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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자가 아니라 팬입니다. 타란티노의 <장고>를 기다리며

다음달 개봉 영화 리스트를 들여다보다가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 눈길이 머물렀다. 사실 이 영화가 다음달에 개봉한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난 평소 스포일러에 거의 신경쓰지 않지만, 그리고 <장고>는 스포일러랄 것이 없는 영화겠지만, 그래도 외국에 있는 지인들이나 인터넷의 이런저런 평으로부터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해듣는 걸 매우 열심히 피해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영화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모른 채 극장에 들어가 영화 속 세계에 온전히 빠져버리는 순수한 기쁨을 느끼고 싶단 말이다. 


<장고>의 티저 포스터. 아 두근두근. 


타란티노는 내게 각별한 감독이다. 그가 내 인생관, 세계관, 직업관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의 장편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을 지금 다시 보라면 별로 내키지 않겠지만, 또 <데쓰 프루프>는 참 지겨운 영화였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머지 영화들은 다 좋아한다. 내가 타란티노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펄프 픽션>이 아니라 <재키 브라운>이었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킬 빌> 시리즈다. 지금도 한밤중에 무료히 케이블 영화 채널을 뒤적이다 <킬 빌>을 만나면, 그곳이 도입부든 결말부든 상관 없이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끝까지 보아버리는 일이 잦다. (그래서 얼마전 이 시리즈를 영국의 어느 영화관에서 다른 관객들과 차례로 봤다는 한 선배가 부럽다)


내게 <킬 빌>은 '영화의 모든 것'이다. 난 이렇게 완벽한 리듬감을 가진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관객의 심장을 한 손에 잡고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느낌. 그러나 그 손길에 기꺼이 마음을 맡기고 싶은 심정. 표현 방식은 잔인하지만 묘하게 성스러운 구석이 있고, 인물들의 감정은 직선적인데 또 복잡하다. 출연 배우들은 자신의 이전 필모그래피 어느 곳에서도 보여준 적 없는 대단한 연기를 펼친다. 음악이 찰떡처럼 화면에 붙어있다는 점도 언급해야겠다. 


난 타란티노를 한 번 본 적이 있다. 칸영화제에 출장 갔을 때, 마침 그의 마스터클래스가 열렸다. 마스터클래스에 가보진 못했지만, 상영관 주변을 얼쩡거리다 그가 지나가는 걸 목격했다. 생긴 건 에상대로(당연한건가?), 체구는 예상보다 컸다. 전언에 따르면 타란티노는 마스터클래스에서 "<킬 빌>은 나의 <지옥의 묵시록>"이라고 했다고 한다. <지옥의 묵시록>을 보거나 제작 과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너무나 잘 이해될 것이다.  


<킬 빌1>의 장면들. 위 사진은 한때 내 노트북 바탕화면. 아래는 유명한 청엽정 결투.


<킬 빌>을 처음 본 것은 2003년 11월, 서울의 어느 개봉관이었다. 당시 나는 수습기자였다. 요즘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수습기자 생활은 매우 고달팠다. 시작하자마자 1주일만에 몸무게가 5킬로그램 빠질 정도였으니. 택시를 타고 오가다, 좁고 더러운 숙소에서 1~2시간 눈을 붙였다 뗀 것을 제외하곤 거의 자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간신히 짬을 내 국밥을 한 숟가락 뜨려다가 선배의 전화를 받고 뛰쳐나간 적도 있다. 난 기자가 되겠다고 생각한 기간이 길지 않았고, 그래서 수습기자 생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에 더욱 빌빌 거렸던 것 같다. 지금 하라고 해도 여전히 빌빌 거릴 것 같긴 하다. 


그렇게 휴일은커녕 휴식도 없이 고된 생활을 하다가, 처음으로 하루 휴일이 생겼다. 아마 수습 생활 1달쯤이 지난 어느 토요일이었던 것 같다. 아침 보고까지 마치고 그날 저녁까지 쉬는 일정이었을 듯하다. 그날 난 <올드보이>와 <킬 빌 1>을 봤다. 이 영화들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잘만든 대중영화이며, 그래서 극장에서 놓치지 않고 본 것은 큰 행운이다. (한국에서 비슷한 시기 개봉한 이 영화의 감독들은 공교롭게도 이듬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과 수상자로 만나 인연을 이어간다. 이미 개봉한 <올드보이>가 월드 프리미어를 원칙으로 한 칸 경쟁부문에 깜짝 초청된 뒤 심사위원대상까지 받은 데에는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타란티노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들 알겠지만, 두 영화 모두 지금 봐도 '센' 영화였고, 또 혀를 자르거나 뽑는 장면이 나온다. 같은 날 본 영화에서, 다른 영화에서라면 보기 힘들 혀 훼손 장면이 같이 나온다는 건, 사실 별 것 아닌 우연같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기도 하다. 


<장고>는 어떨까. <데쓰 프루프>처럼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고, 아마 <바스터즈> 느낌이 나지 않을까 싶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기대를 부풀리게 만드는 감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직업적으로 영화를 보고 평가한 시기가 꽤 있어 그런 기쁨을 많이 잊어버리고 또 영화에 거리를 두려고 하는 편이다. 한 마디로 '팬'임을 숨긴다는 것이다. 타란티노는 여전히 내게 순수한 관객, 팬의 즐거움을 돌려주는 감독이다. 그것을 숨길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