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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삶에 익숙해지기, '부서지기 쉬운 삶'


미국의 철학자 토드 메이의 '부서지기 쉬운 삶'(돌베개)을 읽다. 원제는 'A Fragile Life: Accepting Our Vulnerability'다. 쉽게 말해 '철학 에세이'이라 할 수 있지만, 흔히 한국 출판계에서 '철학 에세이'라는 명명이 주는 어감보다는 무거운 책이다. 

저자는 철학이 이론의 전개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메시지여야 한다고 말한다. 강단의 학자들이 까다로운 개념어로 세심하게 다루는 '철학'도 있겠지만,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철학'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고대의 철학자들은 모두 삶의 메시지를 전했다. 메이는 해탈하지 못한 모든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 상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색한다. 메이는 '희박하나마 고통을 끝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철학적 관점 네 가지에 주목한다. 불교, 도교, 스토아주의, 에피쿠로스주의다. 

불교는 만물이 변화한다고 본다. 여기 있는 노트북 컴퓨터와 테이블도 언젠가는 썩거나 부서져 다른 무언가로 바뀐다. 나는 파도 같은 존재다. 파도가 솟구칠 때는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결국은 바다의 움직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삶의 괴로움은 우주가 하나의 변화의 과정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실제로는 그저 이 과정의 한순간에 불과한 것들에 집착함으로써 생겨난다." 세상에 대한 집착을 끊기 위한 방법이 명상이다. 명상은 외부에서 내부로의 방향 전환이 아니라, 외부에 대한 집착을 줄여나가는 훈련이다. 물론 불교도도 타자를 연민한다. 다만 그러한 연민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동정이 아니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평정에 기반한다. 

도교는 천지만물의 근원인 '도'를 말한다. 물론 '도덕경'의 첫 구절처럼 "말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 도는 인간의 언어가 쉽게 포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인간은 '무위'(inaction 혹은 nonaction으로 번역된다고)를 통해서만이 우주를 과정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장자는 말한다.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걱정과 탄식, 변덕과 집착, 경박함과 방종, 아첨과 아양은 음악 소리가 텅 빈 곳에서 나오고 버섯이 습기에서 생겨나듯 밤낮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 모른다. 두어라! 두어라!"

스토아주의자들의 시각은 불교와 조금 비슷하다. 이들은 "삶은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기에 우리는 그것에 최대한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익살을 섞지 말고 품위 있게 삶에 맞서라. 억눌리지 말고 희망을 높게 잡지도 말라. 승리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극복하는 데 있다." 세상 온갖 악과 부조리와 고통은 예고 없이 우리를 습격하지만, 우리에겐 이에 맞설 별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와 세계의 관계, 즉 실존적으로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통제할 수 있다." 고대 로마의 황제 아우렐리우스조차 체념적으로 '명상록'에 적었다. "매일 아침 너 자신에게 말하라. 오늘 나는 참견하는 사람을, 배은망덕한 사람을, 오만한 사람을, 신의 없는 사람을, 악의 있는 사람을,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며, 죽음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훈련을 거듭했다. 이 역시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익숙해지고 체념하는 태도와 관련 있다. 

에피쿠로스주의자는 흔히 '향락주의자'라고 번역되지만, 맛있는 음식, 좋은 자동차,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에피쿠로스는 다음처럼 적었다. "욕망의 일부는 자연적이고, 일부는 근거가 없으며, 자연적 욕망에는 필연적인 것과 단순히 자연적인 것이 있다. 그리고 필연적인 욕망에는 행복을 위해 필연적인 것이 있고, 육체를 고통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것, 삶 자체를 위한 것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향락주의자'라는 명칭은 이 모든 욕망을 뭉뚱그려 합친다. 하지만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비싼 차를 사고 싶다는 '근거 없는 욕망'을 배격하고, 자연적이지만 필연적이지는 않은 욕망, 예를 들어 '성욕' 같은 것도 자제하라고 권한다. (결국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전혀 향락적이지 않다.)  모든 향락의 끝인 죽음에 대해서는 어떨까. 심플하고 논리적인 답이 준비돼 있다. "모든 좋은 것과 나쁜 것은 감각에 존재하고, 죽으면 감각이 상실"된다. 

언젠가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하고 있다. 책을 읽고 그에 연관된 책을 살피는 식이다. 강하게 의식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책을 짚는다. 그러므로 '부서지기 쉬운 삶' 이후에 읽을 책은 오랫동안 회사 책상에 꽂혀 있던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