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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이란 무엇인가

그 유명한 <괴물>
 

지난달 29일 개봉한 <트랜스포머3>가 개봉 7일만에 386만 관객을 모았다(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각각 743만, 744만 관객을 동원한 1, 2편보다 더한 초반 기세다. 수입·배급사인 CJ E&M 측은 “적어도 800만, 많으면 그 이상”을 내다보고 있다. ‘그 이상’이 말하는 숫자는 분명하다. ‘1000만’. 지금까지 한국영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 그리고 외화로선 유일하게 <아바타>가 넘어선 ‘꿈의 숫자’다. 올여름엔 ‘작심한’ 블록버스터인 <퀵>, <고지전>, <7광구>가 개봉한다. 연말엔 한국에서의 손익분기점이 1000만인 <마이 웨이>도 있다.

누군가에겐 꿈, 누군가에겐 경계, 누군가에겐 비판의 숫자인 ‘1000만’. 영화인들에게 ‘1000만’에 대해 물었다.

윤제균(<해운대> 감독. <퀵>·<7광구> 제작)=<해운대>는 처음으로 도전한 블록버스터라서 제작과정이 힘들었다. 손익분기점인 500만만 넘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1000만을 넘으니 꿈만 같았다. 흔히들 한국 시장에서 ‘영화 자체’의 힘으로 모을 수 있는 관객은 600만이 최대치라고 한다. 그 이상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1000만은 하느님이 내려주시는 것이고, 바로 관객이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속일 수가 없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진정성 있게 만들면 하느님이 손을 잡는 것처럼 관객은 배우, 스태프, 제작자, 투자자의 손을 잡을 것이다. 
 
최용배(<괴물>의 제작사 청어람 대표)=노골적으로 드러내면 반감을 살까봐 숨겼지만, 사실 <괴물>은 처음부터 1000만을 전제로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괴물>은 개봉 전 해 연말부터 ‘내년의 기대작’으로 미디어의 관심을 받았고,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호평받으며 그 기대감이 개봉하는 7월까지 이어졌다. 예매율이나 개봉일 관객수가 이미 심상치 않았다. <괴물>이 흥행하면서 한국에 이렇게 많은 매체가 존재하고, 또 한 영화를 두고 이렇게 많은 기사를 쓸 수 있는지에 대해 처음 알았다. 요즘은 스크린 수, 관객의 반응 등 환경이 좋아 큰 영화들은 모두 1000만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배급만 잘되면 첫 주 200만~300만은 가능하고, 그 이후의 반응이 관건이다. 

중진 영화사 대표=멀티플렉스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쉬리>는 스크린 23개에서 시작해 전국 580만명을 동원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도 비슷하다. 스크린 1000개씩 차지하면서 1000만 하는 요즘 영화들보다 오히려 더 폭발력있고, 화제로 삼을 이야기도 많았다. 요즘엔 배급의 힘으로 밀어부쳐 ‘1000만’을 만든다는 느낌이다. ‘1000만 영화’ 나오는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작은 영화 스크린 뻇어가면서 불공정하게 1000만 만드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영리(<아바타>의 수입·배급사 20세기폭스코리아 부장)=<아바타>가 <괴물>을 제치고 역대 흥행 1위에 올라섰을 때 떠들석하지 않게 조용히 넘어갔다. ‘한국영화 위기설’이 대두되는 마당에 외화가 한국영화를 제쳤다는데 대해 내부에서도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관객이 많이 들면 들수록 좋기 때문에 <아바타>의 흥행에 따른 부작용은 못느꼈다. 다만 미국 본사에서는 이후 개봉한 <나잇 & 데이>, <A-특공대>, <프레데터스>가 잇달아 흥행에 실패해서 <아바타> 때문에 자만했던 것 아니냐는 반성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송희일(독립영화 <후회하지 않아> 감독)=독립영화 진영에서는 스크린 독과점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왔고, 관련 법안 입법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한국은 독과점 규제나 공정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아서, 영화만 따로 관련 법안을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듯하다. 특히 여름 성수기가 되면 특정 영화의 점유율이 높아지는 상황이니, 독립영화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물론 관객들이 블록버스터에 관심을 갖는 건 충분히 이해되지만, 블록버스터가 극장에 도배되듯이 깔린 상황에서 관객의 ‘선택’이 가능하긴 할까. 전 인구의 4분의 1, 5분의 1이 한 영화를 보는 건 다양성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내 영화라 해도 마찬가지다. 200만~300만이 보는 영화가 많아지면 좋겠다. 

신은실(KU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괴물>은 영화와 사회 현상을 접목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멀티플렉스에서 개봉하는 영화의 관객수는 그저 ‘숫자놀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업영화에 많은 관객이 드는 건 자연스럽지만, 배급의 인위적인 힘에 의해 그렇게 되는건 자연스럽지 않다.

천만 넘을지 거의 아무도 몰랐을 <왕의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