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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 마이클 최 UCLA 교수 부부



이남희 교수는 청소년기에 미국에 건너갔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한국어를 잘했다. 그는 언어에 민감해, "커피 한 잔 나오셨습니다" 같은 말이 견디기 힘들다고 햇다. 마이클 최 교수는 한국어를 하지 못했다. 둘은 사이 좋은 중년 부부로 보였다. 






1988년 3월 노엄 촘스키의 미국 노스웨스턴대 강연이었다. 시카고 지역사회에서 풀뿌리 운동을 하던 이남희씨(55)는 질문 기회를 얻으려 손을 내지르는 한 아시아계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수적인 미주 한인 사회에서 촘스키의 강연에 올 사람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청년은 재미교포 2세로 이름은 마이클 최(50)였다. 둘은 얼마 뒤 연애를 시작했고, 92년 결혼했다. 


캘리포니아대 로스 엔젤레스 캠퍼스(UCLA)의 아시아학 부교수, 정치학과 교수로 각각 재직중인 이남희씨와 마이클 최가 서울대, 연세대의 하계 강좌 참석차 함께 방한했다. 이 교수는 역사학을 전공했고, 최 교수는 경제학을 전공한 뒤 정치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교수는 이론적인 작업을 좋아하지 않지만, 최 교수의 작업은 매우 이론적이다. 


전공은 다르지만 둘의 학문은 상보적이다. 이 교수는 신간 <민중 만들기>(후마니타스)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민중이 ‘대항 공론장’이 되는 과정을 살폈다. 70~80년대의 지식인들은 국가에 대한 대항 주체로 민중 개념을 ‘발명’했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이 교수는 인터뷰, 소설, 수기, 마당극 등을 활용해 문화사적으로 접근했다. 최 교수는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후마니타스)에서 대중이 함께 지식을 형성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과정을 설명했다. 핵심 개념은 ‘공유 지식’인데 이는 “내가 안다는 사실을 상대가 알고, 상대가 안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이 사실을 서로 아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시위에 많은 사람이 참석하기 위해서는, 시위가 열린다는 사실을 넘어 다른 사람도 시위에 참여한다는 정보가 있어야 한다. 이 교수가 민주화운동의 ‘내용’을 설명한다면, 최 교수의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형식’인 셈이다. 둘을 최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이남희 교수와 마이클 최 교수. /권호욱 선임기자


▲대항 공론장으로서의 민중

-민중은 영어로 ‘minjung’으로 표기됐다. 영어식 표현으로 따로 번역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이남희(이하 이) “민중의 복합적 요소를 하나의 단어로 풀어쓰는 것도, 번역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민중을 ‘people’로 번역하면 개념이 왜소해진다. ‘minjung’으로 표기하면 서구 학계에서 관심을 받기도 쉽다.”


-<민중 만들기>는 2007년 미국에서 출간된 뒤 최근에야 한국에 번역됐다. 그러나 이미 ‘민중’이란 말 자체가 한국 사회에선 과거 운동권에서나 썼을 법한 고리타분한 인상이다. 

이 “당연히 그럴 것이다. 민중이란 단어가 주는 힘, 호소력, 정서는 70~80년대의 산물이니까. 하지만 민중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은 한국 사회가 소중하게 간직해야할 문화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굉장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민중 개념을 형성하고, 이 내용에 부합하는 다양한 저항적 시도를 해왔다.”


학부에서 유럽사를 전공한 이 교수는 대학원 진학을 앞둔 84년 여름 국제 인권 단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그 해 겨울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 반년의 체험이 그의 인생관을 바꿨다. 그 기간동안 이 교수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동성을 목격했고, 미국에 돌아가서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 채 지역사회의 시민운동에 투신했다. 89년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논문 형태로나마 한국의 민주화운동 경험을 보편화해 알리고 싶어서였다.


-앞으로 ‘민중’ 개념 같은 또다른 대항 공론장이 형성될까. 

이 “물론이다. 다만 형식과 내용이 다를 뿐이다. 80년대에 익숙한 내게는 그런 움직임이 생소하겠지만, 소수자 운동, 협동조합 등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주류에 대한 대안적 움직임이 반드시 정치운동의 형태를 띨 필요는 없다고 본다.”



미국 원서에도 저 사진을 썼다고 한다. 미국쪽 출판사 편집자가 보기에 꽤 강렬한 사진이었나 보다.


▲타인을 따라하는 건 인간의 힘

-불과 몇 년 사이 소셜 미디어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크게 발전했다. 이런 상황은 공유 지식 형성에 도움을 주나. 

마이클 최(이하 최) “소셜 미디어는 공유지식 형성에 도움을 주면서도, 또 내용이 각 개인에게 맞춰져 제공되기 때문에 공유지식을 만들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지식이 공유지식이 되기 위해선 매스 미디어에 의해 다뤄져야 한다. 예를 들어 얼마전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에서 독립파는 소셜 미디어에, 반대파는 매스 미디어에 의존했는데 결국 반대파가 이겼다.”


-한국에선 전 인구의 4분의 1이 보는  1000만 관객 영화가 종종 나온다. 공유지식 전파 속도는 문화권에 따라 다를까. 

최 “텔레비전 초창기에는 전 인구의 3분의 1이 같은 프로그램을 보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좀 다르다. 예전엔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요즘은 더 이상 같은 뉴스를 함께 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파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만족시켜주는 프로그램만 봐서, 그 바깥에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가 일어나는 데에는 이런 요인도 있는 것 같다.”


-감정적으로 볼 때, 당신의 이론은 결국 인간이란 줏대없이 타인에게 쉽게 동조하는 존재라는 느낌을 준다. 

최 “미국내 동성결혼에 대한 생각은 매우 급격하게 변했다. 다른 사람이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자, 나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주 오래전부터 정교한 집단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그에 따른 집단 행동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