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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만년의 체험에서 무얼 배울까, <어제까지의 세계>

거의 모든 일간지의 북섹션에서 이 책을 톱 리뷰로 다루었다. 제목도 한결같이 "전통사회에서 배운다" 정도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전통사회를 무조건 낭만화해 바라보는 건 아니다. 어찌 보면 사실 새로운 내용은 없는데, 읽기 쉽게 잘 쓰여졌고 사례도 풍부하다. 





어제까지의 세계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강주헌 옮김/김영사/744쪽/2만9000원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이 대단히 자의적이고 심지어 폭력적이라는 사실은 일찌감치 지적돼 왔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1937년 브라질의 내륙 지역에서 서구의 ‘문명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개인’들을 만난 뒤, 문명과 미개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체계에서 서로 관계 맺고 있음을 발견했다. ‘문명권’에 속한 서구 학자로서 펴낸 참회의 기록이 <슬픈 열대>였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한발 더 나아갔다. <오래된 미래>에서 그는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 부근 라다크 마을의 이야기를 전한다. 현대 산업사회의 물신주의, 자연에 대한 착취를 비판하면서, 라다크의 자연친화적이고 소박한 삶에 찬사를 보낸다. 그는 우리가 라다크로부터 배워야한다고 말한다. 


물론 여태까지도 제3세계나 우리에게 덜 알려진 나라의 사람, 문화를 무시하거나 미개인 취급하는 경우가 많은 한국 상황에선 이렇게 문명과 미개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계몽’이 필요하다. 아프리카나 아마존이란 말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신체 일부분만 겨우 가린 채 수렵·채집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을 둘러싼 ‘조작 논란’도 어찌 보면 ‘미개인’에 대한 시청자의 고정관념에 기인한 바 있다. 제작진은 현대 문명을 모르고 외부 사람을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처음 찾아낸양 호들갑을 떨었는데, 알고보니 그들의 원시적 삶은 일종이 관광 코스처럼 외부인에게 개방돼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이나 시청자들이 원하는 그러한 원시의 삶은 이제 거의 찾기 힘들다. 한국에도 전통 문화를 고수하며 살아가는 청학동이란 공간이 있지만, 그들이 조선 시대의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근대와 전근대, 문명과 야만은 그렇게 뒤섞여 있다. 


<총, 균, 쇠>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생리학자로 출발해 진화생물학·생물지리학을 거쳐 문화인류학에 도달한 학자다. 그는 26세였던 1964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 북쪽에 있는 뉴기니 섬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애초엔 생물학적 목적으로 그곳의 새를 연구했지만, 차츰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제까지의 세계>(원제 The world until yesterday)에는 다이아몬드의 50년에 걸친 현지 관찰과 연구 성과가 압축해 담겨있다. 


‘문명과 야만’에 대한 다이아몬드의 입장은 ‘실용’에 가깝다. 문명을 비판하면서 야만을 낭만화하지 않고, 문명을 찬양하기 위해 야만에 낙인을 찍지도 않는다. 문명은 많은 긍정적인 결과를 창출했다. 그러나 급격한 발전을 거치며 사라져 아쉬운 가치나 제도들도 있다. 문명 이전 사회의 사례를 연구하면 ‘잃어버린 좋은 것’을 되살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이아몬드가 연구한 ‘전통사회’란 수십~수천명 규모의 집단으로 낮은 인구 밀도를 보이며, 수렵채집이나 농업, 목축으로 살아가고, 서구 산업사회와 부분적으로만 접촉해 크게 변하지는 않은 사회를 말한다.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언급되는 전통사회는 뉴기니와 인근 섬들을 비롯해 아프리카, 북미, 남미 등에 고루 퍼져있다. 


예기치 않은 사고를 처리하는 방식에서부터 현대사회와 전통사회는 큰 차이를 보인다. 파푸나뉴기니의 한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다. 빌리라는 아이가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길 건너편에 나온 삼촌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길을 건넜다가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오던 말로라는 남자의 차에 치이고 말았다. 빌리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라면 즉시 경찰이 출동할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빠르게 보험회사 직원이 달려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로는 일단 경찰서로 차를 몰고간 뒤 그대로 자수했다. 빌리를 도와주려고 차에서 내렸다가는 빌리의 마을 사람들에게 맞아죽을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말로를 잠시 유치장에 가둔 뒤 마을에 데려다주었다. 말로는 서너 달 동안 마을을 나오지 않았다. 


사고 처리와 보상은 경찰, 보험회사가 아니라 말로의 직장 상사 기드온이 맡았다. 기드온은 빌리의 친척들이 복수하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직원들에게 출근하지 말라고 지시한 뒤 회사 경비를 강화했다. 후에 빌리의 아버지가 기드온을 찾아와 협상을 시작했다.  빌리 아버지는 그것이 사고였고, 의도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 단지 장례를 치르는데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요지의 말을 건넸다. 기드온과 빌리 아버지 사이에 몇 차례의 특사가 오간 끝에 장례 비용이 합의됐다. 기드온과 회사 직원들은 추도식에 참석했다. 기드온은 추도사에서 “빌리의 생명에 비교하면, 당신들에게 준 음식과 돈은 아무 것도 아니며 쓰레기에 불과하다”며 울먹였다. 빌리의 부모와 친척들은 그들의 참석에 감사하면서, 함께 울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현대 사회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장례식을 치르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보상 협상의 목적은 분쟁을 신속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한 뒤 궁극적으로 양측의 감정까지 화해시켜 과거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있다. 인구가 많지 않은 사회이다보니 사건 전후로 마주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 사회의 교통 사고는 생면부지의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회복할만한 관계가 없고, 상대에 대한 악의나 복수심을 억누를 이유도 없어 보인다. 


현대의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 즉 유아 살해범이나 성폭행범이라 하더라도 피해자나 그 가족이 직접적인 복수를 가할 수는 없다. 바로 그런 억눌림 때문에 사적 복수를 다룬 영화가 그토록 자주 제작되고 인기를 끄는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현대사회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감정을 해소하는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 프로그램이다. 범죄자와 피해자가 마주앉게 한 뒤, 범죄자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토록 하고 피해자는 그에 대한 증오심을 누그러뜨리도록 유도한다. 자신의 남편을 차로 치어 죽게한 사람과 면담한 한 여성은 “용서하기도 어렵지만 용서하지 않고 사는 것은 더 어렵다”고 말했다.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은 전통사회의 사고 처리와 보상 시스템을 연상케한다. 


그러나 국가의 사법 체계가 취약한 전통 사회에 낭만을 가질 필요는 없다. 말로와 빌리의 경우는 협상이 무난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보복, 폭력, 전쟁의 악순환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의 군인들은 처음 보는 적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가책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전통사회에서 복수를 위한 폭력은 정당화된다. 적의 참혹한 시신을 옆에 둔 뒤 웃고 떠드는 풍경도 자연스럽다. 


‘건설적인 편집증’ 역시 뉴기니 사람들의 삶에서 배울만한 부분이다. 20대의 혈기왕성한 연구자였던 다이아몬드는 한 부족 사람들과 함께 1달을 보내며 새를 관찰하고자 했다. 다이아몬드는 이끼로 뒤덮인 커다랗고 멋진 나무 아래 천막을 설치하길 원했으나, 뉴기니 사람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천막 치기를 거부했다. 죽은 나무 밑에 천막을 쳤다가 나무가 넘어지면 깔려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어이가 없었다. 썩지도 않았고 바람이 불어도 넘어질 일이 없을 듯한 큰 나무가 천막을 덮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뉴기니 사람들의 두려움을 ‘편집증’이라고 생가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편집증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숲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거의 매일 어디선가 나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나무 밑에 천막을 쳐도, 나무가 그 위로 무너질 확률은 매우 적을 것이다 그러나 야영과 숲 속 생활이 길어진다면? 1만분의 1은 1000분의 1로, 다시 100분의 1로 사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뉴기니 사람들이 사고에 대해 갖고 있는 두려움은 ‘건설적인 편집증’이라 할만하다. 현대인들도 마찬가지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샤워를 할 때, 운전대를 잡았을 때 편집증을 의심할 정도로 조심한다면, 사고 확률을 훨씬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풍습도 있다. 브라질의 피라항족 산모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아이를 낳는다. 분만 과정에 잘못이 생겨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산모와 아기가 사망하기 일쑤지만, 그들은 “인간은 강해야 하고 혼자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에 이 전통을 고수한다. 많은 전통 사회에선 일정한 조건을 전제로 영아살해가 허용된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거나, 보호자 중 한쪽이 죽었거나, 손윗 형제나 자매와의 분만 간격이 짧으면 영아살해가 조장 혹은 방치될 확률이 높다. 이럴 때 높은 출산율은 가족 혹은 부족 전체의 생계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노인 문제, 종교, 언어, 식생활 등 여러 문제들을 검토하면서 전통사회와 현대사회의 양상을 비교한다. 전통사회의 이채로운 생활 양식에 대한 다이아몬드의 설명은 “있는 것은 있는 이유가 있다”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애초에 있는 이유가 있던 풍습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있을 필요가 없어졌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전통사회 같은 소규모 사회에선 풍습이 유지된다. 그런 풍습까지 신비화하고 낭만화해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전통사회의 문화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영감을 준다. 


인간이 침팬지로부터 분리돼 진화한 것이 600만년, 문명이 시작된 것은 1만년 전이다. 문명 이전 599만년의 인간이 만들어왔던 생활 양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지도 않은 채 방기하지 말자고 다이아몬드는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