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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하는 아빠, 일하는 엄마. <아빠의 이동>


 


아빠의 이동

제러미 스미스 지음·이광일 옮김/들녘/332쪽/1만3000원


전통적인 남성 영웅의 특징은 무엇일까. 큰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낮춰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영웅이라 부르기 어렵다. 조건없는 자기희생이야말로 모든 남성 영웅이 갖춰야할 미덕이다. 


미국 시카고에 사는 하프 조율사 켄트 호프먼을 만나보자. 그는 이른바 ‘주부 아빠’(stay-at-home dad)다. 이는 아내가 직장에 나간 사이 집에서 살림을 하면서 육아를 담담하는 남성을 말한다. 호프먼이 처음부터 살림을 자청한 것은 아니었다. 호프먼은 잘나가는 금융자산관리사인 동갑내기 여성 미순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은 사이가 좋았지만 “더 나아가려면 꼭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프먼은 양육에 자신이 없었고, 미순 역시 일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결혼 여부를 두고 둘은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호프먼은 결단했다. “당신이 아이를 갖고 싶으면 내가 집에 남겠어.”


큰 아들 클린턴이 태어나면서부터 호프먼의 자기희생이 시작됐다. 모든 부모가 자식을 위해 일정 부분 자아를 내려놓지만, 호프먼은 그 정도가 심했다. 아이는 비정상적으로 턱이 작게 태어났다. 호흡 곤란, 조직 이상 등 부수적 장애가 10가지 이상 겹쳐왔다. 호프먼은 말도 움직임도 없이 작은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고 있는 아들을 극진히 보살폈다. 자신만의 여유 시간, 취미, 사회적 성취는 꿈꿀 수 없었다. 그 사이 미순은 일을 나갔다. 출장을 가느라 며칠씩 집을 비워야할 때도 있었다. 미순은 비행기를 탈 때마다 눈물을 흘렸지만, 남편이 잘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6개월이 지나자 아기는 최악의 고비를 넘겼다. 호프먼 가족은 도우미 간호사를 돌려보낼 수 있었다. 혼자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해 힘들지 않았으냐는 질문에 호프먼은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한 거지요”라고 말했다. 말 속에 자기연민이나 자부심은 없었다. 


호프먼은 헤비급 복서나 특전사 군인과 같은 의미에서의 ‘남성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전통적인 남성의 이상인 영웅적인 자기희생을 실천했다. ‘애 키우고 살림하는 건 여자들의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호프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아빠의 이동>은 부쩍 늘어나고 있는 주부 아빠에 대한 보고서다. 주부 아빠로 산 적이 있는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행동양식의 아버지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사회의 변화상을 그렸다. 


2007년 미국 통계청은 집에서 살림하는 아버지가 15만9000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1995년의 6만4000명보다 2.5배 가량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살림을 하면서 파트타임이나 재택근무로 일하는 아버지 수는 제외됐기 때문에, 실제 주부 아빠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이 있으면 돈을 벌어오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주부 아빠가 많다는 것은 일하는 엄마가 늘어났다는 뜻이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미국 백인 여성은 남편이 직장에 나간 사이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지금은 엄마의 80%가 일하고, 아내의 3분의 1은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 여성이 버는 돈의 액수와 남성의 가사 및 육아 노동의 정도에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  


사실 바깥에서 일한 뒤 돌아와 집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은 19세기 이후에나 보편화됐다. 가부장제의 오랜 역사를 살펴도 엄마는 밖에서도 일했고, 아빠는 아이들을 자상하게 대했다. 산업혁명 이전 가족공동체 중심의 사회에서는 모든 가족이 함께 일하고 함께 가사를 분담했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조건이 혹독하게 변화하면서 아버지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직장으로 출근해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경제 영역과 가정 영역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이 생긴 것이다. 


전후 호황기가 끝난 1970년대는 산업사회에서 탈산업사회로 이동하는 분기점이었다.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정신을 받아들인 여성들은 사회·경제적 변화에 재빨리 적응했다. 반면 뒤처진 채 직장을 잃는 남성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 시대 아버지들은 힘들었다. 밥벌이만 하는 무뚝뚝한 가장, 아내와 함께 아이를 돌보는 자상한 아버지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주부 아빠가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 이들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아빠는 직장, 엄마는 집’의 고정관념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직장에 나간 사이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다가 다른 엄마들의 시선에 쭈뻣쭈뻣해졌다는 식의 경험담이 책에 가득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 하는 남자를 ‘루저’(패배자) 취급하는 주변 시선도 여전하다. 아버지 세대엔 주부 아빠가 드물었기에, 바람직한 역할 모델을 찾기 힘들다는 점도 딜레마다. 


엄마의 ‘두 마음’도 걸림돌이다. 오늘날 많은 여성들은 직장에서 성취감을 얻고 양성 평등을 누리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면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은 여전히 가정이라는 느낌을 갖곤 한다. 어머니로서의 소망과 세속적인 욕망이 충돌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직장 생활에 시간을 들일수록 어머니 역할 수행에 투입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아버지는 그보다 많은 시간을 일해도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결과를 두고 저자는 “아버지들은 돈벌이를 부모 노릇의 일부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반면 “어머니들은 대개 직장 일을 자녀들한테 쏟아야 할 시간을 잡아먹는 별개의 직업으로 여긴다”고 해석한다. 


물론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한 몇 가지 생물학적 사실이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도식은 일하는 어머니와 살림하는 아버지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다고 비난하는 일부 보수 세력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물론 인간 여성은 친밀한 관계의 영역에서, 남성은 좀 더 큰 규모의 위계질서가 있는 사회 집단에서 잘 활동하도록 진화했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 하지만 남녀의 역할 패턴이 시대와 문화마다 달라진다는 사실은 인간이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바뀌는 동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중국 남서부, 아프리카 중부, 미국 캔사스시티에는 아이를 키우는 남성 집단이 있고, 미국의 20대 여성은 또래 남성보다 소득이 높다. 생물학적 조건과 환경은 상호작용한다. 


게다가 남성은 아버지가 되면서 생물학적으로도 변화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강한 공격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떨어지고, 젖분비 호르몬인 프로락틴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늘어난다. 코르티솔은 아기가 원하는 것에 주의를 집중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남성과 여성의 몸은 부모가 되면서 비슷해지는 것이다. 마치 자전거 타기를 배우듯이, 남성의 몸은 아버지가 되는 과정을 배워간다. 그러므로 저자는 ‘화성에서 온 사람도 있고 금성에서 온 사람도 있지만 많은 남자들은 지구에 살고 있다’라고 책 제목을 새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아빠는 일, 엄마는 양육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2006년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연구팀은 실험 대상 여성들에게 “여성은 일반적으로 수학 학습 능력이 남성보다 떨어진다”고 말한 뒤 수학 시험을 치르게 했다. 이 말을 들려주는 것만으로 여성들의 수학 점수는 낮아졌다. 유전적 설명이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저자는 “생물학적 조건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나라의 국경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 갇힌 죄수가 아니다. 우리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우리가 집어들 수 있는 선택지는 다양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중간중간에 자신의 육아 경험을 들려준다. 아내가 전업으로 일하고 저자가 주부 아빠로 지내던 시절이었다. 아내가 출장간 사이 저자는 21개월된 아들과 집에 남겨졌다. 부자가 단둘이 밤을 보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뒤척뒤척하던 아기가 아빠 품에 안겨 쌔근쌔근 숨을 쉬며 잠에 빠져들었다. 부자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의 작은 똇목 위에 있었다. 저자는 “스위치를 켠 것처럼” 생각했다. ‘아버지’는 저자가 잠시 맡은 역할이 아니라 정체성의 고유한 일부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몇 가지 사회적, 정책적 대안이 제시된다. 독일, 스웨덴은 이 방면의 선진국이다. 성별에 관계 없이 6~12주의 유급 육아휴가 제도가 필요하다. 그 다음엔 최소 1년의 무급 휴가가 따라야 한다. 육아를 위한 탄력근무시간제나 휴가를 썼을 때 불이익이 없도록 보장돼야 한다. 


저자는 아빠의 변화를 ‘빙하의 이동’에 비유한다. 거대하고 느리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미래에는 막을 수 없는 움직임. 혁명은 아니지만 반드시 찾아올 변화. 이미 많은 아빠들이 그 변화를 깨달아 추동하고 있다. 책을 추천한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밖에서 돈만 벌어다 주는 부성이 아니라 나눔, 배려, 돌봄, 상생이라는 가치로 아이를 기르는, 제대로 된 부성의 의미”를 강조했다.



원서 이미지. 한국판도 괜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