물이 있긴 하지만, 사람이 한평생 쓸 수 있는 정력에는 한계가 .. 더보기
삶은 고된가, 김훈의 '공터에서' 김훈의 신작 '공터에서'(해냄)를 읽다. 작가는 "이 작은 소설은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의 인상과 파편들을 엮은 글"이라며 "별것 아니라고 스스로 달래면서 모두 버리고 싶었지만 마침내 버려지지 않아서 연필을 뒤고 쓸 수밖에 없었다"고 후기에 썼다. 소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차세의 삶은 실제 작가의 삶과 많은 부분 겹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마동수 일가 4인의 삶이 각 장마다 시점을 달리하며 제시돼있다. 일제강점기에 유년 시절을 보낸 마동수는 중국, 만주 등지를 떠돌다가 해방후 귀국했다. 피난지에서 만난 여인과 결혼해 마장세, 마차세 2남을 두었으나, 집에 발붙이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았다. 간혹 집에 들어올 때 고등어나 쌀을 가져와 며칠 쉰 뒤 다시 사라지는 식이었다. 마동수의 아.. 더보기
요점 정리의 대가,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돌베개)를 읽다. 2011년 나왔고, 2017년 1월 개정신판이 나왔다. 그 사이 유시민은 직업 정치인에서 전업 작가가 됐고, '이명박 정부 3년차'에서 '박근혜 탄핵 이후'가 됐다. 바뀐 시대 상황이 일부 포함됐지만, 유시민은 "초판본을 읽은 독자라면 개정신판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개정신판 서문'에 적었다. 전업작가로서 이런 태도는 훌륭하다. 표지와 제목만 바꾼 개정판을 슬쩍 내면서 신간처럼 시치미 떼는 출판사가 많아서 더욱 그렇다. 홉스, 스미스, 마르크스 등의 국가론을 정리하는 초반부를 읽으면 "이 사람 공부 정말 잘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각 분야의 전공자가 보면 오류를 발견하거나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한 방식으로 본다고 느낄지 .. 더보기
채식이 아니라 소멸, 한강의 '채식주의자' 한국을 넘어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평론가들이 한 마디씩 걸친 한강의 에 대해 뭔가를 말하기가 쑥스럽지만, 그래도 무언가 적어본다. 3편의 연작 중편 중 '채식주의자' '나무 불꽃'은 좋았고, '몽고반점'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작중 성행위 퍼포먼스를 권유받은 뒤 당혹해하는 아티스트의 반응처럼 "내가,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온건한 사람"인 이유인지도 모르고. 첫번째 중편 '채식주의자'의 화자는 이 소설속의 등장인물들 중 가장 평범한, 그래서 고루한 사람이다. 이런 지루한 남편의 목소리로 '영혜'라는 문제적 인물을 소개하기 시작한 것은 독자를 소설 속 세계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데 전략적인 도움이 된다. 영혜는 끔찍한 고깃덩어리와 피와 이것들이 연상시키는 살육의 이미지로 가득찬 꿈을 꾼 뒤 육식을 거부한.. 더보기
공포와 센티멘털, 스티븐 킹의 '리바이벌' 스티븐 킹(70)은 죽지 않았다.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좀비처럼 그는 꾸준히 작품을 써낸다. 간혹 평작이 나오기도 하지만 때로 수작도 섞여 있다. 2014년작으로 최근 국내에 번역된 '리바이벌'은 수작이다. 젊은 시절부터 스티븐 킹이 줄곧 보여줬던 공포와 어느덧 노년에 이른 작가의 여유가 어울렸다. 때로 으스스하다가, 때로 촉촉하게 센티멘털하다. 물론 결론은 센티멘털이 아니라 으스스. 노년에 이른 록 기타리스트 제이미 모턴이 작중 화자다. 그는 여섯 살의 자신 앞에 나타난 젊은 목사 찰스 제이컵스와 가진 일생에 걸친 인연을 회상한다. 시골 마을에 부임한 목사 제이컵스는 활기차고 유능하고 친근한 태도로 모턴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산다. 그러나 어느날 그의 아름다운 젊은 아내와 귀여운 아이가 끔.. 더보기
켄 로치의 건강하고 재미있는 사람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리뷰는 칸영화제 당시 써버려서 한국 개봉에 맞춰 무얼 쓸까 생각하다가 이런 아이템을 내봤다. 주제는 무거운데, 인물들은 생동감있고 유머러스하다. 사람 보는 재미만으로도 볼만한 영화들이 있다. 50년 가까운 경력 동안 줄기차게 비슷한 영화들을 만들어온 켄 로치(80)의 인물들이 그렇다. 그의 영화 속 노동자, 실직자, 소외된 자들은 웃고 울고 싸우는, 그래서 살아 있는 캐릭터다. 경제학의 통계나 사회학의 이론으로 포착되지 않는 생생한 인간들이 켄 로치의 영화에 살아 있다. 켄 로치가 연출해 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가 8일 개봉한다.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데서 보이듯, 당당하게 빛나는 캐릭터의 품성이 감동을 준다. 다니엘 블레이크를 포함해 켄 로치가 그러낸 .. 더보기
가장 전통적이고 가장 혁신적인, '라라 랜드' 처음 10분을 그냥 멍하니 쳐다봄. 때론 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혁신적이다. 위대한 전통을 가진 문화권은 그래서 강하다.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위대한 전통은 할리우드에 있다. 할리우드는 때로 지지부진하거나 비틀거리지만, 금세 기력을 회복해 새로운 영화들을 쏟아낸다. 는 195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21세기 관객들의 눈과 귀를 매혹시킨다. ‘황홀하다’ ‘마법 같다’는 표현은 이런 영화를 위해 아껴두어야 한다. 꿈을 품은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로스앤젤레스.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는 스튜디오 내의 카페에서 일하며 수시로 오디션을 보지만 매번 낙담한다.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시류에 맞지 않는 1950~1960년대풍 프리 재즈를 좋아하는 탓에 별 볼 일 없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