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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슈퍼히어로 <강철군화>



잭 런던이 1908년에 발표한 <강철군화>를 두고 '소설 자본론'이라는 평가도 있는 모양인데, 저승의 마르크스가 통곡할 소리다. 물론 이 소설이 그리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과 뒤이은 공산주의 유토피아의 실현은 마르크스가 꿈꾼 역사의 발전이기는 했을테지만, 마르크스의 이론이 그리 단순하게 요약될리 없지 않은가. 

소설은 사회주의 혁명가 에이비스 에버하드가 죽은 후 700년 뒤, 그녀의 원고가 발견돼 공개한다는 액자식 설정을 갖고 있다. 앤서니 메러디스가 인류형제애 시대 419년에 쓴 서문이 액자의 틀이다. 에이비스가 남편 어니스트에 대해 남긴 기록이 소설의 골자다. 메러디스는 어니스트를 두고 "수많은 영웅 중 한 명일 뿐"이라고  다소 깎아내렸는데, 에이비스는 당연히도 남편을 유일한 영웅처럼 소개한다. 어니스트 에버하드는 모든 것을 알고, 강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아내를 뜨겁게 사랑하기도 하는 사회주의 슈퍼히어로다. 그에겐 인간으로서의 어떤 결점도 없어 보이는데, 이런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해 줄거리를 따라가기엔 현대의 독자가 영악하다. 

잭 런던의 단편은 괜찮았다. 보르헤스가 묶은 <마이더스의 노예들>에 실린 몇 편은 강렬했다. 19세기 말엽 알래스카의 골드 러쉬 기간에 한탕을 꿈꾸며 길을 떠났던 그는 당시의 강렬한 경험을 바탕으로 남성적이고 힘이 넘치는 단편들을 써냈다. 자비 없는 자연, 생존만을 생각하는 인간들이 엮어낸 이야기들에선 뜨거운 맥박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투박한 마초주의가 사회주의 혁명을 기원하는 장편 소설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혁명은 그 무엇보다 섬세해야 한다는 것은, 역사상의 실패한 (대부분의) 혁명들이 잘 알려준다. 

물론 <강철군화>에도 재미있게 읽어줄만한 대목이 꽤 있다. 메러디스가 달아놓은 것으로 보이는 시침 뚝 뗀 각주들, '분할통치'의 일환으로 과두제 계급이 조장한 노동귀족의 탄생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요즘 대기업 노조들을 비난하기 위한 수식어로 자주 쓰이는 '노동귀족'이란 말이 이 책에서 유래한 것인지 궁금하다. 누가 노동귀족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꽤 센스있다. 

<강철군화>가 읽히고 필요한 시절이 있었을 거다. 한국에서는 80년대 중반쯤이 아니었을까 추정할 뿐이다. 아무튼 지금은 아니다.